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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Feb 03. 2024

고시원도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평생 동안 내가 만나야 할 모든 종류의 사람을 압축적으로 만난 듯하다. 앞으로 내가 살면서 이렇게 다양하고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을까? 우리 고시원의 방 개수가 대략 40개이고 달마다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헤아린다면 1년 동안 스쳐간 사람이 1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며 고시원을 얼마간 운영해 보니, 이곳 사람들을 내 나름의 기준으로 유형화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유형은 숨 죽인 개구리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더 나은 거주 환경으로 이사 가기 위해서 봄을 기다리는 개구리처럼 잠시 몸을 움츠리는 것으로 고시원을 택한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착실해 보인다. 더 나은 거주지로의 이동이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고,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가진다. 대부분 배달을 음식을 시켜 먹거나 밖에서 해결하고 오는데 비해, 공용 주방에서 알뜰살뜰 집밥을 해 먹는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결국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 오피스텔을 얻어서 간다는 사람, 옥탑방을 구해서 간다는 사람, 청년 주택에 당첨되는 사람, 빌라 월세를 가는 사람 등등 다양하다.



두 번째 타입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철새형이다. 이들은 고시원 이곳저곳으로 이사 다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이들이 이렇게 옮겨 다니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부분은 현재 살고 있는 고시원에 불만이 있는 경우이다.  시설이나 관리 측면에서 맘에 들지 않아 더 좋은 곳을 찾는 것이다. 혹은 특별한 불만은 없지만 그냥 지겨워서 새로운 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보증금도 거의 없고, 계약기간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정 가능하기 때문에 원룸에 비해 이동이 수월하다. 한 번은 근처 다른 고시원에 사는 한 여학생이 우리 쪽으로 방을 보러 온 적이 있는데, 옮기려는 이유를 물어보니, ‘한 곳에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지겨워서요.’라는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세 번째 타입은 엉덩이 무거운 육지 달팽이형이다. 육지 달팽이는 겨울잠을 오래 자기로 유명한데, 최장 3년까지도 겨울잠을 잔다고 한다. 고시원에 한번 터를 잡으면 엔간해서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겨울잠을 자는 육지 달팽이 같은 분들이 꽤 많이 계신다. 그 들은 극 가성비를 추구하고, 고시원을 내 집처럼 여기며 나름 안정감을 느끼며 생활하시는 분들이다. 물론 허름한 고시원을 일종의 '집'으로 여기게 되기까지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 고시원 최장기간 거주자는 10년째 살고 어르신인데, 우리는 이분을 고시원 슈퍼맨이라고 부른다. (이 분은 우리 고시원의 터줏대감으로 일전에 괴상한 슈퍼맨 아저씨 편에 출연한 바 있다.)



이렇듯 조금은 특별한 '집'에 사는 가지 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며, 자연스레 내가 생각하던 집이란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보증금도 없고,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는 2평짜리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집이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먼저 제일 가까운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면, 나에게 있어 집이란 아늑한 보금자리이며 욕망의 대상이었다. 20대의 내가 생각하던 집은 '내 몸 하나 편히 뉘일 종착지' 였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신림동 월세를 전전할 때, 이사 다니는 게 진절머리가 났다. 그리고 제발 방은 1개라도 좋으니 거실다운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꿨었다.



