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오는 생각들
건강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기본 검진에 소변 검사가 포함되어 있었고 간호사가 준 소변 컵을 받아들고 화장실로 가 변기에 앉았다. 다들 알겠지만 소변 컵에 일정량의 소변을 담아 검사 통에 소변 컵을 두면 이것을 가져가 검사 후 결과를 알려준다.
화장실 문 앞에는 소변컵에 소변을 담는 방법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그 설명에 따르면, 몸에서 배출된 소변을 처음부터 담는 것이 아니라, 조금 흘려보낸 뒤 ‘중간(?)’부터 나온 소변을 담아야 한단다. 별로 깨끗한 내용도 아니니 이쯤에서 설명을 멈추겠다.
아무튼 설명대로 하기 위해 변기에 앉았는데, 그 당시 내 걱정거리인 사건 하나가 떠올라 그 사건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소변을 다 봐버린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소변컵에 소변을 하나도 담지 못했다는 말이다.
좁은 화장실 칸 안에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뭐 별 일인가, 다시 소변을 보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방금 소변을 봤는데 내가 소변을 누고 싶다고 해서 또 나오겠나. 혼자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일단 화장실을 나와 간호사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조금 뒤에 소변컵을 가져다 놓겠다고 했다.
그리고 삼십 분가량 정수기 앞에 서서 열심히 물을 마셨다. 소변이 안 나오면 미션을 성공할 수 없으니 꽤 집중해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비장하게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그리고는 소변컵에 소변을 담기 위한 '행위'는 하긴 했는데, 이럴 수가 있나.
또 실패했다. 또 그 사건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들어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우, 너 진짜 왜 그러니. 이쯤이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대체 나 뭐하고 사는 걸까.
두 번 실패하고 나서야 미션을 성공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날 당황했다가 어이가 없었다가 짜증이 났으며 후에는 뭔가 알 수 없는 패매감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