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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이 Nov 30. 2022

결혼 주의 여자, 비혼 주의 남자

결혼은 되도록 빨리하고 싶었다.      


 20대에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빨리 낳아서 아이 친구들의 엄마보다 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회사는 다니겠지만 결혼 자금을 모은 후엔 미련 없이 퇴사하고 현모양처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언제든 얼마든 맛있는 간식을 척척 만들어 내며 아이의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은 되도록 늦게 하는 것이며, 결혼 후에도 자기 직업을 갖고 일을 해야지 대체 왜 가정주부가 되려 하느냐고.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가정주부인 엄마를 보며 나도 엄마 같은 주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부가 되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항상 작가라고 적어 냈으니까.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어도 작가라는 직업은 얼마든 꿈꿀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꿈은 지금도 유효하다. 

마음 한구석에 고이 간직해둔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소망 한 가닥. 

지금은 누구도 내게 꿈이 뭐냐 묻지 않기에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꿈 한 가닥.     


 결혼은 되도록 늦게 하라고 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혼으로 남아 있던 최후의 1인이 바로 나였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2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에 걸쳐 모두 유부녀의 길로 들어섰고, 대학교 친구들도 30대 초반엔 품절녀가 되었다.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친구들 대다수가 주부가 되었으며 주부이길 꿈꿨던 나는 외로이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혼이 불행한 친구들은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나를 부러워했고, 결혼이 행복한 친구들은 너도 빨리 결혼 하라며 나를 안쓰러워했다. (지금은 30대 중. 후반에도 결혼하는 사람이 많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에 결혼을 했다)     


 서른서너 살 즈음엔 자려고 누우면 쉽게 잠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그땐 이직을 하기 위해 회사도 그만둔 상태였기에 나의 30대가 늘 불안했고, 이렇게 결혼도 못 하고 평생 쭉 혼자 늙다가 혼자 죽을 것 같았다.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쿵쿵거리고 숨도 턱턱 막혀왔다. 


 서른다섯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지나고 난 뒤엔 다시 결혼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박 차장, 남자 친구가 연하라고 했지? 몇 살 어리다고? 네 살? 남자 이제 삼십 대 초반이면 난 이 결혼 어렵다고 본다. 내가 볼 때 남자 친구 결혼 생각 백퍼 없다에 한 표! 더 늦기 전에 빨리 다른 남자 알아봐.”     


 “ 너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그럼 이제 빨리 부모님께 소개하고 상견례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아? 곧 30대 후반 되는데 결혼 안 할 거야?”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과 하고는 싶은데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컸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비자발적 비혼 주의였다. 

 스스로 결혼이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결혼을 생각하기엔 가진 게 너무 없었고, 누군가를 책임지기엔 아직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어렸다.

 나는 만나는 사람은 있었지만 결혼할 사람은 없었고, 그는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라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상대는 내가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때가 되면 결혼은 꼭 해야 된다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사랑만 있다면 결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둘만 변하지 않으면 언제 결혼해도 문제 될 건 없지 않아요? 그게 당신 나이 사십이라도 난 상관없을 것 같은데. 상황 때문에 결혼 생각 안 하고 살았지만, 나 당신이랑 되게 살고 싶거든요. 현실적으로 당장은 결혼이 힘들지만 나 당신 반드시 책임질 거예요. 아이는 굳이 안 낳아도 돼요. 부모 사랑받아 본 적이 없어서 나도 좋은 아빠가 될 자신 없거든요.  평생 둘이서 행복하게 살면 되죠. "

 "보는 사람, 마주치는 사람마다 너는 왜 결혼 안 하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루저가 된 기분 알아요?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이제 반갑지 않아요. 대체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을 거니까. 친척들이 찾아와도 방에서 되도록 안 나오게 돼요.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난 아이도 한 명은 꼭 낳고 싶어요. 지금도 늦었는데 더 늦으면 아이도 못 낳을 거 같아요."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었던 나는 더 늦기 전에 결혼이 하고 싶었고, 이왕 하는 결혼이라면 사랑이 있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랑이 있는 결혼이 안된다면 사랑이 없는 결혼이라도 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나도 가정을 이루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맞벌이하면 넉넉하진 않겠지만 아버님 생활비도 보태 드릴 수 있을 거 같고, 정 안되면 모시고 사는 것도 방법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어서 하는 게 결혼이잖아요. 근데 그게 꼭 제일 사랑했던 사람과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결혼이 하고 싶을 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평생 반려자가 되는 거지. 타이밍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거고. 가정을 이루고 싶을 때 짝이 없으면 선을 봐서라도 결혼할 상대를 만나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요? 결혼도, 출산도 다 때가 있는 거니까." 

 ”결혼이 하고 싶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반려자가 되는 게 아니라 결혼을 할 수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반려자가 되는 거 아닐까요?”

 그와 나는 모든 것이 다 잘 맞았지만 딱 한 가지 다른 것이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그것이 이별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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