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말이 Aug 24. 2023

달콤말이 이야기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학도 문예창작과로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하기 싫은 공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원 없이 읽고 썼다. 밤을 꼴딱 새우면 글이 한편 완성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작가가 되면 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다는 것과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 내가 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좀 더 현실을 고려해 나 자신과 타협했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든 글을 쓰면 다시 작가의 꿈을 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수기로 장부를 써가며 연봉 1,200만 원에 처음 일을 시작(20년도 더 된 일이다)했다. 사장을 버티지 못해 3개월 만에 경리가 도망갔다는 회사였다.


 밑바닥부터 경력을 쌓았다. 급여대장을 작성하면서도 국민연금이 몇 % 인지, 직원과 회사가 각각 몇 %를 부담하는지 몰라서 사장님께 혼이 났다. 세금계산서 양식이 보이지 않아 비슷해 보였던 계산서 양식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서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나의 무지는 곧 회사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모르면 물어보고, 물을 곳이 없으면 공부하고, 원하는 답을 찾을 때까지 검색했다. 취향에 맞는 일은 아니었지만 계획적이고 꼼꼼한 내 성격과는 너무 잘 맞는 일이었다. 

 몇 번의 이직은 있었지만 2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다 보니 어느새 팀장이 되어 있었고, 40대에 들어서면서 앞으로 나의 회사생활에는 올라갈 일 보다 내려갈 일만 남았구나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 다른 일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늘 시작도 전에 포기를 하게 되었다.   

   

 “자기 꿈이 원래 작가였잖아. 다시 글을 써 보는 건 어때?”

 “내가 쓰는 글 읽어 본 적도 없잖아. 내가 쓰는 글은 별로 재미가 없어.”

 “꼭 등단을 하지 않아도 좋고, 그게 돈이 되는 일은 아니어도 상관없잖아. 요즘 글을 쓸 수 있는 콘텐츠도 얼마나 많은데.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면 좋겠고, 이젠 즐겁고 재미있는 일도 좀 해봤으면 좋겠어.”


 남편 몰래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이틀 후인가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작가 통보를 받았어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뭐라도 써 보자고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글 한 줄을 쓰기가 힘들었다. 먹고살자고 나를 들들 볶는 동안에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됐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글쓰기조차도.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우길 여러 번.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어도 우선 닥치는 대로 써서 글을 이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몇 번씩 다시 읽으면서 고쳐 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치고 다시 읽어봐도 내가 쓴 글을 사람들에게 보이기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저장된 글을 브런치에 옮기고 저장했다. 그런데 실수로 발행 버튼을 잘못 눌러 버렸다. 글을 발행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무척이나 당황했다. 발행 취소 버튼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한번 발행되면 취소가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미 발행된 글은 어쩔 수 없고 이왕 이렇게 된 거 1주일에 한 편씩 써서 올려야겠다고 홀로 다짐했다.      


 처음엔 약속대로 일주일에 한 편은 써서 올릴 수 있었는데 회사나 집에 이슈가 생기면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글 쓰기를 한 주 건너뛰면 다음 주는 몰아서 두 편을 써 올리기도 했고, 어느 주는 건너뛰고 모른 척하기도 했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나갔다. 


 아직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걸 모르는 남편은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고 한편이라도 써보라고 권하고 있다. 모르는 소리 말라고 다음 메인에도 내 글이 몇 번은 올랐고 소소하지만 꾸준히 글의 조회수가 늘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지만 아직 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남편이 어떤 이의 브런치 주소를 주며 좋은 글이니 한 번 읽어보라고 메신저로 보내주었다.

 “브런치를 알아?”

 “꾸준히 보는 건 아니지만 괜찮은 글이 올라오면 종종 보는데, 왜?”

 “글이나 이런 거에 관심이 없어서 자기가 브런치를 아는 줄 몰랐어.”

  내 글을 남편이 읽기를 원치 않는다. 내 주변 누구도 글쓴이가 나인걸 몰랐으면 좋겠다. 혹시 안다고 해도 모른 척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계속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달콤말이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팀장님이 달콤말이 예요?”

 회사 사람들과 종종 가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내 닉네임을 달콤말이로 등록해 두었는데 음료가 나올 때 부르는 걸 듣고 회사 사람들도 내가 달콤말이인걸 안다. 설마 작게 부르는 그 이름을 들으리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 조금 부끄러웠다.     


 같은 이유로 우리 남편도 내가 달콤말이 인걸 안다. 

 “달콤말이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자기가 달콤말이야?”

 허걱 하는 표정으로 남편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응, 왜?”

 “닉네임 바꿔라. 40대 아줌마가 쓰기엔 너무 안 어울리는 이름 아니야?”     


 사이트에 가입할 때 내가 넣고 싶은 이름을 입력하면 이미 있는 이름이라 가입할 수 없다고 나온다. 어릴 때부터 사용했던 이름을 넣어도 당연히 사용 불가라고 나온다. 그래서 별별 이름을 다 넣었다. 심지어 계란말이를 넣어 봤는데도 사용이 불가능한 닉네임이라고 떴다. 거의 당 중독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달콤한 걸 좋아하는 내 특징을 살려서 계란말이의 ‘계란’을 ‘달콤’으로 바꿔서 등록해봤더니 가입이 되었다. 그날부터 달콤말이 라는 이름을 쭉 사용해 왔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만 쓰는 이름이라 애착이 많이 갔다. 세상의 달콤함을 둘둘 말아먹으면 얼마나 달콤할까!     


 그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내가 달콤말이인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 주변 사람들이 글쓴이가 나 인걸 몰랐으면 좋겠다는 말은 참 아이러니 하지만 사람들이 검색창에 이 이름을 검색해 볼 일이 없다는 걸 안다.      


 어쨌거나 그렇게 올렸던 글을 엮어서 브런치 북 두 권을 완성했다.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남편에게조차 들키는 그날까지 계속 시치미를 뗄 참이다.     


 덧붙이기) 이 글은 브런치북 두 권을 완성하면 올리려고 몇 달 전에 미리 작성해 둔 글인데 남편은 이미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 글을 유심히 읽어 보지는 않았다고 하니(아마도 거짓은 아닐 거다) 앞으로도 그냥 시치미 떼고 글을 써보련다.     




이전 14화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이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