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보면 좋은 일만 생기거나 나쁜 일만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번갈아 생긴다. 변호사인 내게 좋은 일이란 소송 중인 사건이 원만하게 조정이나 화해로 끝이 나거나 우리 주장이 재판에서 받아들여져 승소 판결을 받는 거다.
반면, 나쁜 일이란 예상치 못한 불의타 판결로 패소하거나 업무 과정에서 여러 원인으로 절차가 지연되거나 서류가 누락되어 의뢰인의 하소연과 불만이 생기는 경우다.
변호사가 처리하는 수백 개의 사건 중 일부는 승소하고 일부는 패소하며 일부는 화해나 조정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좋은 일과 나쁜 일의 무한 반복인 셈이며,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패소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라는 제도가 있어 2심 법원에서 다시 다퉈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승소 판결로 결과가 뒤집히기도 하므로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의뢰인은 소송에서 지게 되어 자신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한지 변호사인 나에게 토로하며 패소의 결과에 대하여 나를 원망하기도 한다.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했더라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하소연과 불만, 원망은 늘 뒤따라온다.
이런 소리를 듣고 기분 좋을 리 없지만 의뢰인이 자신의 변호사가 아니면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때로는 변호사를 비난할 의도라기보다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내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절망적이기에 그러하겠거니 하고 이해한다. 물론 이해를 한다고 했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해는 하지만 모진 말에 아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모진 말을 듣고 상처 난 마음이 잘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보통의 나라면 하루가 지나면 어제보다는 기분이나 마음 상태가 나아졌고 또 하루가 지나면 전날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는데, 뭐랄까 모든 게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수치로 표현하자면 타격감이 ‘3’ 정도일 일이 그때의 나에게는 ‘6’ 정도로 느껴졌다. 타격감은 곱절이 되었는데 회복은 느리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쯤 되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수준이었다. 자연스러워야 할 일상이 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었고 매일 입던 정장은 갑옷같이 무거웠고 차가웠다.
한번 가라앉은 기분은 왠지 다시는 수면 위로 못 뜰 것 같았고 기분이 나아지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으며 이러한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내 안의 나는 벽돌로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그저 발만 동동 굴렀다. 고개를 쳐들어 위를 올려봐도 그곳을 뚫고 나올 방법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나는 입술을 깨물며 슬퍼하고 또 슬퍼했다.
회복탄력성.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진: Unsplash의 Alex Shute
마음의 근력이라, 멋진 말이지 싶다. 그러고 보면, 그때 나는 회복탄력성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바닥에 내쳐진 나의 몸과 마음에는 다시 위로 올라갈 스프링도 힘도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