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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Aug 14. 2023

우리 고시원엔 10년째 괴상한 슈퍼맨 할아버지가 산다.

우리 고시원에는 늙은 슈퍼맨이 한 명 있다.


슈퍼맨이라고 해서 진짜 힘이 세고, 언제 어디서나 번개같이 나타나서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멋진 슈퍼맨을 떠올렸다면, 미안하다. 우리 고시원에 사는 슈퍼맨은 좀 괴상하다. 동작이 재빠르지도 않고, 굼벵이처럼 굼뜨다. 뿐만 아니라 멋진 몸매를 가지기는커녕 매일 찐한 초록색 츄리닝 바지를 입고 가끔은 육중한 엉덩이 골이 삐져나오는, 60대 실버 슈퍼맨이다. 지금부터 우리 고시원에 최장기 거주를 하고 있는 이 기막힌 슈퍼맨 어르신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고시원을 인수하고, 전 원장에게 인수인계를 받을 때였다. 전 원장은 현재 입실자에 대해 하나씩 짚어가며 막힘없이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막힘없던 젊은 원장이 유일하게 난처해하며 말끝을 흐리던 시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어르신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아..좀 이분은 좀 특별한 분인데요.... 음..."

전 원장이 손가락을 짚고 있는 입실자 명단표를 보니, 000이라고 쓰인 이름 옆에 방 호수와 함께 믿을 수 없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월 입실료 20만원. 평균 입실료가 40만원대인것을 생각하면 정확히 절반에 해당되는 입실료였다.


"읭? 이분은 입실료가 20만원이에요? 왜요?"

"음. 그러니까 그게 이분인 좀 특별한 분이세요. 초기 1대 원장님이 운영하실 때부터 거주하셨던 최장기 입실자이신데요. 지금은 고시원 일을 조금씩 도와주시는 조건으로 입실료를 할인해드리고 있거든요. 근데 얼마 전에 팔을 좀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쓰레기 분리수거며 뭐며 제가 다하고 있어서 좀 번거롭게 되었습니다."

전 원장은 어르신이 팔을 다친 것 보다도,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여 쓰레기 분리수거를 직접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못마땅한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쨌든 입실료가 20만원이 된 자세한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초기 1대 여원장님께서 운영하시던 시절에 입실하신 어르신은 입실료를 무료로 해드리는 대신 1대 원장님을 도와 고시원 총무와 비슷한 일들을 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가 몇 년이 흘러 2대 원장인 젊은 전 원장으로 바뀌면서 무료였던 입실료를 20만원으로 인상하고, 대신에 쓰레기 분리수거나 긴급 상황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이 고시원을 인수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3대 고시원 원장이 되었고, 어르신에게 세 번째 원장이 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병원에 계신다는 어르신은 세 번째 원장의 존재가 무척이나 궁금하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은 불편했던, 어르신과의 첫 통화


우리는 고시원을 인수하고, 인수인계를 마친 후 입실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그냥 단체 문자나 공지문 한 개로 퉁칠 수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래도 첫인사를 좀 더 의미 있게 해야 한다며 기어코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입실자들에게는 크게 관심 없어 보이는 전 원장의 브리핑이 못 미더웠던 점도 한몫 했다.


진짜 모두가 무사히(?) 살아는 있는지,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혹시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중대한 문제 같은 것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 42명의 입실자 모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는데, 그중 가장 기대되던 통화는 다름 아닌 20만원 입실료의 주인공이자 우리 고시원의 산 증인과도 같은 그 어르신과의 전화 통화였다.


