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는 누구인가
대구에서 긴 시간 살아오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서울에 사는 딸들과 합쳤다
두 딸은 이제 스스로 삶을 잘 꾸려나가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전문직으로 프리랜서로
엄마 없이도 잘 자란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히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만을 돌보며 살아도 되는 시간을 맞았다
처음엔 참 낯설었다
일찍 일어나 준비하던 출근도
조절해야 하던 일정 시간표도 텅 비어
무엇을 해야 할지
멍하니 앉아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어색했던 건
나는 누구인가
어떤 음식을 즐기며 무슨 색을 좋아하는가
단순한 질문에도
답을 쉽게 못하는 자신을 보며
난 할 말을 잃었다
딸들은 말했다.
"엄마, 이제는 엄마 인생 사세요.
더 늦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세요."
그 말은 따뜻했지만
내 안의 공허함을 들춰내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나를 처음부터 알아가야 할까
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토록 모른 채 살아왔을까
나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크게 '엉엉' 눈물을 쏟아냈다
울고 나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막혔던 길을 녹여주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올레길 같은 한적한 길 걷기를 좋아하고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의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길가에 핀 들꽃에도 눈시울을 붉히며
흘러가는 바람에도 두 팔을 벌린다
그래
난 감성이라는 것을 지닌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이제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다
느리지만
그 어떤 시간보다
진짜인 나의 색깔을 가진 시간으로
엄마였던 나를 사랑하지만
그보다 더 사랑해야 할 '나'라는 사람이
이제야 내 앞에
하얀 면사포 같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