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승무원이다.
서른에 연기자의 길을 포기했고
돌고 돌아 승무원이 되었다.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 시작된 꿈이었고
예상과는 다르게 국내 항공사에 취업을 하였지만
누군가 지금의 삶이 만족하냐고 물으면 만족한다고 답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여성미를 뽐내는 유니폼을 입고,
캐리어를 가지고 다니는 승무원들이 예뻐 보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완연한 봄이 올 때쯤,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전한
한 항공사의 면접에서 합격의 소식을 들었고
입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행된 일주일간의 집체교육.
"어? 0000에 나왔던 배우 닮았어요!"
회사 이사님과 함께 등산한 산 정상이었다.
사람들이 빼곡히 있는 곳에서
객실 승무원 동기가 될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하하. 그래요? 닮았단 소리 많이 들었어요."
어색함에 멋쩍은 웃음만 펼치며 눈알을 세차게 굴렸다.
여태껏 만들어온 배우로서의 나는 버리자고 마음먹었기에,
순탄한 회사생활을 위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나'라는 사람을 꽁꽁 감싸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보다 인기가 많았다.
아니 많았다고 착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산에 집중하며 천천히 내려가고 있을 때 한두 명씩 말을 건네고 갔다.
"저는 알아봤어요. 잘 봤어요."
"네? 어... 네 고마워요."
모든 환경들이 나에게 특별한 시작과
새로움을 예고하고 있었다.
승무원으로 입사하면 모든 게 끝날 줄만 알았지만,
나에게는 큰 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Capter 1. 승무원 초기 훈련.
“다른 항공사는 교육 중에 하품했다고 혼났대.”
"힘들어서 2시간씩 자고 이런다는데?"
"다리 꼬면 진짜 엄청 혼난대요. 우리 조심해요."
대체 승무원 훈련은 어떻길래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걸까.
승무원 초기 훈련을 목전에 두고 두려움과 궁금증이 교차했다.
항공사 면접을 준비할 때,
면접에 붙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들이 말한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던 나를 원망해야 하나.
막상 입사하고 나서 눈을 감았다 뜨니 초기훈련이 지나가있었다.
약 세 달가량 수없이 외우고 시험을 보며 고통과 뿌듯함 속에서
'중간만 가자.'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자.'로 바뀌기까지
힘든 시간을 지나며 독기가 가득해졌던 시간들.
그리고 듣던 대로 교육은 엄숙하고 무섭기도 했다.
"웃지 마세요. 지금 본인 잘났다고 웃으십니까?"
'아닙니다. 그냥 상황이 웃겨서 웃은 겁니다.'
라고 말이 튀어나올 뻔한 입을 꿰매 보기도 했다.
마음이 여린 어린 친구들은 큰 눈망울에 이따금씩 눈물이 일렁이기도 했지만,
미소와 태도가 전부인 승무원으로서 자질을 갖추는 과정이라 생각하다 보니
혼나고 지적받는 것에 마음을 열어두었고, 정신적 타격감이 많이 줄었다.
'저렇게 지적하고 혼내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치는 않겠네.'
이게 바로 나이로 먹은 경험의 위엄이자 세월이 마음에 쌓였기 때문인 걸까.
남들은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 많이 전향하던데,
나는 거꾸로 프리랜서의 삶에서 직장인으로의 삶으로 왔다.
갖추어진 조직과 체계적인 교육.
고정적인 월급 체계.
멋진 선배님들과 동기들.
종종 이루어지는 회식.
비바람 속에서 처음 지붕을 찾은 기분.
각기의 직업에는 장단점이 명확했지만,
확실한 것은 나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생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수료식을 마칠 즈음.
비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시간이었다.
"우리 1기 승무원이잖아.
첫 비행기 띄우는 작업 들어가야 한다는데,
그거 명단 메일로 왔대. 확인해 봐."
그리고 들어간 메일함에서 확인한 굵은 글씨의 제목.
<훈련 입과 안내>
망할.
그렇게 3개월간의 훈련이 끝나고
또 다른 훈련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말]
과거의 나는 말해주고 있었다.
'여태껏 해온 모든 노력들은 앞으로 네가 가는 길 곳곳에 묻어있을 거야.'
내가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특정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고통과 힘듦 속에서도 이겨내야 하는 이유를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할 때였다.
새로운 조직과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섦 앞에서 적응해야 하는 순간들이 올 때
그리고 그 과정이 유난히 힘들 때는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새로움을 즐겨보는 건 어때?'
우리는 결국 이겨낼 거니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