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연 Aug 24. 2022

트러플의 소망

네비게이션을 따라 낯선 도로를 달렸다. 작디 작은 도하 시내는 길만 막히지 않으면 십분이면 어떤 목적지든 쉬이 도착한다. 회사 직원이 알려 준 주소로 금방 도착햤지만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몇십분째 뱅글 뱅글 제자리만 돌고 있다. 이미 파티는 시작해서 조용한 동네 골목이 왁자지껄한 소음과 음식 냄새로 떠들썩했다.      


아직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라서 빈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한국식 문화라면 이런 때에 더더욱이 인사 선물을 갖고 찾아야 하지만 외국 생활을 오래하며 뻔뻔함이 늘은 나에겐 빈손이 대수롭지 않았다. 친하지 않기에 초대가 고마운게 아니라 시간내어 찾아주는 나의 성의가 더 큰 가치라고 생각했다. 늘 뺀질대며 구구절절 변명이 많고 매일같이 지각하는 마흐무드의 근무 태도도 불만이라 그가 하우스 파티에 초대를 했을 때 예의상이겠지 싶어 거절을 했었다.      


<우리 엄마 요리는 세계 최고야. 너 이때 아니면 시리아 음식 절대 못 먹어 볼걸>     


떠돌이 해외 생활을 오래 하면 집밥의 유혹을 거절하는게 쉽지 않다. 평안한 직장생활을 위해서는 의무적 사회 생활도 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의 마음을 바꾸었다. 다국적 사람들이 모이는 도하에는 남자들끼리 모여서 희희닥 거리는 국가별 평가론이 있다. ‘모로코 여자는 열정적 연인이고 시리아 여자는 순종적 요리사이고 레바논 여자는 빼어난 엔터테이너다. 하지만 카타르 여자는 오만한 마녀다.’ 내가 그 다양한 여자들의 국적을 깊이 사귀어 본적이 없어서 진위여부를 평가할 순 없지만 어딜 가나 박한 자국 여자들에 평가는 또 하나의 만국 공통의 유행인것만은 확실하다.         


<리사, My sister!! 대 환영이야, 어서와>

23살 불타는 청춘의 마흐무드가 이미 거나하게 취해 볼 인사를 한다. 그는 시리아 출신으로 카타르가 첫 해외 생활이지만 나보다 더 완벽한 영어 실력과 섹시한 영국식 액센트까지 갖췄다. 건축학을 전공한 학구적인 재능도 있겠지만 서구식 파티를 좋아하는 그는 매일같이 파티를 다니거나 열었고 수려한 외모덕에 금발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엘레나는 어때?>

<개는 이제 과거야. 여자들은 집착이 너무 심해. 딱 질색이야>

일상대화를 할 때는 쿨한 유럽 친구 같지만 여자에 대한 상투적 미덕을 이야기하는 그는 전형적인 아랍인이 된다. 사랑에 빠졌다고 소개받은 엘레나가 뭘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2주만에 마흐무드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래 모, 아직 젊으니까 한 참 놀때지.’     


<짜잔, 우리 엄마야>

모임에서 어울리지 않게 가장 연장자이자 유일하게 히집까지 쓴 아주머니가 덥석 내 손을 잡는다. 그녀에겐 동양인이 낯설 텐데 마치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볼을 부비며 호들갑스런 인사말을 건넸다. 오만한 바람둥이 마흐무드는 갑자기 순진한 양이 되어 통역을 한다.      


<엄마, 우리 회사 직원. 한국인이고 남쪽. 남한. 이름은 리사야>

<우리 엄마가 너 너무 깡 말랬대>

<무슨 소리야, 한국에선 나 완전 돼지거든>      

소란스런 파티속에서 그녀는 나를 음식 테이블로 잡아 끌고 손수 먹이기 시작했다. 딱 한국 엄마들의 극성을 꼭 닮았다. 내가 점잖게 사양해도 그녀들은 거절을 받아들이는 법을 모른다. 한국 미의 기준인 삐쩍 마른 체형이 이곳 사막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적당한 뱃살과 후덕한 턱살이 건강한 미로 칭송 받는다.


<이거 트러플 구이야. 너 이거 완전 귀한거 알지?>

<정말 이게 트러플 이라고?>

<그래 시리아엔 많아. 자연산, 자연산. 우리 엄마가 시리아에서 직접 공수해 온거야.>      

세계 3대 진미라서 귀하고 인기 좋은 트러플은 손가락 크기의 작은 유리병조림이 2,3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 값진 트러플을 꼬치 구이로 만들어 수북이 큰 접시를 채운 마흐무드 어머니의 통 큰 정성은 아들을 향한 그녀의 사랑 표현이다. 한국도 엄마들의 아들 사랑이 끔찍하기로 유명하지만 아랍인들도 그 열성이 절대로 덜하진 않다. 행여 국제 모성애 대회라도 열린다면 커다란 통뼈와 목청 때문에 우승은 아랍인들이 독점할지도 모른다. 아들의 친구와 직장 동료들을 위해 아낌없이 산해진미를 내어주고 일일이 초대객들의 손을 마주 잡고 굽신 거리는 모습은 마흐무드의 통역이 없어도 선명하게 들렸다.  아랍남자의 자부심으로 차마 낯 부끄러워서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아들 예뻐해 주세요, 우리 아들 잘 부탁해요.’     


히잡을 쓰던 부르카를 입던 미니스커트를 입던 그녀들의 내리사랑은 늘 망설임이 없고 절절하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