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학부 시절, 어느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 소설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으로.” 소설을 읽는다는 건 남의 인생을 잠시 빌려 사는 것과 같다.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소설은 더 깊이, 내밀하게 등장인물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활자의 매력이 더해져서다.
한때 뜨겁게 소설을 사랑했던 나는 꽤 오래 소설을 멀리했다. 최근 읽은 책은 대부분 에세이나 자기계발서였다. 먹고사는 문제로 흔들릴 때마다 나는 실용적인 조언을 찾았다. 약해지지 않으려는 마음, 무너져 내리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갈 기술과 태도를 익히면서 조금은 단단해졌을지 모르지만, 그 단단함은 마음 어딘가를 조여 오는 매듭 같았다.
얼마 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한강은 내가 국문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작가다.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고 나는 한강의 문장에 푹 빠졌고, 이후 ‘채식주의자’도 책이 나오자마자 읽고 소장했다. 그 시절 나는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사놓고도 읽지 못했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중압감 때문인지 책장을 열 수 없었다. 5·18을 다룬 영화를 몇 편 본 적 있지만 소설로 읽기에는 두려웠다. 한강의 문장으로 쓰인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플지, 충분히 예상되었기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고통과 상실, 그리고 잊힌 목소리에 마음을 기울일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나를 에워싼 현실의 두께가 너무 두꺼워, 그 틈새로 활자 하나 끼워 넣을 수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제주 4·3 사건을 그린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의 발매 소식조차 알지 못했다.
문득, 교수님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소설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경계,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그 선을 넘기 전과 넘은 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일 것만 같다. 소설은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마주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서 나는 나의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마주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내 삶의 균열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의 힘이다.
한강의 소설이 역사의 상처를 품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녀의 작품은 잊힌 아픔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그 고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만든다. 지금도 슬픈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전쟁과 폭력, 갈등과 상처가 여전히 주변을 맴돈다. 그런 세상에서 '굳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실을 이해하고, 슬픔 속에서도 길을 찾으려는 작은 노력이다.
내가 소설을 다시 손에 쥐는 날, 어쩌면 내 삶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한 의식이니까. 지금 나는 전환점에 서 있다. 다시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은 아닐까?
책장에 꽂혀 있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꺼낸다. 책의 첫 장을 넘겼다. 활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