고시원 원장과 원생의 통화는, 원장과 원생이라는 관계만큼이나 좀 유별나다. 엄연히 말하자면 판매자와 구매자 입장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된다. 마치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 같다고나 할까? 집주인이 세를 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판매 행위이다. 세입자가 세를 들어오지 않으면 공실일 테니 집주인이 한참 아쉬운 상황 같지만, 막상 세입자가 들어오고 나면 집주인은 관리를 한답시고 시시콜콜한 트집을 잡기도 하고 '월세 인상'이라는 무시무시한 카드를 들고 갑질을 시연하기도 한다.(요즘은 임대차보호법이 잘 되어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어쨌든 나는 원장과 원생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생각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돌렸다. 여러 번의 부재중 전화 끝에 드디어 어르신과의 전화 통화도 성사되었다.


"(음음!) 안녕하세요, 어르신 이번에 고시원 새로 인수한 원장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아~~ 어어~, 새로 오신 원장님이시구나!!! 그럼 가능하고 말고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지금 병원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괜찮으신지요?"

"아.. 그러니까요~ 내가 지금 날도 추운데 병원에 와있어요. 팔에 금이가고 다리도 좀 불편해요. 고시원에서 분리수거하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지 뭐야. 전 원장에게 내가 병원비를 청구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어, 거참... 일도 못하고 있고... 병원비만 날리게 생겼지 뭐야 허허.. 돈을 받았어야 했는데.... 허허"


허허 하는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첫인사를 나누던 목소리는 나의 우려와 달리 나름 점잖고 밝아 보였으나, 대화 내용은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고시원에서 분리수거하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넘어지신 것이 부상의 원인이라고 콕 찝어 말했으며, 전 원장에게 청구하지 못한 병원비에 대한 아쉬움을 이제 막 고시원을 인수한 신규 원장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 병원비라도 내달라는 것인가? 아님 20만원 내고 있는 방 값 마저 깎아달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영 찜찜하고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첫 통화에 나의 소중한 돈과 함께 원장으로서의 기세를 내어 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런 일 들은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러셨구나. 오늘 제가 전화드린 이유는요, 다름이 아니라 지내고 계신 방에 누수는 없는지.. 뭐 크게 불편하신 사항은 없는지 확인차 전화 드렸습니다. 병원에는 얼마나 더 계실 예정이세요?"

"아 뭐 특별한 것은 없구요~. 한 2주 뒤면 집으로 돌아갈 거 같습니다. 아 맞다! 근데 내 방에 누수가 있어요. 창가에서 물이 좀 떨어지는데... 비밀번호 알려줄 테니 시간 날 때 들어가서 한번 보시죠."

"네... 그럼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쾌차하시고, 오시면 연락 주세요."


어르신은 창가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20만원짜리 방을 고시원이 아닌 '집'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골똘히 생각해 보니 1대 원장님이 운영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르신이 고시원에 거주한 기간이 족히 10년은 되었다. 50대에 첫 발을 디딘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금수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60살이 되었으니, 집이라고 칭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징하게 길기도 하다. 10년이라니.


불현듯 나의 10년 전을 되돌아보았다. 10년 전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신림동을 시작으로 수 없이 많은 원룸을 거쳐 강남의 한 오피스텔 전셋집에 정착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결혼을 했고,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를 샀으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며 남편과 고시원까지 운영하고 있다. 나처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도 10년 동안 이렇게 많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10년 동안 물이 뚝뚝 떨어진다는 2평짜리 고시원을 집으로 여기며 제자리걸음으로 살아온 어르신의 인생이 단번에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제자리걸음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겠다. 집은 여전히 고시원일지언정 그 사이에 영적으로 엄청난 성숙을 이루어냈다거나, 무소유의 대명사인 법정스님 버금가는 인생 철학을 구축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 원장에게 청구하지 못한 병원비'를 언급하던 첫 통화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어르신을 20만원짜리 방에 사는 뒷방 노인으로만 여겼다.



10년간 고시원에 장기 거주한 어르신의 방을 들여다보다.


