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you for coming. You may leave now."
”저... 방금 집에 가라 그랬죠?
제가 잘못들은 거 아니죠? “
옆에 있던 지원자에게 다급히 물어보았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이유인즉슨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하루 안에 면접을 못 볼 것 같으니 나중에 메일로 안내하겠다는 것.
‘오늘 느낌 좋았는데...’
호기롭게 시작한 승무원 면접은 그렇게 찝찝하게 끝나버렸다.
집에 귀가한 후에도 당일을 복기하느라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2주 뒤,
최종면접 대상자를 안내하는 메일이 도착했다.
보고 싶지 않았던 정보와 함께.
메일을 통해 한 차례 더 선발이 이루어졌다는 안내였다.
이런 공지는 없었는데 다들 적잖게 당황했던 것 같다.
사진이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사진을 찍을 당시 힘껏 눈과 입꼬리가 휘어지게 웃어서 그런지
다행히도 합격했고 최종면접만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준비기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과 간절함이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D-1, 마지막 과외.
마지막으로 함께 봐주신 과외선생님께서는
뭔가 이상하게 뚝딱거리기 시작한 나를 눈치챈 듯 말했다.
“오늘따라 뭔가 자꾸 꾸며내려는 것 같네. 억지로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Be yourself 해봐. "
“아... 왜 제 자신이 안 나오는 걸까요?
얄팍한 자존감을 들킨 기분이에요. 너무 불안해요. "
“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
네가 연기 쪽을 하면서 어떤 마음이었어?”
“항상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었고
매번 떨어지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내려갔었는데,
여기서도 계속 반복되다 보니 제가 저를 지키기가 벅찬 것 같아요. "
“그렇구나. 저기 선인장 보여? "
“네 보여요. “
“저 선인장말이야, 내 제자가 준 선물이야.
너무 작고 귀엽잖아? 근데 저 선인장이 옆에 있는
크고 우아한 산세베리아가 되려고 하면 어떻겠어?
삐쭉빼쭉하고 귀여운 선인장 자체만의 매력을 잃는 거야.
너도 똑같아. 자꾸 보여주려 할수록 너라는 사람이 가진 매력을 잃을 거야.
꾸며낸 너로 면접을 보고 떨어지는 것보다 너 자체로 면접을 보고 떨어지는 게 덜 후회될 거야. “
'투둑-'
그 순간, 머릿속에서 나를 옭아매던 밧줄들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왔던 배우 생활, 벼랑 끝에 있던 내가 떨어져 버렸다.
조연과 단역만 하다 보니
내 인생도 조단역과 같이 느껴졌던 7년.
이제는 예쁘게 보듬어주고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계절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순간이었다.
따뜻한 날씨가 오기 전 맞이하는 꽃샘추위처럼,
맞이하는 이별은 생각보다 춥고 시렸다.
'과연 나에게도 봄이 올까...?'
과외를 마치고 혼자서 돈가스집에 갔다.
떨어지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돈가스를 한입에 욱여넣으며
"나는... 귀여운... 선인장이야..."
를 반복적으로 되새겼고,
이번에는 꼭 해내겠노라 다짐했다.
지금 보면 어찌나 기괴하던지.
D-day, 최종면접 당일.
최종면접은 지원자 4명과 면접관 4명이
1:1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재미와 친근감이라는 특색을 가진 항공사처럼
지원자들 또한 가지각색이었고,
다들 특별한 자기소개를 준비한 것만 같았다.
타로 카드, 마술 등등...
내가 준비한 자기소개는 조금은 특별한 나의 그림 소개.
“이건 내 다이어리야. 내가 여기에 그림을 그려왔어.
이건 나의 미래의 모습이고, 각각 5년 뒤, 10년 뒤, 30년 뒤의 모습이야.
그리고 필요하다면 어린이 승객들을 위해서도 이런 식으로 그림을 나눠줄 거야. “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면접관의 표정은 묘해졌고, 돌아오는 질문은
“얼굴에 이건 뭐야?”였다.
“이거 주름이야. 내가 가능한 한 정말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 “
갸우뚱거리는 면접관을 앞에서 덧붙였다간 큰일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직후, 장기자랑이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기자랑이 웬 말이야...?'
특기가 있는 사람들은 나와서 어떤 것이든 해도 괜찮다는 말에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나의 내면에서는 엄청난 갈등이 시작되었다.
주변에서는
"장기자랑 하면 합격이라는 얘기가 많더라."
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왕년에 춤동아리 부장이었고, 배우였다.
그렇지만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걸까.
'여기 100명 정도 중에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눈 딱 감고 하자.'
주춤거리던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 지 5분째,
용기를 내어 무대로 나갔을 때,
마치 '땡-'이라고 외치듯, 진행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제는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제길...'
뽑는 정원의 절반 정도가 되는 사람들이 장기자랑을 했다.
그러면 합격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드는 격.
이후 진행된 그룹 평가에서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자며 나를 다독였다.
정말 마지막 단계인 그룹평가.
방식은 '게임'이었다.
약 10명이 한 줄로 길게 서있으면,
사회자가 하나의 문장을 제시하고
귓속말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사람은 전달받은 내용으로 칠판에 그림을 그려야 했다.
모두가 유쾌하지만 무난하게 마무리했던 마지막.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의 느낌은 좋지가 않았다.
장기자랑에서 머뭇거렸던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약 1주간의 기다림 끝에 받는 결과는
'불합격'
이상하리만치 합격 발표가 나는 날에는 꿈을 꿨다.
옆지원자는 떨어지고, 내가 붙는 꿈이었다.
꿈에서는 너무나 해맑게 좋아했지만
눈을 떴을 때는 유쾌하지 않았다.
꿈은 반대라며.
이렇게나 선명한 꿈을 꾼 적이 없었는데
마치 신은 오늘의 결과를 미리 넌지시 알려주듯,
결과는 정확하게 정반대였다.
내가 원했던 가장 원했던 항공사에서의 결말은
‘불합격.’
벼랑 끝에서 떨어져 너덜거리던 내 몸이
누군가에 의해 한 번 더 짓밟혀 으깨진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배우로 생활하며 인생의 쓴맛을 참 많이도 보았다.
쓴맛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한참 음미해야 했다 보니,
느꼈던 쓴맛에는 단계가 있었다.
썼는지도 모르고 지나간 1단계.
단맛으로 덮으면 괜찮아졌던 2단계.
혀와 입천장이 쓴맛으로 가득해 속까지 안 좋아졌던 3단계.
나는 또다시 3단계의 쓴맛을 보았다.
제대로 된 첫 지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낮아진 자존감 때문인지
스스로를 ‘한동안 회복 불가능 상태‘로 판정 내려버렸다.
나에게 ‘한동안 회복 불가능 상태’라 함은
약을 먹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단계이다.
그리하여 약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환경을 바꾸는 것.'
그렇게 나의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됨이 예고되었다.
[작가의 말]
넘어져서 손이 까져버렸다.
불안 속을 헤매느라 마음이 새까매졌고,
나의 세상에서는 소나기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싶었으나 우산이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아
온몸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홀딱 젖었고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멀리 보이던 것들이 흐려진 덕분에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저 멀리 있는 멋진 빌딩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놓인 횡단보도부터 건너야 했던 것이었다.
누군가 거세게 내리는 소나기 속에 중심을 잡기 힘든 상태라면
눈앞에 놓인 것들을 보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소나기는 소나기일 뿐.
언젠가는 그치리라 믿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서 모든 사물들이 또렷이 보일 때,
그때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 괜찮다.
모두가 자신만의 선인장으로 당당히 서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