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폭풍을 감당하기엔...

by 유빛나리


첫 지원이자, 가장 간절했던 외국 항공사에서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고 며칠간 알아눕게 되었다.

이런 시간도 왠지 사치 같아 보이는 건 뭘까.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는 진단을 내려버린 나는 약을 처방하기로 했다.


그 약의 이름은 '환경 바꾸기'.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인생을 살다 보면 각자의 무기가 하나쯤 생기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그런 나의 최대 장점은 ‘회복 탄력성’을 꼽을 수 있었다.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너는 참 신기해. 넘어져도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나고,

그걸 통해서 더 강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다쳐 울고,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었음에도

머릿속에서는 유독 한 문장이 맴돌았다.

'이렇게 있다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환경을 바꿔야 해.'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가고 싶었던 어학연수나 가보자.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직후 바로 유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유학 박람회에 방문했고 어떤 나라로 떠나야 할지 고민이라는 나의 말에

상담사분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어학연수의 목적이 어떻게 되고, 어떤 영어를 배우고 싶으세요?"


"영어권에서 제대로 된 영어를 배우고 싶어요."


"음... 그러면 현실적으로 호주보다는 캐나다를 추천하기는 해요.

캐나다가 겨울에 가시면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고 비가 계속 오기는 할 거예요. 그렇지만 호주는 호주만의 악센트가 있고 또 인종차별이 종종 있어서 미국이랑 가장 가까운 캐나다 쪽을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


그렇게 나의 행선지는 캐나다가 되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박람회에서 부스를 돌며,

각각의 학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알아보았고

괜찮은 프로그램을 찾아 해당 어학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2주 만에 결정된 출국.

그때 당시의 나는 고삐가 풀린 망아지와 같았다.


"언제 출국을 희망하세요?"라는 말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요."라는 답변을 했다.


출국하던 날, 나를 끝내 울려버린 이 지쳐버린 한국 땅을 잠시 떠난다는 마음이 유난히 후련했다.

하루라도 빨리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상처와 눈물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에는

새로이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홀로 도착한 캐나다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래도 내 나이가 서른인데, 낯선 공항에서도 이리저리 잘 찾아 나왔다.

유학원의 도움으로 홈스테이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도착한 홈스테이 집에서 필리피노 가정의 주인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져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던 그때,

마음처럼 굳게 닫아버린 방문 너머로 들려오던 그들의 소리는

어색함보다는 지쳐있던 내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따스한 소리로 다가왔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더니.

도망치듯 온 캐나다에서는 행복은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기대감에 부풀어 도착한 학원의 첫 수업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Do you have any questions?"


"Yes, I have."



새로운 자아를 가져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꺼낸 나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꼬장꼬장한 백인 선생님은 그건 틀린 답이라며,

"No."라는 말만 반복했다.



"Yes."


"No."


"Yes, I...?"


"No."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여섯 번이나 단호하게 거절당하자,

약해져 있던 마음 탓이었는지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어버린 내가 너무 창피해서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을 애써 삼키며

절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감정은 폭포처럼 밀려 나왔다.


그가 원했던 대답은 "Yes, I do."였다.

Do로 물어보면 Do로 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방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성인이 된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앞으로 이 선생님과 세 달이나 더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다른 선생님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내가 듣는 프로그램은 특수과정이라

그대로 수업을 이어가려면 토론토로 가야 한다고 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간 상담실에서

"지사를 옮기는 건 무료니 고려해 보라"라는 말 밖에 듣지 못한 채로 나와버렸다.


일주일간 수업을 버티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말해버렸다.


"다음 달에 토론토로 갈게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정말 암담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한국에서는 마냥 귀찮기만 했던 전화가 왜 이리 반갑게 느껴지는지.

역시 따로 살아야 더 애틋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잘 지내고 있니?"


"응. 잘 지내고 있어. 엄마는?"


"엄마도 잘 지내고 있지. 근데 딸, "


"왜?"

"아... 이 말을 해야 할까 싶었는데..."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던 엄마의 목소리에서

조금씩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아빠가 괜히 너 신경 쓰이게 한다고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뭔데? "


"아..."


"말해봐."


"아빠가 암에 걸렸대."




[작가의 말]


이번 글은 무언가를 이뤄낸 이야기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택했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살기 위한 선택 속에서

'도망'은 어쩌면 필연적인 걸지도 모른다.

사실은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었기에.


내가 정의하는 '회복 탄력성'은

매번 잘 버텨내고 회복하는 힘이 아니라,

'무너진 상태에서도 다시 선택을 멈추지 않는 용기'라 생각한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제자리에 서 있더라도

정처 없이 맴도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아, 괜찮다.


오늘도 살아남아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엄청난 가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