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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Jul 03. 2024

당신에게 '악' 이란 무엇인가요?

온라인 글쓰기모임 6/11

악은 주관적 개념이다.


나에게 악이란, 나쁜 것이고 싫은 것이다. 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이에 대해서 글을 쓰자니 어쩐지 머리가 복잡해지고 심오한 기분이 들어서 싫다. 사실 악이라고 하면 독일의 철학 박사 한나 아렌트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그녀가 주장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워낙에 많이 들은 탓이다.


철학자의 사상을 가지고 와서 악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파고들며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악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쁘고 싫은 것이니까, 그럼 내가 나쁘게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쓰면 되겠다.


싫어하는 걸 생각하는 것도 마냥 좋지는 않은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 뭘 싫어하는지 한번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니까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무언가가 싫다면 그것이 왜 싫은지 원인을 파악해 볼 수 있고, 그래서 그 싫은 것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으며, 만약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좋다.


그래서 내가 뭘 싫어하느냐면은, 그러게 내가 뭘 싫어하더라. 아 생각하기가 왜 이렇게 귀찮지. 싫어하는 걸 생각하는 것도 나름 장점이 있다고 막상 말은 저렇게 했지만, 곧바로 생각나지도 않는 싫은걸 굳이 쥐어짜 내면서까지 생각해야 하나 싶다고, 금세 마음이 바뀐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알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귀찮은 것이 싫고 뭘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그리고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위험하고 비위생적이고 피곤하고 징그럽고 아픈 것이 싫다. 나를 싫어하고 내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 싫다. 맛없고 건강에 나쁜 음식이 싫다. 소중한 걸 잃는 것이 싫다.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벌레가 보이길래 잡았다. 나는 해충이 싫다. 나에게 해충은 분명 나쁘다. 그렇다고 그것을 두고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해충은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피해를 주는 벌레고 악한 존재이지만, 그 벌레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냥 벌레로서 존재할 뿐이다.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인간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해충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악은 절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입장에 따라서 달라지는 주관적인 개념인 것 같다. 애초에 이 글쓰기가 '나에게 무엇이란 무엇인가' 라며 주관적인 개념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글쓰기니까, 나름대로 취지에 맞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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