고시원 누수 문제는 정말 중대한 사항이다. 모든 건물이 그렇겠지만 노후된 건물에서의 누수는 흔한 일이며, 가장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신규 원장에게 누수 문제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인수 계약서 특약에 따라서 한 달 이내에 발생한 누수 문제는 전 원장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시원을 인수하자마자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각 방을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은 입실자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보다는 하루빨리 누수문제를 확인하여, 전 원장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기고자 하는 속내가 90%쯤이었다. (바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돈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어르신의 방문을 맨 첫 번째로 열어보기로 했다. 고시원을 인수한 이레 이루어진, 첫 입실자 거주지 개방식이었다. 남편과 나는 살면서 어느 누군가가 10년 동안 거주한 집을 은밀히 열어본 적도, 뜯어본 적도 없었기에 조금은 신기한 감정이 들었더랬다. 마치 일면일식도 없는 사람의 긴긴 인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으로 들어가자 10년의 세월만큼이나 낡고 낡은 방이 우리를 맞이했다. 작게 딸린 외창에는 정말 빗방울처럼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누수가 있었던 것 같았다. 날짜 지난 달력과 신문지, 그리고 수건으로써의 수명을 다하여 걸레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낡은 헝겊들이 달라붙어 힘겹게 물방울들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똑. 똑. 똑. 또옥똑.' 물방울 소리는 당황한 원장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듬감 있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듣고 있자면 감수성이 매우 뛰어나거나, 초긍정적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척이나 거슬리고 짜증이 날 것 같았다. 소리도 소리지만 일단 물이 떨어지면 좁은 방은 더욱더 습해지기에, 곰팡이 소굴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르신은 20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말하기가 곤란했는지, 혹은 살면서 수리하는게 귀찮아서였는지는 긴 시간 이 상태로 거주하고 계셨던 듯했다. 혹여나 수리를 요구했다가 새파랗게 젊은 원장과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수를 먼저 확인하고 나서야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은, 책장과 벽 곳곳을 장식해 둔 가족사진들이었다. 장성한 아드님이 하나 있나 보다. 누렇게 빛바랜 도배지를 대신해 벽 사이사이를 장식한 흑백 사진들이 보였다. 사진 속 어르신은 긴 장발에 베레모를 쓰고 눈빛이 부리부리한 젊은이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쭉 전시된 사진들은 한 편의 인생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단연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은 '아들의 졸업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빠도, 아들도, 엄마도. 흩어져 있는 여러 컷의 흑백 사진 속에서 선명한 컬러감을 뽐내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순간이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나 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누수 확인을 빙자하여, 한 인간의 삶을 적극적으로 염탐하게 된 첫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은 뒷방 노인이라 여기던 그 어르신에게도 장발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어엿한 가족을 이루었으며,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대학 졸업까지 시킨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인생을 그냥 허투루 사신 분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돼 보면 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워내 대학 졸업장을 만들어 주기까지 어떤 희생과 고난이 따르는지를 말이다. 고시원에 들어오기 10년 전, 40~50대까지 어르신의 삶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50~60대 시절 10년. 이 방에서 보낸 이 어르신의 지난 삶은 어떠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동독의 역사를 흥미롭게 회고한 영화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를 아는가?

영화 타인의 삶 중 한장면<드라이만을 감시하는 비즐러>

영화 속 주인공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동독 정보기관의 비밀요원이었다. 사회주의와 권력에 반역하는 극작가 드리만을 감시하라는 명을 받고, 드라이만의 일상을 감시하던 주인공 비즐러가 서서히 드라이만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옹호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는데 꽤나 흥미로운 영화이다. 비즐러는 타인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새로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신념들에 많은 혼란을 느끼며, 결국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삶에 서서히 스며드는 행위가 아닐까? 한낱 고시원 원장으로서 본의 아니게 타인의 방을 염탐한것 뿐이었지만 고시원 원장이 된다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무심히 스쳐 보낼 수있는 수많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나를 돌아보며,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뒷방 노인 취급 하던 어르신을 고시원 슈퍼맨으로 부르게 된 연유는 서서히 풀어보겠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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