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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May 13. 2024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코치의 일주일

마감이 있던 한 주


작년이었나, 어떤 프로그램의 참여를 지원받는 장학금 프로그램에 문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장학금 프로그램은 아직 오픈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나중에 오픈할 때 알림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신청했던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장학금 프로그램이 오픈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마감 전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한 주는 그 마감일이 있던 주였다. 결국 생각만 하다 에세이를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마지막주를 맞이한 것이다. 금요일이 마감일이었는데 정해진 일정을 다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목요일 저녁에 듣기로 예정된 수업에 처음으로 결석을 해가며 지원서를 작성했다. 



도움을 구하고 받기 


일요일에 통화를 했던 M에게 지원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화요일까지 보내주면 한 번 글을 봐주겠다고 했다. 결국 화요일까지 완성하지 못했지만 금요일 오전에 한 번 보내주면 봐주겠다는 메시지를 받고 글을 공유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써라."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몇 명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기간에, 어디에서 했는지를, 숫자와 명칭을 더 넣어서 쓰라는 말이었다. 피드백을 받고 수정했더니 글이 한 결 나아졌다. 


수많은 지원서를 넣어본 경험이 있는 P도 기꺼이 내 에세이를 한 번 읽어봐 주었다. P는 세 번째 문단에 쓴 이 내용이 핵심이니 그걸 첫 문단으로 옮기라는 조언을 주었다. 그 조언을 받아들여 수정을 했고, 처음의 의도와는 글의 내용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 또한 괜찮았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터뷰 영상을 두 개나 찍었다. 삼각대도 없어 리모컨을 거치대로 휴대폰을 세워놓고, 노트북 화면에 스크립트를 띄워놓고 슬쩍 곁눈질로 보면서, 찍고 또다시 찍고를 반복했다. 내 얼굴을 보며 영상을 찍는 것은 아직까지 꽤나 어색한 일이다. 완벽하진 않았고 내용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미 시간을 충분히 썼고, 더 촬영할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아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제출을 하고 났더니 정말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글을 한 번씩 봐준 M과 P에게, 그리고 이 계획을 공유했던 A에게 잘 제출했다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P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더니 왜 우냐고 한다. (물론 실제로 운 것은 아니다.) 나는 '완성했다는 게 뿌듯해서' 그리고 '에너지를 다 쏟아 너무 피곤해서'라고 답을 했다. 


목요일에 통화를 했던 A는 나에게 그랬다. '너 마지막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끝내고 제출해!' 어쩜 나를 이렇게 잘 아는 걸까. 결국 마지막날, 마감시간을 10시간 정도 남기고 제출하게 되기는 했지만 결국 완료를 했다. 



뿌듯함, 나의 변화 


제출을 하고 나니 믿을 수 없이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집에 갈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강의를 하거나 코칭을 할 때도,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느낌이 있지만 이건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여했고, 또 많이 고민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뿌듯함의 이면에는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다. 


그간의 패턴을 보면 '장학금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는 일이다. 이번 한 주만 보더라도 정해진 코칭 일정이 있었고, 코칭을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지원서를 내는 금요일에는 코칭을 포함해 세 개의 줌미팅이 있었다. 오전에는 10시까지 처리해야 할 일 두 가지를 먼저 끝냈고, 오전에는 친구 P와 M에게 에세이를 공유하고, 점심시간에 있는 회의에 필요한 자료조사를 했고, 12시 반에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난 후에는 3시에 있을 코칭을 준비했고, 코칭이 끝난 후에는 잠시 간식을 사러 나갔다가(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상황이었다.) 와서 에세이를 수정했고, 5시 반에는 예정된 줌미팅에 참여했다. 30분만 하자던 회의는 길어져 1시간이 되었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 이후에는 다시 에세이 수정과 인터뷰 영상을 위한 스크립트 작성, 녹화에 제출까지 마치니 오후 10시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해내는 틈에서 나와의 약속일 지원서를 제출해 냈다는 것의 뿌듯함이다. 나의 과도한 책임감은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다 정작 나와의 약속을 뒤로 두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에는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은 것이다. 일과 관련된 카톡이 팀장님에게서 왔고, 추가 논의를 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줌미팅 중에 온 카톡에 답장을 할 수 없었다. 미팅이 끝난 후에는 지원서를 제출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기에 보내주신 파일을 열어 검토를 하고 답장을 하는 것을 미뤄두었다. 평소의 나라면 팀장님의 요청을 먼저 처리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 파일을 열고 업무를 했다면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제출을 할 수 있었을까?) 



과거의 내 모습은


그런 경험이 있다. 사회 초년생일 때 내가 맡은 업무에서 지방 출장이 있던 날이었다. 지방 출장지에서 행사를 하고 들어오니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전화통화로 대학원 면접이 있었다. 이미 일에서 에너지를 다 쏟아낸 나는 면접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없었다. (물론 평소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아서였을지, 아니면 더 좋은 경쟁자들이 많아서였을지 이유는 많겠지만) 결국 나는 고배를 마셨다. 지금 같으면 면접이 있다며 양해를 구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사무실의 막내였던 나는 그 당시 요령도 없이 묵묵히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곳에서 몇 달 남지 않은 계약기간에 연장이 되지 않는 조건이라 그다음 스텝이 될 대학원 입학에 사활을 걸어도 모자랐을 상황이었을 텐데 나는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엄청난 중암감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하느라 나에게 투자할 에너지를 남겨두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의 변화는 외부에 도움을 구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했던 대학원을 준비하던 시기에 다른 팀에도 나와 같은 포지션에 대학원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에세이를 완성하고, 다른 팀인 나의 사수를 포함해 몇몇 선배들에게 에세이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다. 이미 경험 많은 선배들이 한 번 보고 피드백을 준다면 훨씬 나은 에세이가 되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인다는 생각에 어딘가 부끄럽기도 했고, 혹여나 ‘왜 이렇게 못썼냐’는 비난을 받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 대학을 졸업한 상태라 부족함이 많은 것은 당연한데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목표는 ‘대학원에 합격하는 것’이고, 목표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신경 쓰이는 게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지원하는 과정을 어디에 알리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선언하듯 A에게 이 계획을 공유했고, A는 자기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 이야기하라고, 꼭 완성하라고 응원을 보내 주었다. 



압박을 견뎌내는 것, 삶의 과정


제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쟁과 압박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구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무엇이는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나는 어딘지 ‘악착같이 달려드는’ 것에는 별 재주가 없었다. 양보와 배려가 훨씬 자연스러웠고, 대부분은 조금 손해 보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때로는 달려들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오는 것이 삶이 아닐까. 수많은 지원서를 써본 친구 P에게 매번 이런 압박을 어떻게 견디는 거냐 물었다. P는 답했다. “이게 삶이야. 삶은 원래 그래.” 우문현답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1차 합격을 하면 그다음 과정을, 아니라면 이것과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될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 적는다. 이 완료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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