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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달블루 Aug 18. 2022

잊어버린 여행법

Uyuni

 110일 정도 남미에서 굴러다니는 여행을 한 적 있다. 브라질이 유럽만큼 크다고 하던데. 남미 대륙을 3달 정도의 기간을 통해 여행하겠다는 건,,, 교만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게 되었다. (빨리빨리 정신)


우유니로 향하는 초입길에 만난 여우 한마리. 귀여웠다.


"저는 남들이 다 가는 곳을 가거나 하는 여행보다 현지인처럼 사람 구경하고 골목골목을 자세히 걷는 걸 좋아해요."


"저는 계획된 여행을 하는 것보다 즉흥적이고 우여곡절이 있는 여행을 선호합니다."


"한 곳에서 길게 머무르는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을 하다 보면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과 대화하는 일이 많이 있다. 제각기 다른 여행법들, 나름대로의 여행 철학들을 공유하게 되는 시간이 생긴다. 워낙에 엑기스를 뽑아 마시는 듯한 에스프레소식 패키지여행이 성행했던 한국. 요즘의 여행객들은 되려 반대 극부로 '자유로운' 여행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여러 여행자들의 복사된 말들... '자유로운 여행'이라는 말에서 부자유를 느낀다.

 

가는 길 1

 

 '자유'라는 말 앞에서 멍~ 해지는 요즘의 내 상태. 나를 아는 듯 마는 듯 한 인간들이야 나를 보고 자유롭게 산다며 부러워했지만, 그 이야기의 실체를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선택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선택은 강요당하는 것이다. 선택을 유보하면 남는 건 후회뿐이라서. 본인들의 상황과 환경 안에서 모두가 최선의 선택을 하고 산다. 나 또한 강요당하는 것들에서 선택을 했을 뿐이다. 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내 맘대로 산다고 하지만, 내 마음에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나라는 껍질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무수히 많다.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는 자세

 좋은 여행을 한다는 건 어려운 문제다. '방문(visit)'과 '순례(travel)'는 목적이 있다. 하지만 '여행(tour)'에는 목적이 없거나 없어야 한다. 구경을 '목적'하는 순간 여행의 의미는 소실된다. 구경하는 이유가 만들어지는 순간 결과를 도출해내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여행법이 발명되고 개발된다. 그것이 방문과 순례의 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 또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좋은 여행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방인의 겸손이야말로 목적을 갈구하지 않는 것 같다.


 여행은 선택의 족적이다. 결과가 없는 과정이다. 좋은 여행은 어쩌다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쓰는 기행문은 여행에 관한 글이 아닌 나라는 인간의 증거다. 이미 세상에 내던져졌다. 인생이 여행이라는 흔하디 흔한 표현에 진한 의미를 담고 싶다. 어딜 가도 난 이방인,,,, 그게 자유던 뭐던 내 알바 아닌 것 같기도...


가는 길 2
가는 길 3


 아따카마에서 운전기사를 섭외받고 자동차를 배정받는다.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지프차를 타고 4일 정도 우유니 소금 사막을 향해 간다. 우유니 사막은 해발 3500m - 4000m 사이에 위치한다. 나는 해발 3200m 정도부터 고산증을 앓는다. 3200m부터는 50m 단위로 올라갈수록 머리가 깨질 듯이 더 아파온다. 그러니 4000m 위치에서 출발한 우유니 여행에서 나는 극심한 두통을 앓았고 식음을 전폐했다. 거의 뭐 시체처럼 차에 널브러져 실려 다녔다. 고산증세를 낮춰주는 코카잎을 잘근잘근 씹으며 버텼다. 턱이 아플 정도로 많은 코카잎을 씹어댔다. 내가 4일 동안 무엇을 봤는지 어디서 잤는지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고산증이 심했다. 사진을 보고서야 어디에 있었는지 복기할 수 있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황 때문에 부글부글 끓는 곳. 유황오리가 먹고 싶다.


