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후 한 달 이내로 출생신고를 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기에게 이름이 필요했다. 우리가 아기에게 처음으로 주어야 할 것이었다. 아기의 생년월일시와 성별은 우리가 정할 수 없었지만 이름에 대한 결정 권한은 우리에게 있었다.
나중에 개명을 하지 않는 이상 평생 불릴 이름이기에 꽤 고민이 되었다. 부르기에 쉽고, 받아 쓰기에 헷갈리지 않으며 국문은 물론 영문이나 한자로 쓰기에도 쉬웠으면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주를 보완할 수 있는 이름이어야 했다. 미신 일 수도 있지만 사주가 아이의 타고난 운명을 결정짓는다면 이름으로 후천적인 운을 최대한 좋은 쪽으로 끌어 주고 싶었다.
“내 동생 보면서 느끼는 건데 사람 이름이 참 중요한 것 같아. 우리 부모님이 내 이름은 그냥 지어 주셨는데, 내 동생은 할아버지가 작명 공부를 하시고 엄청 신중하게 지어 주셨다고 했거든. 근데 내 동생은 하는 일마다 다 잘 풀리잖아. 그럴 때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영향력이 있나 보다 생각되더라. 내 이름도 좀 신경 써서 지어 주지.”
내 오랜 친구와 아주 오래전에 지나가듯이 했던 대화인데, 왠지 모르게 그 대화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나중에 나도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이름은 신중히 지어줘야겠구나 생각했었다. 그 친구는 아마 본인이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에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사주팔자와 아이의 이름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조금이라도 신경 써서 짓는 게 그냥 유행 따라 부르기 좋게 짓는 것 보다야 낫겠지 싶었다.
하다못해 나중에 노상에서 재미로 사주를 보더라도 나쁜 소리는 안 들을 이름을 줘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남편과 내가 둘이 머리를 쥐어짜도 그게 좋은 이름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어서 작명소에 의뢰하기로 했다.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는 아니겠지. 마침 조리원에 연계되어있는 작명소도 있어서 요청하면 전화로도 작명이 가능하고, 조리원으로 방문하셔서 작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잠깐만! 찾아보니 유료 어플이 있는데?”
“일단 한번 깔아보자.”
어플을 깔고 아기의 생년월일, 성별을 입력하고 결재를 하니 아기에게 잘 맞는 이름을 별 5개부터 순서대로 보여주었다. 꽤 많은 이름을 후보로 보여줬는데 별 5개짜리 이름을 주려니 생각만큼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었다. 가장 처음에 보인 이름은 김건담이었다. 로봇도 아니고 건담이라니, 당연히 패스. 그다음 이름은 김규태였다. 내가 전에 잠시 다녔던 회사의 재수덩어리 50대 이사님과 같은 이름이라니. 무조건 패스.
딱히 끌리는 이름이 없었다. 김동화라는 이름도 나쁘진 않았는데 나중에 친구들한테 운동화 혹은 동화책이라고 놀림을 받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눈에 들어온 이름이 있었다. ‘김동하’ Kim Dong Ha, 金東河. 부르기에 쉽고, 영문으로 쓰기에도 한자로 쓰기에도 쉬웠다.
‘동’ 자가 이름에 들어가면서 왠지 좀 올드한 느낌이 났는데 ‘하’ 자가 그 올드함을 보완해 주는 듯했다. 세련미는 없는 이름이지만 어차피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짓더라도 더 마음에 드는 이름이 찾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확인하는 차원에서 작명에 관한 어플을 이것저것 깔아서 이번엔 역으로 아이의 생년월일, 성별, 이름을 넣어 검색해 보았다. 어느 곳에서 검색을 하더라도 아기와 잘 맞는 좋은 이름이라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이름에 맞는 뜻이 필요했다. ‘동녘 동. 물 하. 동쪽의 물’이라…. 보통은 뜻에 맞춰 이름을 짓는 게 보통인데 이름을 먼저 짓고 나서 뜻을 붙이려니 조합이 잘 되지 않았다. 바로 인터넷에 검색을 돌려보았다. 작명소에서 아기의 이름을 동하라고 지었다는 부모님이 올린 글인데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하고, 흐르는 강물처럼 형통하라’라는 의미에서 동하라고 지어줬다고 한다. 이거다!(인터넷에 글 올려 주신 분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우연히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꼭 답글을 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이름의 의미는 인터넷에서 주워 왔지만 내 기준에서 보면 이보다 완벽한 이름은 없었다.
조리원 퇴소 하루를 앞둔 날 남편을 보내 아기의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신고를 마친 남편이 들고 온 주민등록 등본에는 남편과 나, 아이까지 세 명이 가족으로 올라와 있었고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귀여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말 별거 아니었지만 그 스티커 한 장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출생신고 직후에 한 번 밖에 붙여주지 않는 특별한 스티커가 붙은 등본이라 소중히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의 마지막 일정은 신생아실로 가서 아기 목욕 교육을 받는 거였다. 세숫대야 두 개로 아기 씻기는 걸 배우는 거였는데 혹시라도 기억하지 못할까 봐 동영상을 찍어가며 열심히 들었다. 입소 전에는 산후조리원이 몸조리는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추가로 신생아 다루는 걸 단기속성으로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처음엔 조리원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빨리 퇴소를 하고 싶었는데 막상 퇴소를 하루 남겨놓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물론 한 달간 친정에 머물 계획이기는 했지만 전혀 경험이 없기도 하고, 스스로 엄마역할을 잘할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 같다.
아기를 낳고 나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직접 키워야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모든 게 막연하기만 했다. 이제 이곳을 나가고 나면 모든 것은 실전이 된다.
지금까지는 인간 달콤 말이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엄마 달콤 말이의 인생이 더해질 것이다. 아마도 잘 못하겠지. 그리고 많이 서툴겠지. 내가 잘하느냐 못하느냐와 관계없이 아이는 계속 자라날 것이고 웃는 날 만큼이나 우는 날이 많을 거라는 것도 안다. 결혼과 출산이 늦었던 만큼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엄마로서의 삶이 많이 뒤처져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이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도 안다.
‘네가 빨리 자라는 만큼 내가 빨리 늙어가겠지. 그렇게 빨리 늙어도 좋으니 어서 쑥쑥 자라주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 죽는 날까지 평생 너를 응원하고, 너를 사랑하며 살 거라는 걸. 다른 말을 찾아보고 싶지만 이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아. 동하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