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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Jun 05. 2023

취미도 꼭 돈을 내고 해야 하나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요즘엔 쓸 일이 별로 없지만 취미, 특기 쓰는 칸을 만나면 멈칫합니다. 따로 즐기는 것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독서, 영화 감상, 음악 감상 뭐 이런 고전적인 걸 쓰고 싶지는 않고요. 심지어 그게 진짜 제 취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 이런가요?


  초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책인데요, <크록텔레 가족>에서는 TV가 하루종일 자기만 쳐다보는 크록텔레 가족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소개합니다. (열흘 간의 휴가를 겨우 얻어냈는데 5일째 되는 날 데리러 왔으니 얼마나 식겁했을까요?!)

  뜨개질하기, 금붕어 키우기, 강아지랑 산책하기, 공룡 상상하기, 청소하기, 음악 듣기, 박물관 관람하기, 우표 모으기, 스키 타기, 책 읽기, 신나게 춤추기, 빵이나 과자 만들기, 체조하기, 전화로 수다 떨기, 그네 타기, 밤하늘의 별 보기, 눈사람 만들기, 킥보드 타기, 테니스 치기, 고궁 방문하기, 축구하기, 옷장 정리하기, 수학 문제 풀기, 마술 부리기, 노 젓기, 인라인스케이트 타기, 꽃 가꾸기, 여행하기, 줄넘기하기, 신문 읽기 등이죠. 소젖 짜기, 창문 열고 소리치기 등도 있었고요.

  막상 이렇게 보기가 주어지니 몇 개 고를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객관식 문제에서 답을 고르는 데 익숙한가 봐요. 저걸 보니 자전거 타기, 필사하기, 보드게임, 차 마시기 같은 것도 추가할 수 있겠고요. 분명 아까는 머릿속이 하얬는데 말입니다. 아이들도 이렇게 보기를 주면 새로운 것들을 말하더라고요.


  학생들은 학원이나 방과 후 수업에서 배우는 것을 취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축구나 줄넘기도 학원에 다니죠. 그리기뿐 아니라 공예품과 간단한 요리까지 만드는 미술 공방도 있고요. 레고, 마술, 외발자전거, 우쿨렐레, POP/캘리그래피 등을 배우러 가기도 해요. 좋아해서 배우러 가는 건지, 배워보니 좋다고 하는 건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 과목보다는 이게 더 남는 거라고 생각해요. 초보자가 시작하기 어려운 분야를 시작해 볼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하니까요. 다만 아쉬운 점은 좋아하는데도 시간에 쫓겨 수업을 중단하면 그걸로 끝, 그야말로 말짱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라는 거죠.

  유행도 무시 못하겠어요. 방과 후 수업에 한동안 POP가 많이 보이다가 캘리그래피로 넘어가더니 요즘은 그런 종류가 아예 사라졌더라고요. 전 요가를 제법 오래 했는데 그나마 유연성 자신 있어서 할 만했기 때문인지 마침 요가의 전성기와 맞물린 덕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나 많던 요가원들이 하나둘 필라테스 학원으로 바뀌는 게 아쉬운 한편, 거기에 맞춰 나도 필라테스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거든요. 골프나 테니스 연습장, 바디프로필 촬영과 연계된 헬스장 광고지를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보다 일종의 스펙 쌓기처럼 여겨집니다.

  유튜버 대도서관은 기획회의, 제작, 편집을 거쳐 일주일에 하나씩 영상 올리기를 공공연히 제안하더라고요. 동감입니다. 소비가 아닌 생산적인 활동의 즐거움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니까요. 게임 영상, 숏폼 등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을 그저 따라 하거나 자극적인 건 말고요. 돈을 쓰며 배우지 않고도 재밌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코로나 집콕 생활을 하는 동안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했습니다. 평소엔 해야 하는 것들 때문에 해보고 싶은 것들을 미루기만 했는데 강제로 한가해지니 이것저것 해볼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어렸을 땐 호기심 많은 하고잡이였는데 수업이나 숙제 같은 것들 때문에 참다가 결국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아예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서도 시간적 · 경제적 여유를 핑계로 우선 '해야 하는' 것들만 챙겼고요. 그런데 일단 시작하니 화장품을 시작으로 샴푸, 주방세제, 코바늘 가방과 수세미, 과일청, 피클, 장아찌, 담금주에 이어 김치류까지. 점차 만들기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씩 하다 보니 해보고 싶은 게 점점 더 늘더라고요. 신랑이 가끔 묻습니다. "취미로 하는 거 맞아? 혹시 창업 준비야?"

  제 무릎과 팔꿈치에는 딱지가 앉았던 자국 하나 없습니다. 그다지 매끈하고 고운 살결도 아닌데 뭘 그리 도자기마냥 아꼈는지 말이에요. 상처가 없는 건 완벽한 게 아니라 추억도 매력도 없는 게 아닐까요. 최근에 캐치볼을 해봤더니 글러브에 공이 쏙 들어오는 건 신기하고, 투포환을 던지는 듯한 포즈로 공 던지는 제 모습을 찍어놓고 보니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고, 엉망진창인 폼이지만 공 좀 던졌다고 다음날엔 오른쪽 팔이랑 옆구리가 뻐근하기까지 이래저래 새롭고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30년 이상을 똥손에 운동치로만 살아왔는데 이제 보니 제가 스스로를 그런 틀에 가두었지 않나 싶습니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큰 반면 그럴싸하게 되지 않으니 성에 차지 않았던 거죠. 한두 번 해보곤 '잘 안 되네?' 하며 움츠러들고 다른 건 시도하기 전부터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리고...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했어요. 재미 삼아 하는 것도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하나 싶지만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조금씩 발전해 가는 것 자체가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못 하면 어때요, 가만히 0에 있는 것보단 더해지는 게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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