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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 Nov 01. 2024

츤데레 언니

- 엄마일기(10월 23일)

감기가 점점 심해져서 힘들다는 첫째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1시간쯤 늦게 출근을 했다.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에 지필평가 시험지를 수정하고 문항정보표를 완성하고 두 번째 수행평가를 채점하고 나니 6교시가 끝나 있었다. 3시 반부터는 수학과 선생님들이 모여서 시험지를 검토하는 협의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3시 반에 둘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롯데월드로 체험학습을 다녀와서 아직 즐거움이 가라앉지 않았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이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나 머리가 너무 아파. 열이 39도가 넘어..."
"에고. 오늘 추웠는데 찬바람 너무 많이 쐰 거 아니야? 엄마가 끝나고 바로 갈 테니까 병원 가자. 그때까지 좀 쉬고 있어.."
"응. 빨리 와."

전화를 끊고 수학선생님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험지를 검토하며 협의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차 싶어 무음으로 바꿔둔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4건의 부재중 전화. 급히 둘째에게 다시 전화를 했는데 첫째가 받았다.

"많이 아픈 것 같아. 머리가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대."
"그래? 미안해. 빨리 갈게."

미안한 마음에 허둥지둥 짐을 챙겨서 퇴근을 하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집 도착하는데 20분 정도 걸릴 거 같은데 얼음팩 만들어서 그때까지만 이마에 놓아줄 수 있어?"
"알았어. 근데 내가 아까 해열진통제라고 써 있는 거 먹여서 열이 좀 내린 거 같아. 지금 37.9도야."
"잘했어. 고마워. 엄마 도착하면 집에 안 들르고 바로 병원 가야 할 거 같으니까 동생 좀 데리고 내려와 줘~"

얼마나 아팠을까. 전화도 못 받고 퇴근도 너무 늦어져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운전석이 가시방석 같았다.
집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둘째가 혼자 내려와 있었다.

"나 열이 많이 내렸어. 언니가 전에 나보고 죽어도 걱정 안 된다고 하더니 오늘 나 아프니까 약도 챙겨주고 얼음주머니도 만들어줬어. 너무 차갑고 물도 새서 옷이 다 젖었는데 그래도 꾹 참고 이마에 대고 있었어."
"그래 잘했네. 언니가 츤데레라서 그래. 그래도 엄마 대신 언니가 오늘 학원도 안 가고 나래 돌봐줘서 너무 다행이다."

맨날 옷 가지고 싸우고 툴툴대면서도 동생이 아프고 엄마가 연락이 안 되니까 의젓하게 해열제를 찾아서 동생을 간호해 준 첫째도, 아픈데도 울거나 칭얼대지 않고 엄마가 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 준 둘째도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하던지.
아침에 첫째를 데려다주었던 병원에 둘째와 저녁에 또 방문하게 된 게 웃프기도 하고, 나는 몸살에 걸리지 않아서 아이들을 챙겨줄 수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의 병원진료가 끝나고 뜨끈한 양선지 해장국과 뼈해장국을 셋이 나눠먹고 나니 몸이 노곤해졌다. 정신을 붙잡기 위해 디카페인 콜드브루에 얼음을 잔뜩 담아서 방에 들어왔다. 둘째를 병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 미처 끝내지 못하고 싸들고 온 업무를 하다 보니 어느새 1시 반이 되었다. 예전에는 새벽 2시까지 안 자도 거뜬했는데 나이는 못 속이는지 이젠 12시가 넘으면 자꾸 눈이 감긴다. 남은 수행평가 채점과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빨래더미들은 우선 내일로 미뤄두어야겠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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