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돈과 재산을 지키는 일의 무게

의뢰인을 대신하여 일합니다.

by 이로브

변호사는 의뢰인의 재산 그리고 의뢰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을 ‘업’으로 한다. 재산이나 자유를 지키는 일이라니,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엄지를 치켜들어 올릴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갓 변호사가 되었을 때, ‘내가 이런 대단한 일을 하다니.’라며 감격했던 적도 있다. 펜을 칼 삼아 재판이라는 전장에서 상대와 논박하며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소리치는 모습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댔다.


10년 전 나는 정말로 그랬다. 물론, 실제 재판에서는 ‘존경하는’이라는 말은 안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변호사를 찾아오는 경우는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그리고 그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경우는 대개 급박하고 중대하며 자신들의 인생에 위기라고 느낄 만큼 힘든 순간들이다. 그리고 이때 변호사는 이들의 ‘대리인’이 되어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함께 한다.


좀 더 설명을 해 보자. 변호사는 ‘대리인’ 즉, 대신 하는 사람이다. 대신 하는 사람이라니, 의뢰인의 말을 앵무새처럼 전달만 하는 것이냐고? 전혀 아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하는 일상적인 말들이 법률적으로 의미를 가지도록 사실관계를 재구성하고 주장을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은 꽤 길고 고단한데, 왜냐하면 상대 역시 변호사를 내세워 우리 말이 거짓말이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때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게임이 쉬워진다.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으니.


최종적으로는 판사가 '그래 당신 말이 맞소.'라고 하면, 이를 소위 ‘승소’했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소송들이 있지만, 크게 보자면 민사 소송은 ‘돈’ 이 걸린 문제이며, 형사 소송은 ‘자유’가 걸린 문제다.


민사 소송은 사람들 간에 계약을 했다가 계약 내용이 지켜지지 않을 때 하는 소송이다. 통상 돈을 달라고 소송을 먼저 제기하거나(원고), 그 소송을 당하는 입장(피고)인 경우다.


이외에도 다른 사람이 잘못하여 내가 손해를 입었을 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내가 입은 금전적, 정신적인 손해를 ‘돈’으로 배상해 달라는 소송이다.


그러니 결국 대부분의 민사 소송은 ‘돈 에 관한 것이다.




형사 소송은 어떨까.


우리나라 형법에서 정해 놓은 여러 죄목에 해당하는 범법행위를 하였을 때, 이에 대해 경찰과 검찰은 죄가 있는지 없는지 수사한다. 죄가 있다고 판단되면 검사가 형사 재판으로 넘기며, 최종적으로 재판을 열어 판사가 유죄 또는 무죄 판결을 하는 절차이다.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 벌금형보다 무거운 형벌로는 징역형이 있다. 징역형이 선고되면 교도소로 수감되어 자유를 박탈당한다. 이를 법정 구속이라고 한다. 물론, 여러 감형 사유들로 인하여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형의 집행을 일정기간 유예받아 당장 교도소로 수감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형사 소송에서 변호사는 징역형을 피함으로써 의뢰인의 자유를 지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좋지 않다면? '판결 선고 전에 주변 정리를 하고 오십시오.' 라고 말할 수밖에. 세상과 단절될 준비라니, 끔찍하다.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자유를 지키는 일은 생각한 것보다 더 무거웠고 고됐다.


승소의 기쁨은 강렬하지만 짧았고 금새 사라졌다. 사람들은 우리 손을 들어준 판사의 판결로 인해 불확실성이 해소된 그 상황에 매우 빨리 적응하며, 끝내는 당연한 판결이었다고 여긴다. 정의는 우리 편이며 애초부터 이렇게 될 것이었음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나는 이 결과가 소송에 개입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통제하고 상대의 수를 예측해 이를 방어할 수 있는지까지를 그려본 뒤 한 수 한 수를 신중히 놓은 지난한 과정의 결과임을 알지만, 그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지난한 과정을 오롯이 감당할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패소는 슬프다기보다 고통스러운 쪽이었다. 작은 유리조각이 살갗에 가벼운 스크래치를 냈다가 그 틈 사이로 점차 깊게 파고들어 결국 피를 보고야 마는 느낌이었다.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머리 속으로 과거 재판 과정을 떠올리며 수십번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때 이렇게 말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때 왜 판사는 저런 말을 했을까, 그때 증인이 한 말이 판사의 심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야.' 라며. 당장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머리 속은 팽팽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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