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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 Nov 16. 2021

[프롤로그]요리하지 않는 여자

52일 채식주의자 1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1년 365일 떠올리며 이를 항상 실천하며 살아가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주일에 단 하루, 1년 365일 중 딱 52일 정도만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그 첫 단계로 나는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실천하며 나와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채식 위주의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건강한 식습관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52일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며 일주일의 하루가 나머지 여섯 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록하고 이를 나누고 싶다.


[프롤로그] 요리하지 않는 여자


나는 전업맘이지만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요리에서 손을 떼게. 오랫동안 외국에 살면서 뭐든 내 손으로 해 먹었기에 요리에 질릴 때도 됐다 싶었.


한국 마트가  작은 도시에서 살았던 나는 웬만한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었다. 출장 뷔페 수준까진 안 되도 가족들 생일상, 손님들 저녁상 정도는 무리 없이 차릴 수준이었다. 김치를 담그고, 치킨을 튀기고, 케익도 구웠다. 아이들 이유식 역시 열심히 해 먹였고, 아이들 음식 따로, 어른 음식 따로 몇 년을 그렇게 해 먹으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서 요리에 질린 거라고, 잠시 쉬어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2013년 내가 차린 내 생일상. 갈비에, 잡채에, 양념 치킨까지.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생일상까지 차렸을까. 아니면 뭐가 그리 고파서 저리 한 상 차렸을까.

귀국 후 집에서는 열심히 요리할 필요가 없었다. 양가 어머님께서 김치와 반찬을 해 주시기도 했고 가까운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배달음식도 점점 편리하고 다양해져서 코로나 펜데믹 이후로는 못 시켜 먹는 음식이 없다.


요리가 싫어진 건 요리에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었다. 며느리라서, 딸이라서, 엄마라서 요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가끔씩 굴욕감이 들. 그런 감정을 억누르고 음식을 만들고 나면 한동안 부엌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요리를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요리 자체가 싫었다.

정성껏 차린 간단한 명절 차례상, 조부모님 제사상. 명절이나 제삿날 마음이 불안한 건 나만이 아니다. 다들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날이 되었다.

"정성껏 간단히 차리면 되는데 뭐 그리 힘들다고 하는지......"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럼 직접 해 드세요"라는 말이 턱까지 올라왔고, 억지로 요리를 하고나면 번번이 탈이 났다. 명절증후군이 실재하는 병이라는 걸 알게 됐고, 아버지가 남의 요리를 흠잡을 때마다 그날 내가 차려드린 음식들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집에 기본 양념이라고는 소금, 설탕, 간장, 참기름, 올리브유가 전부다. 어른들참기름을 자꾸 주셔서 세 병 넘게 쌓여 있다. 가끔 사온 반찬에 파라도 추가하려고 냉장고를 열어보지만 야채칸은 텅 비어 있다. 늘상 구비해 놓던 무, 양파, 감자 삼총사도 이제 없다. 다행히 입맛에 맛는 반찬가게 사장님을 만나 감사한 마음으로 반찬을 사다 먹는다. 엄마 김치는 좋아하는데 다른 반찬은 입에 안 맞아서 엄마가 반찬 해다 주시는 것도 안 반갑다.


요리에는 시간과 돈과 정성이 든다. 요리 재료를 사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치면 하루 한 두 시간은 훌쩍 날아가버린다. 소량 판매하는 반찬은 집에서 그 반찬을 직접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비보다 싼 경우가 많고, 버리는 재료도 훨씬 적다. 인터넷 레시피에 따라 맛이 들쑥날쑥한 요리를 내놓느니 전문가의 노하우와 손맛이 깃든 요리가 더 낫다 위안하고, 반찬가게에서 골고루 골라 사 먹이는 게 균형잡힌 식단에 도움이 된다고 변명하며 다. 그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요리를 맡아온 생존형 요리사였을 뿐이다. 매 끼니  먹을까, 오늘은  차려야 하나 고민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어 준비하는 노동이 즐거운 적은 며칠되지 않았다.

반찬을 사먹기 전에 내가 준비해 차렸던 반찬들. 간단한 식탁이란 이런 모습일테다.

우울증을 판단하는 여러 증상 중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두 증상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흥미 상실(loss of interest)이고 다른 하나는 식욕 상실(loss of appetite)이다. 귀국한 뒤 나는 한동안 삶에 대한 흥미도 음식에 대한 흥미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내 시간을 빼앗는 모든 사람들이들을 위해 내가 해 주고 있다 느껴지는 모든 일들이 지겨웠던 것 같다. 어느 날 내게는 일상을 유지할 동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일상이 멈췄고, 요리도 멈췄다. 쉬기 위해서 매일 하던 일들을 내려놨는데 아무 일을 안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돌아보니 동안 내 몸과 마음이 아팠나 보. 누구도 돌보지 않은 몸과 마음은 케어를 원했고, 나는 그제서야 나에게 시간과 관심을 내주었다. 완전히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다시 잃었던 흥미를 되찾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요리도 그중 하나다. 슬슬 꺼져있던 주방 불을 켜고, 내 손으로 조금씩 음식을 다시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좋은 재료를 찬찬히 골라 사고, 깨끗이 씻고 다듬어 요리를 준비할 것이다. 시간에 좇기지 않고 마음 담아 한 번에 반찬 한 가지씩만 만들어 보고 싶다.


나는 이 모든 게 건강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걸음마처럼 느껴진다. 처음으로 요리를 배워 볼까 마음 먹고 요리 학원에 등록한 요린이의 셀렘 같기도 하다. 살면서 채식을 실천해 본 적도, 채식 식단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채식주의는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개인의 정체성이기도 하단 말을 들었다.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삼가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며 채식주의가 갖는 의미 또한 공부해 보고 싶다. 일주일의 하루가 나머지 여섯 날에 미치는 영향, 1년 52일의 실천이 남은 날에 미치는 영향을 천천히 지켜보며 내 삶의 변화를 기록해 나가고 싶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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