교직생활 15년이 될 때쯤, 지독한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교사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수업준비를 하는 게 버거웠고 이렇게 지내는 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에 대한 회의감으로 괴로워하는 날들이 많았다.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교사로서 내가 만들고자 했던 이상향에 다다르기엔 너무나 높은 현실의 벽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까.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면 '선생님은 정말 좋은 교사예요'라고 늘 말해주는 오랜 제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때의 내가 자신들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왜 아직까지도 중학교 때의 담임교사였던 나에게 여전히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연을 이어나가는지 시시콜콜 설명해 주던. 그렇게 작디작았던 중딩 꼬마들은 지금은 어엿한 가장으로,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로, 포기를 모르는 사업가로, 책임감 넘치는 군인으로 다들 너무 커버린 어른이 되었다. 그 녀석들의 삶은 마법의 주문이다.
"과거의 내가 애써 마련한 지금을 벅차게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빛을 잃어버릴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