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문을 닫으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by 유빛나리



'예서씨. SNL 오디션 1차 붙었어요.'

'[000 항공] 전형 결과 안내'


두 곳에서 나를 불렀다.


캐나다에서 어학연수 도중,

한국에서 면접을 보고 오는 돌아오는 길.

미국 LA에서 경유를 하던 찰나였다.


"저 지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 예매할까요?"


도망치듯 떠난 곳에서 배우에서 승무원으로

새롭게 도전하던 그때,

연기를 하며 함께 일했던 실장님께서

SNL 오디션 제안을 주셨고 영상을 제출한 상황이었다.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급할수록 천천히...’


이내 심호흡을 크게 고른 뒤

급히 실장님께 상황을 설명하며

비행기표를 예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저 지금 캐나다로 가는 중이고

지금 미국인데 바로 다시 한국으로 갈까요?

어차피 돌아가야 하면 지금 가는 게 나을 텐데. “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있었다.

와이파이도 연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심사할 때까지는 정해야 할 텐데...

그래야 정확하게 말을 할 텐데.‘


결국, 어떤 것도 정하지 못한 채 입국심사대에 도착했다.


"미국에 왜 왔어?"

"경유하러 왔어."

"어디로 가는데?"

"캐나다. 근데 나 다시 한국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

"너 진짜야?"

"응. 한국에서 일 생겨서 여기서 바로 가야 할지도 몰라."

"너 직업이 뭔데?"

"나 한국에서 배우 일 하고 있어.

캐나다에서 어학연수 하는 중이고 잠시 한국에 갔다 오는 길이야.

근데 오디션 잡혀서 다시 가야 돼."

"잠깐만. 나 따라와 와 봐."


아, 망했다.

그냥 경유한다고 말할걸.

왜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입국 심사관은 뒷주머니에 있는 총을 만지작 거리며

큰 키와 긴 다리로 휘적휘적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네 이름 부를 때까지 기다려.”

“응...”


그렇게 끌려간 세컨룸은 새로웠다.

미국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세트장 같달까.

두 눈이 커지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와중이었다.


‘아 이런 데서 찍어보고 싶다.

이것도 기념인데 사진이나 남겨야지.‘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찰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핸드폰 만지지 마세요!"


쭉 찢어진 눈의 동양인 심사관은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네...”


저 멀리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니

‘핸드폰 사용 금지’라고 적혀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척해보고 싶었지만

여기서 못하는 척하면 한국으로 정말 쫓겨날 것만 같아

열심히 알아듣는 척을 했다.


그리고 그 찢어진 눈의 동양인 심사관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앞에 앉으라고 했다.


"여기 왜 왔어?"

"캐나다 가려고."

"왜 가는데?"

"공부하러 가."

"그럼 가봐."


뭐지.

심사가 너무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세컨룸에 들어가면 몇 시간 있다가 나올 수도 있다’,

‘이제 미국 입국할 때마다 세컨룸 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는데 그나마 다행히 잘 나온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나온 공항 밖은 생각보다 예뻤다.

쨍쨍 비추는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크게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이곳이 진짜 미국이구나..

내가 정말 와보고 싶었던 곳.‘


잠시 앉아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미뤄뒀던 고민을 고민했다.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지.


20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냥 캐나다로 가자.’


비행기 티켓도 별로 없고

시간대도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캐나다로 다시 돌아왔다.


앉은 김에 지원한 항공사 전형 결과나 보자는 생각으로

지원자 이름과 번호를 입력했다.


‘축하드립니다.

귀하께서 2차 면접 전형에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3군데 항공사 합격으로

한 달간 깊어졌던 미간주름이 펴지고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추웠던 계절을 지나니 결국 봄은 오나 보다.‘


한 편, 걱정은 한 겹 더 쌓여갔다.

마치 모든 상황들이 나에게

지금 캐나다에 있을 상황이 아니라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어학연수는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제는 부모님께 상황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았고,

상의 끝에 모든 짐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곧 진행될 면접들에 떨어지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남은 기간 동안은

딴짓하지 않고 어학연수를 다 마치고 돌아오기로.


그만큼 절박하게, 최선을 다하기로.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SNL 오디션.


오디션에서는 3명이 들어가

지정대본과 개인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여 열정이 넘치는,

눈에서 빛이 나는 지원자들과 함께 들어갔고

그들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내려놓지 못해서였던 것인지

쥐구멍에 숨고만 싶었고

끝나고 나서의 내 얼굴은 토마토가 되어버렸다.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이 그러셨다.

"지금 좀 부끄러우세요?"

"네... 아직 제가 저를 못 내려놓은 것 같아요."


오디션을 보고 난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진짜로 연기를 그만둬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봐왔던 오디션과 결이 달랐던 오디션은

나에게 배우로서 사형선고를 내린 것만 같았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라며.


이제 연기 오디션을 보는 동안의 나는

눈에서 빛이 나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기 바빴고

긴장되던 순간 속의 내가 즐겁지가 않았다.


다른 한 편,

승무원 최종 면접을 앞둔 나를 면접관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와중에 대표님은 하나의 공통질문을 하셨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모두가 각자 생각하는 행복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던 찰나였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라...’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그 질문을 받자마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 질문은 나를 위한 질문 같았기에.

내 머릿속엔 여기까지 오게 된 내 과정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행복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야‘라는 말입니다.


간호학 실습을 하며,

응급실에 입원해 희귀병을 진단받고

한 달 만에 임종을 앞둔 중학생 친구를 보며

인생이 참 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늘 있을 면접을 위해

캐나다에서 19시간을 달려오는 길 내내

너무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000 항공을 이용하시는 고객님들 또한 저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경험하는 새로운 항공사의 비행기,

처음 밟아보는 땅,

모든 과정들이 행복하고 설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며 행복을 전하는 승무원이 되겠습니다."


빛나는 눈으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이야기를 했고,

순간순간 지나가는 장면들에 울컥하기도 해서 말이 떨리기도 했다.


"진짜로 운 건 아니죠?"


면접을 마친 후, 함께 들어간 지원자가 물어보았다.


"아니에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리고 나는 합격했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작가의 말]


고생했다.

매서운 추위와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꽃을 피우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니.


인생이 참 길고도 험하다.

네가 선택한 과정들이 순탄치도 않았지만,

운명이 참 기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추운 계절 속에 버텨온 너의 길 끝에는

새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만큼 더 아름답게 빛나고

꺾이지 않는 꽃이 된다는 걸 잊지 마렴.


하나의 문을 닫으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걸 잊지 마렴.


언제든 끝과 시작은 함께 한다는 걸.

너의 빛나는 눈동자가 참 귀하다.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