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 일과 휴식의 균형
자기 고백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8년 전 2016년도 여름 무렵, 나는 자가면역질환자로 진단받았다.
그 무렵 병을 진단받기 서너달 전부터, 손, 발, 무릎, 어깨 부위의 관절이 아팠다 안 아팠다 반복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관절염일 리는 없고, 요즘 좀 무리했나, 잠을 잘못 잤나 정도로 가벼이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발을 바닥에 디딛는 순간, 찌릿한 통증이 발 전체에 느껴지더니 못 걷겠는 느낌이었다.
엄밀히 말해 이건 느낌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는데, 어찌어찌 옷을 입고도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걷지 못하겠어서 택시를 탔다.
그길로 곧장 정형외과에 가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았으나 일시적으로 증상이 호전될 뿐이었다.
이후로 증상은 더 다양해졌는데,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붉어지는 증상, 조조강직이라고 부르는 특이증상을 겪고는 대학병원 진료를 받게 되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검사들을 거쳐 나에게 내려진 최종 진단.
류마티스 관절염이었다.
내 몸 안에 나를 지켜야 할 면역체계가 오히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나 조직을 외부 물질로 잘못 인식해 공격하는, 이상하고 슬픈 병이다.
완치되기 어려워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분류되고 있고 약물로 증상을 조절해가며 평생 관리해야 한단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진단받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무리하지 말라’는 권고를 들었다.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잘 지켜야 하며, 컨디션이 나빠지면 또 다시 면역체계가 내 몸안의 세포들을 공격해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고 걷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류마티스 관절염은 뚜렷한 원인이 없다. 흡연이나 치주염이 발병 확률을 높인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흡연자도 아니었고 정기적으로 치과 스케일링에 구강 검진을 받는 사람이었다.
이미 진단받은 상황에 원인 찾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한순간에 환자가 된 억울함에 병의 원인 찾기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정답을 찾기 위해 골몰하는 일은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반년 정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다니던 로펌을 퇴사하였고 온전히 휴식에 집중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증상을 조절했고 다행히 약효가 좋아 실생활을 하는 데 거의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아파서 걷지도 못했던 불과 서너 달 전의 일을 잊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그새 내 커리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를 궁리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변호사를 꿈꿀 때부터 ‘개업’이 목표였었지. 이 정도 몸 상태면 개업을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그렇게 개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3개월.
나는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야 말았다.
사무실을 잘 꾸려보겠다는 강한 열의와 나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의 눈빛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사무실을 찾는 의뢰인들이 많아질수록 스스로 대단히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 된 것마냥 들떴고 일도 즐거웠다.
일에 매진할 때 머리가 핑핑 돌며 쏟아져나오는 아드레날린은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고 돈버는 재미도 컸다. 그렇게 나는 기꺼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내어주었다.
그러나 내게만 하루가 48시간이 주어질 리는 없는 법, 일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려면 당연하게도 일하지 않는 시간은 줄여야만 했다.
당시 나에게 밥을 먹는 것은 일할 에너지를 얻기 위한 지극히 기능적인 행위였다.
점심 시간을 따로 두지 않았고 직원에게 미리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다 달라고 부탁해 일을 하며 끼니를 떼웠다.
그 마저도 시간이 없을 때는 법원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신호등 빨간 불이 들어올 때 김밥 한 알씩을 입에 우겨넣으며 식사를 해결했다.
그래서일까. 자주 체했고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여러 번 씹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밀어넣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었겠지.
또 하나.
늘 종종 걸음으로 다녔던 탓에 두 발의 복숭아뼈가 부딪쳐 상처나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왜 자꾸 복숭아뼈에 상처가 나는지 알지 못했는데, 아주 나중에 느긋하게 걸어보니 전혀 상처가 나지 않는 걸 보고 원인을 알았다.
그렇게 1년, 2년, 3년 그리고 4년.
그러나 삶의 균형을 잃어버린 댓가는 반드시 치러야만 했다.
개업 전 정상 수치에 근접했던 나의 체내 염증 수치는 수직 상승했고 약으로 조절이 안 될 정도로 통증이 심한 경우에만 시도한다는 주사 치료도 받았다. 통증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도 많았고 밤새 이유모를 오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로 나의 상태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이런 신체적인 컨디션이 번아웃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를 잘 먹이고 잘 쉬게 했다면, 내 안에 내가 사라져 버리기 전에 자주 들여다보고 나를 채우고 또 채워 주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말라는 데 더 무리한 자의 최후, 가장 소중히 다뤘어야 할 나를 방임한 지난날을 제대로 인정하여야만 이제라도 변화할 수 있겠다 싶어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