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일 채식주의자> 프로젝트가 떠오른 것은 지난 달이었다. 가볍게 시도할 수 있는 좀더 건강한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1년 365일 매 끼를 채식할 순 없지만 일주일에 하루, 1년 52일 정도는 채식주의자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먹고 사는 방식은 혼자 결정해 바꿀 수 없는 가족 전체의 이슈이므로가족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리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을 해 보면 어떨까?
"비건으로요?"
중1 큰애가 어디서 들어봤는지 비건 채식주의를 할 거냐고 물었다.
"아니, 처음엔 고기 정도만 자제하면서 천천히 채식 식단을 늘리면 어떨까? 일주일에 고작 하루지만 막상 시작하면 제약이 좀 있을지도 모르잖아.어느 정도로 할 건지는 진행하며 천천히 결정해도 될 것 같은데?"
"전 원래 과일 야채 좋아하니 채식 찬성이요" 식구 중 고기를 제일 안 좋아하고 유일하게 제철 과일을 챙겨 먹는 둘째가 대답했다.
제철 과일을 챙겨 먹는 건 둘째가 유일하다. 채식 데이에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꼭 아침 과일을 제공해야 겠다.
"그럼 우리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 하기로 하는 거다. 엄마가 채식 데이에는 반찬 한 두 가지씩은 꼭 직접해줄게."
그럼 학교 급식은 어떻게 해요? 아니면 주말에 하는 거예요?
어째 애들이 더구체적인 질문을한다. 맞다, 일단 요일부터 정해야겠네.
"주말은 가족 모두같이식사하는 유일한 날이고, 외식도 많이 하니 평일이 좋지 않을까? 급식은 어떻게 할까?"
학교 급식을 생각못했다. 도시락 싸서 보내는 건 아예 계획에 없는 일이다. 일주일에 하루 채식 식단을 하겠다고 학교에 알리고 반찬 가려받는 것도 좀 과하다 싶다.
"채식식단은 일단 집에서만 하는 걸로 하고, 학교 급식은 나중에 너희들이스스로결정하면 어떨까? 우리 가족 모두 채식에 익숙해지면 채식 데이를 주말로 바꿔서 하루 세 끼 온전히 채식 식단에도전해도 좋을 것 같고."
처음부터 주말 하루 세 끼를 온전히 집밥으로, 그것도 안 해 본 채식으로 차린다 상상하니 부담감이 확 밀려온다. 그냥 평일에 간단한 아침, 건강한 저녁 한 끼 차리는 걸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무리 말고 천천히 하나씩 시작해 보자.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거에요?
질문이 또 이어진다. 애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적극적이 된 걸까?이게 다 먹고 사는 문제라 그런 걸까?
"글쎄 준비 좀 해서 2022년 1월부터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왜요? 당장 시작하면 안 돼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큰애가 중학생이 되더니 발표력이 많이 늘었구나. 어찌 저리 말을 잘한다니.
"그런가? 원래 이런 프로젝트는 1월1일 새해에 시작하는거야. 새로운 한 해 새롭게 살아 보겠다는 다짐이나 의지를 가지고 시작하는 거지."
그렇다고 우리도 꼭 1월 1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대단한 의지나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면...... 엄마가 꼭 다 안 해도 돼요. 요즘은 샐러드도 배달되잖아!
오늘 저녁에 사온 반찬들. 총 19,500원이다. 이 중 닭가슴살 샐러드가 6,000원이다. 물론 배달도 가능하다.
역시 내가 키운 내 딸 맞구나. 동네 반찬 가게에서 동냥, 아니 내돈내산한 반찬 먹고 자란딸 답다.
52일 프로젝트의 미덕은인생을 바꾸겠다는 대단한 결심이나 불굴의 의지 없이도 당장 실행가능하고 오래 지속가능한 쉽고 작은 실천에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철저한 준비가 아니라 당장 시작하는 실행력일지도 모른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일도 시작하기 어려운 일일테다. 굳이 1월 1일 새해를기다릴 필요가 없다. 언제라도 가볍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면 지금 당장 시작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 좋았어. 그럼 다음 주 화요일부터 시작하는 거 어때?"
"좋아요!"
애들이 왜 이렇게 신나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채식주의가 건강과 환경에 좋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 걸까? 오랫동안 요리를 쉬던 엄마가 요리를 재개한다는 사실이 반가운 걸까? 채식 데이 식단으로 뭐가 나올지 궁금해서 그런 걸까?
일단 아이들에게 일러둔 사실 하나,당분간 두부를좀 많이 먹게될 것같다는 사실. 채식 식단 하면 두부 아니겠어? 채식 식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나는 먹는 게 빈약해질까 살짝 걱정이 됐다.
"엄마, 그러지 말고 인터넷 찾아 봐. 유튜브 보면 다 나와. 유튜브!"
아이들이 더 잘 안다. 분명 내가 하자고 했는데 일정도, 방법도 다 자기들이 알려준다. 이제 정말 일주일 남았다. 다음 주 화요일 우리 가족의 첫번째 채식 데이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