그렇게 나는 월세를 전전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세금 대출을 받아 작은 거실 겸 주방이 딸린 다세대 주택 투룸에서 살았다. 상경한 지 딱 7년 만이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남편과 결혼을 하며 신혼집으로 18평짜리 아파트 전세를 구했다. 태어나서 난생처음 살아보는 아파트였다. 평수도 좁고 내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방 2개와 아담한 거실이 있는 낡은 신혼집은 봄 처럼 따뜻했고,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다. 진짜 내 집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전세 계약이 끝나고 우리는 큰 결단을 내렸다. 적당한 영끌을 하여 내 나이와 비슷한 20평대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더 흘러 지금은 소위 말하는 30평대 국평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집 자체에 대한 느낌을 떠올려 본다면 가장 애착이 많이 가난 것은 첫 자가이다. 자본주의에서 처음 내 집을 샀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기도 했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40인치 TV도 60인치처럼 느껴지는 거실을 가진 낡은 구식 아파트였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첫 아이를 낳았으며, 비로소 진정한 가족을 꾸렸다. 신생아 시절 아이가 울면 아기띠를 메고 몇 발자국 안 되는 거실을 빙글빙글 돌아야만 했고,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땐 궁여지책으로 아파트 복도를 트랙 삼아 빠른 걸음으로 왕복 경보를 했다. 그 집에서 내 아이는 첫걸음마를 떼었고, 백일이 되던 날엔 이웃집 아주머니와 할머니로부터 새빨간 겨울 내복과 정겨운 손편지도 선물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 집을 나올 때 참 많이 아쉬웠고 몇 날 며칠 코 끝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여전히 그 아파트 앞을 지나갈 때면 아이에게 "여기가 네가 태어나고, 첫 발을 뗀 곳이야. 엄마가 여기서 너를 낳았지." 하고 옛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낯선 중년 남성이 고시원에 불쑥 나타났다. 누군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 전 원장님을 뵈러 온 것이었다. 이미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어 전 전 원장님은 알지를 못한다고 하니, ‘머리가 희끗하신 원장님이셨는데 이젠 안 계신가 보네요. ’ 하면서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고 하니, 본인이 예전에 여기서 오랫동안 지냈었는데 그때 원장님이 참 따스하셨다고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보고싶기도 하고 감사한 생각이 들어 일부러 들리셨다는 이야기였다.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그분을 보며 몹시 궁금했다. 좁디좁은 고시원에서 살았다면 분명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았을 텐데 수년이 흘렀음에도 다시 찾아올 만큼 따뜻했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또 한 날은 젊은 청년이 찾아왔다. 그 청년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는 것이, 너무 잘돼서 나갔기 때문이다. 몇 달 전까지 우리 고시원에서 살던 청년이었는데 열심히 종잣돈을 모아 한강변 청년 주택에 당첨되어 이사를 나간 터였다. 남편과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건넸고, 기특한 마음에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냈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그 친구가 뜻밖의 말을 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아, 창고에 놓고 간 짐이 있어서 찾으러 왔어요.”

"그러시군요. 이사 간 곳은 지낼만하세요? 너무 좋으시죠?"

"네~~ 그럼요 좋지요. 근데 한편으론 다시 여기로 오고 싶기도 해요. 아니, 다시 올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저는 잠만 자는데 월세에 관리비까지 하면 70만 원은 우습더라고요. 회사도 여기가 훨씬 가깝고. 전 여기가 그냥 너무 편했던 것 같아요."

어라? 기껐 종잣돈을 모아 고시원을 탈출했는데, 다시 오고 싶다니? 정말 뜻밖의 답변이었다.



10년째 살고 계신 어르신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어르신은 주거 취약 대상 특례로 제공하는 보금자리 주택에 꾸준히 지원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관련 우편물 하나가 날아왔다. 그토록 고대하던 주택에 가게 되신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과, 그리 되었다면 곧 이별을 해야 한다는 복잡한 심정이 빠르게 스쳐갔다. 우리는 어르신께 우편물을 전달드리며,  당첨 여부를  조심스레 여쭈었다. 그런데 어르신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왜? 당첨돼서 얼른 나갔으면 좋겠어~?"
"당첨되시면 좋지만, 나가신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좀 아쉽네요."  

"껄껄껄~~ 걱정 마~ 난 여기가 좋아, 당첨돼도 않나 가고 계속 여기서 살 걸세!!!"

“네? 여기가 뭐가 좋다고요…”

호탕하게 웃으시며, 고시원이 좋다는 말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적당한 대꾸를 찾지 못해 그저 같이 웃고 말았다.



지금껏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이란 응당 넓고 따뜻하고, 거거익선 아니던가? 거기다 돈까지 벌어다주면 더 좋고. 어쩌면 그들의 대답이 괘변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마주하며 나의 관념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각자에게 있어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 이 있다. 그중 이제 막 첫 딸아이를 출산한 예비 아빠에서 진짜 아빠가 된, 한 분의 대답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집이란 쑥쑥이의 우주예요.'라는 답변이었다. 쑥쑥이는 예상한 것처럼 태명이고, 이제 막 태어난 딸아이에게 '집'은 곧 세상의 전부일 것 같다는 의미였다. 그간 나에게 집은 중요한 보금자리이면서 욕망의 대상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 밖으로 다시 나아갈 동력을 얻는 배터리 충전소였고, 쑥쑥이 아빠와 쑥쑥이에게는 온 우주였다.



2평짜리 공간에, 변기 하나 정도 들어가는 개인 샤워실, 2구 인덕션을 40명이 사용하는 공용주방이 있는 이곳. 고시원도 ‘집’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 좋은 집이란 무엇이냐? 하고 다시 묻는다면-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그래서 자꾸 꺼내 보고 싶은 좋은 추억을 묻어둔 곳-이라면 어디든 좋은 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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