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1849, 다시 시작이야

by 유빛나리



나에게 연기란 내 정체성이었던,

마음속에 불을 지피며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지나

이렇다 할 결과 없이 반복되는 작은 배역들에 지쳐

마음의 흐름이 정체되었던 구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소속사와의 이별과 다른 소속사와의 재계약과 재계약.

정말 많은 일들이 지나갔었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겠다며 잠시 일을 하던 와중 어학연수라는 꿈이 생겼다.


"아빠, 나 어학연수 갈래."

"웬 어학연수?"

"저번에 필리핀에서도 일주일 만에 돌아왔잖아. 이번에는 진짜로 잘하고 싶어."

"갈 거면 좀 제대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몇 개월 간다고 해서 네가 원하는 만큼이 될까?"

"그건 생각해 볼게."


비장함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뗀 나의 포부는

지질한 답변으로 끝났다.

이렇다 할 목표 없이 말해버린 나의 답변에

'방금 진짜 멋없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난 친오빠와의 다툼.

각자의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았던 것 이유였다.

서로의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드디어 사달이 났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오가기 시작한 때부터

우리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재하시던 아버지도 백기를 드셨고,

아버지 입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 나와버렸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네."

"너 30살 되면 연기 그만둔다며. 이제 곧 30살이 코앞인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


피하고 피했던 연기를 그만했으면 한다는 말.

아버지의 말은 부드러우면서 설득력이 강했기에

나에게 타격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되는데... 아직 포기 못했는데...'

'이제는 진짜 포기할 때가 된 걸까...?'

'열심히 두들기는데 왜 답이 없는 걸까.'


열심히 장독대에 쌀을 가득 채워놨는데

막상 열었더니 쌀 한 톨밖에 없는 것과 같은 기분.


잠시 나의 밑바닥을 본 것만 같았다.

흐린 눈으로 버티고 버티던 것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0대 끝자락, 나는 또다시 도전의 기로 앞에 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도전은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혀서인지,

도전이라는 것이 겁이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정의하라고 하면 '도전과 열정의 여성'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 또 새로운 것을 하라면 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대체 뭘 해야 할까.


그럼에도 한 발자국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두렵지만 시도가 없으면 결과도 없으니까.

그 당시 내가 구하고 싶었던 직업의 명확한 기준은

'외국에 나가서 영어도 배울 수 있으면서 한국에 자주 올 수 있는 직업'이었다.


고민 속에 외항사 승무원이라는 답을 내렸고,

그렇게 나의 승무원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에 눈에 들어온 3주 남짓 남은 한 외항사의 채용공고.


2년 만에 한국에서의 공채,

아시아권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 비슷한 문화.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이에나가 될 것이라며

자기 최면을 하기 시작했고

직장을 마치고 스터디와 과외의 도움을 받으며

3주간 밤을 새워 약 100개의 질문에 걸맞은 면접 답변을 만들었다.


D-1 일, 과외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합격한 애들 보면, 신기하게 합격하는 날에는 모든 게 잘 풀린대."


그리고 D-day.


새빨간 입술, 짙은 눈화장과 두꺼운 속눈썹.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맞는지 모를 정도로

새로운 가면을 쓰고 보러 간 첫 면접.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간 면접장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미리 지원한 사람들과 당일 방문 한 사람들 사이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보통 외항사는 당일에 결과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고,

이곳 또한 그러한 곳이었다.


첫 관문은 캣워킹이라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마치 모델이 된 것처럼 당당하게 걸어가

면접관에게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이후 약 40명쯤 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합격자를 호명하고 불합격자들은 귀가하는 형식이었다.


동그란 테이블에서 희비가 엇갈리며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얼굴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오징어 게임에 참석한 것만 같았다.


내 번호는 '1849'

긴장감 속에서 나와 비슷한 것만 같은 번호가 불렸다.


"number one, eight, four, nine."


"Here."


이건 분명 나다.

옅은 웃음과 함께 손을 번쩍 들고 답변을 했다.


합격자들은 영어테스트를 진행한 후에

그룹 면접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어테스트 이후,

모두 귀가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작가의 한 마디]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두려워도 한 발자국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또다시 어두운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언가에 걸려 휘청이기도 하고

가는 길이 무서울까 누군가에 기대고도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 속에서 눈이 익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움직일 용기.

‘한 발자국’이었다.


결과가 나를 증명해주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은 나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 내가 얻은 것은 합격여부를 떠나

다시 한번, 나를 끝까지 데려와 준 나 자신이었다.


여태 나는 텅 빈 것만 같은 장독대를 가진 사람이 아닌,

필요에 따라 비워내고, 새로 채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

두려워도 걸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