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늘 회사 일로 바빠서 한 집에 살면서도 밤늦게나 볼 수 있는 사람이라 조리원에 있는 동안 자주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매일 퇴근길에 조리원에 들러서 아기와 나를 보고 갔다. 늦게 퇴근하는 날에도 잊지 않고 조리원에 들러서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갔다. 주말에는 아예 조리원에 들어와서 끼니도 김밥으로 때우면서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이러면서 무슨 아기를 낳지 말자고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남편이 조리원에 오면 어김없이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방으로 데려왔다. 하품하는 아기를 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채기하는 아기를 보는 것도 신기하고, 자그마한 아기가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남편이 방에 함께 있으면 아기 우유도 먹여주고, 안아주고, 함께 낮잠도 자 주었다. 전에는 ‘남편과 나’ 우리 둘이었다면 이제 뭔가 비로소 가족이 완성된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아기 기저귀가 젖어 있으면 당연히 선생님께 데리고 갔다. 기저귀 가는 걸 해 본 적도 없고, 산모 방에는 따로 기저귀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신생아는 수시로 쉬를 해서 기저귀가 젖어 있을 때가 많은데 얼마에 한 번 갈아 줘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조리원에서 기저귀를 한 팩 구매해서 방에 가져다 두고 아기가 쉬 했을 때 한번 갈아보았다. 배우지 않았지만 별로 어렵지 않았다. 엉덩이 밑에 보송한 새 기저귀를 깔고 차고 있던 기저귀 찍찍이를 떼고 한 손으로 두 발을 잡고 놀고 있는 나머지 한 손은 빛의 속도로 젖은 기저귀를 잡아 던지고 새 기저귀로 덮어서 찍찍이를 붙여주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응가였다. 예전에 조카가 두 살이던가 세 살이던 때 언니네 집에 놀러 갔는데 조카가 새 기저귀를 들고 와서 내 손에 들려주는 거였다. 기저귀가 묵직해 보여서 일단 눕히고 찍찍이를 열었는데 묵직한 건 액체가 아닌 고체였다. 너무 놀라서 찍찍이를 그대로 붙인 후 조카에게 사죄한 적이 있었다.
“미안해 이모가 응가는 어떻게 못 하겠어. 정말 미안해, ”
그리고 냅다 도망쳤었다. 기저귀를 갈아줄 줄 알았던 이모에게 배신당한 어린양은 도망가는 이모를 보며 울기 시작했다.
“소변인 줄 알고 기저귀 갈아 줄라고 열었는데... 내가 생각한 그게 아니야. 네가 좀 가봐.”
사색이 된 나는 새 기저귀를 거실에 있던 동생 손에 건네주었다. 그런데 아기 기저귀를 갈아 본 적도 없었을 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방으로 들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카의 기저귀를 척척 갈아주었다.
“너 이거 해본 적 있어?”
“아니”
“근데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손으로 하지! 빼고, 닦고, 입히면 되는 걸 왜 못해?”
결혼 전에도 내가 엄마가 된 모습을 상상해 보면 아기는 낳고 싶었지만 아기 똥 기저귀는 극복이 어려울 것 같았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박스로 사두고 기저귀 갈 때마다 사용한다면 그럭저럭 할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내가 낳은 내 새끼지만 기저귀를 열었을 때 응가가 들어 있으면 멘붕이 왔다. 그래서 조리원에 있는 동안 아기가 응가를 하면 당장 아기를 들고 선생님께 달려갔다.
“아기 기저귀 좀 갈아주세요.”
하지만 퇴소가 얼마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었다. 아기와 기저귀를 들고 응가 기저귀 가는 연습을 하러 갔다.
응가가 묻은 엉덩이를 물티슈로 한번 닦고, 세면대로 데려가 한 손으로 아기를 들고 한 손으로 세면대에 물을 틀여 따뜻한 물로 엉덩이를 깨끗이 닦아주고 면 손수건으로 물기 없이 닦아 새 기저귀를 채워주면 되었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실제로 하는 건 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드디어 방에 있을 때 응가를 한 아가의 기저귀를 갈아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알려 주신 대로 순서를 기억해 어렵지 않게 응가 기저귀 갈기 성공을 했다. 물론 비닐장갑은 필요 없었다. 아기 똥 기저귀를 직접 갈았을 때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됐구나 가장 실감이 많이 됐던 거 같다.
예전 중학교 때 출산휴가를 마치고 오신 국어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기 똥 기저귀를 가는 순간 아기가 방귀를 뿡 하고 뀌면서 실시간으로 나온 똥이 팔뚝에 묻었는데 그 똥마저도 사랑스러웠다는 이야기였다.
“에이~거짓말!!”
여중생이었던 우리들은 아무도 선생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 아기 똥이 팔뚝에 떡 하고 떨어졌는데 더럽기는커녕 그 똥도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내 말이 거짓말 같지? 너네도 나중에 다 엄마 될 거니 그때 가서 느껴보면 알 거야.”
그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내내 잊히지 않았다. 나중에 엄마가 돼서 느껴보라 하셨고 그로부터 12년을 기다려 그 순간이 왔다.
그리고 좌절을 맛보았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거짓을 말씀하셨던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선생님의 그 표정이 정말 진실로 행복해 보였었다. 그렇다면 내가 아기를 덜 사랑하는 걸까? 엄마로서 자격이 부족한 걸까?
“언니! 언니는 조카 똥도 사랑스러워?”
“사랑스럽겠냐? 더럽지! 아기 똥도 그냥 똥이야!!”
다행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그렇지만 최소한 아기 기저귀를 가는 순간마다 일회용 장갑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다. 아기가 응가 한걸 알게 되면 일회용 장갑을 낄 시간에 당장 기저귀를 먼저 벗기게 된다. 물론 손에 응가가 묻을 때도 있긴 하지만 내 손이야 기저귀를 다 갈고 난 후 비누로 씻으면 된다.
현재 우리 아들은 7살(만 6세)이다. 그리고 아이가 응가를 하면 당연하게 변기를 들여다 보고 모양과 양을 확인하게 된다. 아마도 스스로 뒤처리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날이 되면 아이의 응가를 확인하는 일을 멈추게 되겠지. 그리고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것도 안다. 내가 빨리 늙어도 좋으니 아이가 빠른 속도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내 소원보다 훨씬 빨리 아이는 자라고 있다. 그리고 지금에야 그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매 순간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