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3차 성징의 시간

by 유빛나리


“아빠가 암 이래.”


아빠가 암에 걸렸다고?

매번 건강하다며, 웃는 모습만 보여줬던 아빠의 몸은 울고 있었다.


연기를 포기하고,

취업을 실패하고,

어학연수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한 채

부모님은 아프셨다.


나에게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세상을 원망하고 싶었다.

잠시나마 멀리 떠나보낸 딸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아빠는

혼자서 조용히, 무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뒷모습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제야 나는 아빠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신체의 성장기인 2차 성징을 지나

성숙해진 마음으로

3차 성징의 시간을 맞이한 것만 같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암은 초기단계였고,

검진 중 발견되어 수술을 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별 거 아니야. 신경쓰지마."


애써 태연한 척 잘 다녀오겠다 말하는 아빠에게

나는 끝내 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눈물을 머금은 채,

꼭 그러기로 약속하자고 했다.


한 편으로 캐나다에 도착한 나는

바닥과 하이파이브를 하던

나의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 시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눈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고대하던 외항사의 최종탈락 후,

과외선생님은 국내 항공사도 열어두고

지원해보라는 말을 건네셨다.


출국하는 날,

그 해 첫 항공사 공채가 떴다.


학창 시절 한 때마다 꿈꾸었던 승무원을

이 나이에 준비하게 되다니.


오랜만에 쓰는 자기소개서는 딱딱한 형식이 아닌 자유형식이었다.

덕분에 그동안 품어왔던 예술성을 한가득 실어

자유로이 나를 표현할 수 있었고,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래도 되나?'싶을 만큼

즐겁게 '나'라는 사람을 써내려갔다.


몇 번의 수정 끝에 제출 했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회사로부터

1차 합격의 소식이 도착했다.


2주 후에 진행되는 면접.

그 시점은 내가 벤쿠버를 떠나

토론토로 거처를 옮길 즈음이었다.


‘밴쿠버에서 토론토로 옮기는 것도 정신이 없는데,

이 와중에 내가 한국으로 가는 게 맞는 걸까?‘

‘그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일까?’


막상 좋은 결과를 받고서도

눈앞의 기회비용을 따지게 되는 나 자신에게

‘너 마음 가는 대로 해.’

라며 스스로 답을 내려주었지만,

매일 달라지는 비행기 티켓값을 보며

미간의 주름은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결심을 한 순간, 또렷이 들린 내 마음의 소리.


‘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나이가 있는데 뭐라도 해야지.

다음 기회가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토론토에서 인천까지 왕복 총 150만 원.

흐린 눈으로 비행기 티켓을 결제해 버렸다.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순간.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향하는 한국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7년 간의 연기 생활 끝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만 같았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남아있었다.


'오디션에 수백 번 떨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

'실패를 기꺼이 인정할 줄 아는 태도.'

'진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


2차 면접장에 들어서며

수많은 지원자들 속에서 나는 '진심'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직업인 승무원이기에,

토론을 하는 내내

모든 지원자들과 눈을 마주치고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 멋진 사람이야.'라고.


토론을 마친 뒤, 면접관님은 나에게 질문을 건네셨다.


"지원자님은 캐나다 어학연수 기간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고 적혀있는 건가요?"


"네. 지금 캐나다에서 어학연수 중이고

오늘을 위해 캐나다에서 달려왔습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았다.


"비행기표가 비쌌을 텐데..."


"저는 비행기 티켓값보다 지금 현재 저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더 값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가장 큰 고려대상이었다.

과연 가는 게 맞는 것일까 50번은 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게 합격이 됐든, 불합격이 됐든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 있는 나를 보고 싶었다.


이후 나에게 쏟아지는 질문을 모두 답변한 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유독 후련했다.


앞을 향해 걸음을 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부모님에게 한국에 온다고

말하지 않은 상태로 몰래 입국했기에

하루 뒤, 바로 짐을 싸서 캐나다로 향했다.


미국 LA에서 경유를 하기 위해 입국 심사장에 도착한 찰나.

기나긴 줄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켠 순간,


'[000 항공] 전형 결과 안내'

'예서씨. SNL 오디션 1차 붙었어요.'


두 가지의 문자가 도착했다.



[작가의 말]


'세상에 완벽한 준비란 존재할까?'


돌이켜보면, 완벽한 준비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부모님의 아픔을 마주한 채

나는 꿈을 다시 정의해야 했고,

아무런 예고 없이 새로운 시간을 건너야 했다.


그때의 나는 완성형이 아니었다.

준비도, 마음도, 미래도

70%쯤 채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삶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고,

아픔은 불완전한 나에게 꾸역꾸역 밀려왔다.


삶은 언제나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말을 건다.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떠나 있고,

나는 여전히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다.


추운 날씨, 매서운 바람 속에서 몸은 움츠러들었지만,

그 사이 마음의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마음의 꽃이 아름다워지는 시기.

그것이 비로소 '3차 성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