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일주일
이번 한 주는 너무 많은 것들이 오고 갔다. 한 주의 대부분의 시간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리더십 교육을 들었다. 출발 이틀 전 밤샘을 한 탓에 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떠나오기 전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고, 꼭 필요한 짐만 챙겨 경유 시간을 포함해 15시간이 걸리는 물리적 이동을 했다. 나는 아침에 도착을 했고, 방을 함께 쓰기로 한 M은 저녁이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M과는 온라인으로 수없이 만난 사이지만 사실 같이 시간을 보낸 것은 작년 스톡홀름에서 잠시였다. 생각해 보니 밥 한 끼나 차 한잔을 함께 한 적도 없다. 회의장에서 오가며 대화를 나눴을 뿐.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믿고 같이 방을 쓰기로 결정을 했을까. 참고로 M은 나와 20살 정도의 나이차이가 난다.
M이 호텔에 도착해 같이 방으로 올라가는데 나에게 물었다.
“How old are you?”
그동안 서로 굳이 나이를 묻지는 않았으나, M은 이야기 중에 자신의 나이를 말하곤 했다.
나는 웃으며 몇 살로 보이는지 맞춰보라고 했고, 네덜란드 사람인 M은 전혀 모르겠다며 열 살쯤 어린 나이를 불렀다.
이렇게 서로 나이도 모르고, 함께 시간을 보낸 적도 없는 우리는 4박 5일간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다음 날부터 아침 일찍 교육장으로 이동을 했다. 교육장소는 다른 섬에 있어서 같은 호텔에 머무르는 다른 참가자들과 택시를 같이 타고 이동했다. 오가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떤 이유로 오게 되었는지를 나눴다.
이번 프로그램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했는데 참가자들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일본, 대만, 중국,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왔다. 호주에서 온 많은 참가자들은 이민자 출신기도 해서 멕시코, 스페인, 스리랑카, 페루 등 참가자들의 배경은 더 다양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태어난 곳과 자란 곳, 살았던 곳과 지금 사는 곳이 모두 다 달라 자기소개를 할 때 여러 나라를 언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 사람은 나 혼자였지만 프로그램 중반쯤 알게 된 사실은 호주에서 온 S가 십 년 전 한국에 일 년 간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어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단에서 한국인 참가자를 보고 반가워하며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 각 국가별로 그룹이 같이 온 경우들이 많았는데 필리핀 언니(Ate)들은 나를 "명예 필리핀 그룹원"으로 자신들의 그룹에 받아주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발리의 한 섬에 모여 4일간 함께 에코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굉장히 깊고, 또 어느 날은 무겁기도 해서 제대로 소화해 글로 적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깊게 스스로와 만나고, 자신의 취약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또 상대방을 위해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또 어떻게 하면 일상에 돌아가 배운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몇 가지 내용을 공유해 보면, 내가 참여했던 그룹에서는 대만의 한 작은 섬에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지역과 상생하기 위한 축제를 했던 경험을 나눴다. 축제의 프로그램 안에는 에코댄스가 있었는데 두 달 전 제주에서 참가했던 <산호의 춤> 프로그램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아 경험을 나누면서도 참 신기했다. 또 예술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공동작업으로 표현해 내는 이슈로 이야기를 나누던 그룹에서는 직접 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해 한 붓 그리기를 했다. 누군가 완성하지 못한 붓질을 이어 꽃이 피게 하고, 누군가는 원을 그리고, 선을 이으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은 수많은 영감과 인사이트를 가져왔다.
지난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을 일주일 연기하고 이곳에 온 오토 박사님. 프로그램을 잘 전달하기 위해 안팎으로 애를 썼던 진행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열린 마음으로 함께 나누던 참가자들. 70명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 모두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열린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우리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환경 안에 있지만 또 얼마나 많은 공통점이 있고,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내용과 경험과 사람이 들어왔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한 세계가 온다는 말처럼 그 깊고 넓은 수많은 세계와 마주하며 지난 한 주를 보냈다. 오가며 마주한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렇게 깊고 진하게 공명한 경험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게 할까.
그저 감사함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