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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가을 Oct 19. 2024

프사를 바꾸는 이유: 미나와 나의 평범한 행복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 솔직 감상 후기

'좋좋소' 전 시즌을 애정하며 지켜본 나는 특히 ‘미나’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충범’의 성장도 좋았지만,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의 줄임말로도 알려진 ‘이. 미. 나’에게 묘한 애정이 갔다. 왓챠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니, 이건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는 툭하면 남친과 프사가 바뀌는 여자 ‘이미나’의 20대 연애기를 그린 하이퍼 리얼리즘 로맨스 드라마다.


요즘 나는 로맨스에 대한 관심이 1도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크기도 하고, 세상에 ‘진짜 사랑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로맨스? 로맨스가 뭐였더라? 연애는 많이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없다. ‘정의’만큼이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스라이팅 같은 사회 문제를 떠나, 내 수많은 연애 경험 속에서 몸소 배운 건 단 하나였다. “사랑은 없다.” 처음엔 그냥 '좋좋소' 스핀오프니까 도장 깨기 하듯 보려고 했다. 로맨스 장르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초반엔 핸드폰 게임을 하며 대충 봤다. 그런데 미나의 성장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었다. 잘난 여자가 아니라, 어딘가 나와 닮은 점이 있어서였을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내 찌질한 연애사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미나처럼 나도 어릴 땐 꽤 순진했다.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타인의 꿈에 쉽게 동화되었으며, 이상형과의 연애를 꿈꾸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남자들과 주로 만났다. 개중에는 미나의 대기업 남친처럼 외모나 스펙이 나보다 나은 남자도 있었다.


다름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 다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으로 변했다. 반듯한 남자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는 쫌스러워 보였다. 예민한 내 성격을 받아주던 연하남도 그냥 능구렁이였다. 여러 남자를 만났고, 그중 몇 명에게는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도 있다. 그들을 떠올리며 밤새 울기도 하고, 가슴 아파했던 순간도 있었다.


왜였을까? 미나가 연애와 회사 생활을 통해 조금씩 꿈을 포기하고 다시 꿈을 꾸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 호르몬 탓일 수도, 취업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었다. 찌질하고 평범한 이야기라 좋았다. 내 이야기 같았다.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어리석은 고민들로 밤잠을 설쳤던 내가 거기 있었다.



어느 소설에서 어떤 이는 연애가 끝나면 뭔가 한 가지는 배운다고 했다. 수많은 연애 끝에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공부나 취업보다 연애에 몰두하게 했던 그 시절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미나가 첫사랑과 재회해 결혼 직전까지 갔을 때도, 눈물이 났다. 분명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을 걸 알았다. 극 전개상 그랬고,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까. 미나를 믿지 못하는 남자도 이해됐고, 다시 이별을 택한 미나도 이해됐다.



미나 나이쯤, 나는 오래 만난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이유는 충분했다. 7년을 만났지만, 3년을 더 함께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나는 무작정 도망가고 싶었다. 평범한 직장과 가정, 그런 삶을 상상했다. 방송국 작가를 그만두고 작은 보습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때였다. 치기 어린 시절의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꿈은 점점 멀어졌고, 나는 방황했다. 그 시절의 나는 암울했다.


3년 후 남자친구는 계획대로 결혼했다. 나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수를 탔지만,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식을 알게 됐다. 나를 닮은 평범한 여자와 가정을 꾸린 그의 모습이 종종 떠올랐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웠지만, 결국 그리운 건 그 시절의 나였다.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던 그때,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떠올리면 기분이 묘하다.


미나의 엄마는 큰딸 서영을 더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공부도 잘하고, 취업도 결혼도 잘한, 엄마들이 원하는 삶을 사는 서영. 그래서 미나는 가족 사이에서 늘 소외된 듯했다. 엄마는 미나에게 이름을 바꿀 생각이 없냐고 묻기도 한다. 언니는 철학관에서 지은 이름인데, 미나는 엄마가 '정성껏'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비슷했다. 나와 여동생의 이름은 엄마가 지었고, 막내는 철학관에서 지은 이름이다. 부모님의 지원도 막내가 가장 많이 받았고, 우리 중 가장 성공하기도 했다.


나는 미나와 달리 스스로 이름을 바꿨다. 미나가 카톡 프사를 바꾸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직접 바꿨으니까. 음은 내가 짓고 뜻은 철학관에서 돈을 주고 지었다. 물론, 이름 하나 바꾼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평범한 삶을 거부하려 애썼지만, 결국 누구보다 평범한 여자가 되었다.


학원강사를 그만둔 후 미나처럼 작은 회사 여러 곳을 전전했다. 경력은 쌓였지만, 이력서는 지저분해졌다. 연봉도 조금씩 올랐다. 물론 대기업 연봉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순진했던 미나는 연애와 회사 생활을 통해 '이 구역의 미친 x'이 되어간다. 나도 그랬다. 부끄러움 많고 여리던 내가 어느새 '싸움닭'이 되어 있었다. 시련과 실패가 나를 그렇게 만든 걸까?



미나는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보듬어주기로 한다. 모든 여자의 꿈이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평범한 삶도 가치 있다. '좋소 에이스'가 뭐 어때서? 미나가 프사를 바꾸는 건 어쩌면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행복한 순간이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나의 프사는 그런 소소한 행복의 흔적이었다. 평범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 땅의 미나 씨들이 모두 자신만의 행복을 즐기며 자주 프사를 바꿀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이름만 바꾼 미나일지 모르는 내 삶도 그렇게 못나지 않았다. 찌질했지만 그만큼 치열했다. 로맨스를 혐오할 만큼 연애도 해봤다.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일어설 준비도 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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