가는 길 5
가는 길 6
가는 길 7
가는 길 8



소금으로 지어진 모든 게 소금인 소금 호텔


 소금사막 우유니에 있는 소금 호텔. 호텔이라기엔 많이 엉성한 롯지 같은 곳이다. 여기서 누군가 와인을 한 병 깠는데, 나도 한 잔 얻어먹었다. 와인 한 잔 먹으니 고산증세가 좀 괜찮아졌다. 간만에 술이라 벌컥벌컥 마셨는데 새벽에 머리 아파 죽을뻔했다. 고산증세가 완화되었던 효과는 취기에 느껴진 불감증이었다. 취기가 가시면서 머리가 쪼여오기 시작했다. 와인 때문에 빨리 뛰기 시작한 혈류가 벌컥벌컥 좁은 혈관을 뚫고 다녔다. 가감 없이 고백하건대 꿈에서 정말로 천사를 만났다. 아, 내가 죽는 거구나 싶었다. 꿈에서 천사를 보다니...


귀여운 친구들


등장하기 시작하는 소금사막
이 앞에 주차를 했다.
차 트렁크를 열고 다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중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기차무덤


 우유니 사막은 엄청 크다. 우기인 지역이 있고 아직 우기가 아닌 곳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늘을 반영한 물이 찬 우유니의 모습보다 육각 모양의 블록이 벌집처럼 가득한 물 없는 우유니의 모습이 더 좋다.



 우유니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표현한다.


 고산증 때문인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물이 찬 우유니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좋진 않았다. 그냥 좀 허무했다. 사진을 한참 찍다가 소변이 마려웠다. 소금사막에 화장실이 어디 있겠나. 다른 여행객들이 없는 곳으로 멀리 걸어가서 방뇨했다. 육각형 블록 모양 바닥에 대고 쉬이이이이. 뜨뜻한, 한 때는 내 것이었던 소변을 방류하니 등골이 싸늘해졌다.



 저렇게 신나는 자세를 내가 취했었던가 싶다. 사진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그저 그런 경험으로 남아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을 보니 참 좋은 곳을 가긴 했구나 생각도 들고... 내가 sns를 했다면 자랑할법한 사진이겠구나 생각한다. 머리가 아프다. 고산증세를 완화시키는 방법은 사실 유일하다. 해발이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너무 높은 곳에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 내려오고 나면 아프지 않다.


 문명에서 동떨어진 우유니에는 교회도 없고 사창가도 없다. 너울이나 파도도 없는 물가에 하찮은 내가 일렁임을 만든다. 소리도 없고 소음도 없는 곳에서 여행객들의 말소리는 반사판 없는 사막에 떠다닌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고 나침판도 안 먹히고 gps도 안 먹히는 우유니 사막에는 목적을 둘 곳도 시선을 둘 곳도 없다. 집중할 게 없는 곳에서의 시선처리는 확실히 어색한 경험이었다. 공간이 없는 장소에 있었다. 360도 걸리적거릴 것 없는 시야에선 막상 상실감을 느낀다. 땅이 하늘인지 하늘이 땅인지 모를 곳에는 오히려 자유가 없었다. 선택권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봐야 할지 몰랐다.


"저는 남들이 다 가는 곳을 가거나 하는 여행보다 현지인처럼 사람 구경하고 골목골목을 자세히 걷는 걸 좋아해요."


"저는 계획된 여행을 하는 것보다 즉흥적이고 우여곡절이 있는 여행을 선호합니다."


"한 곳에서 길게 머무르는 여행을 좋아해요."


 대자연에 머무르다 보면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된다. 계획과 즉흥도 없고 골목도 없고 걸을 곳도 없다. 길게 머무를 수도 없다. 심지어 고산증을 앓은 나는 이때의 기억도 잘 못한다. 뭔가 생각에 비약이 있는 것 같지만 그저 내뱉고 싶은 말이 있다. 자유에 대한 내 생각, 우유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생각이랄까.


자유에는 좆도 없어.




 자유롭게 산다는 건 좆도없이 산다는 걸 거야... 난 대자연 속에서 너무 허무했어. 원래 섭리나 우주는 그따위로 생겼을 거야. 허무한 느낌. 자유가 뭔지도 모르지만 그건 왜인지 허무할 거 같아. 아무것도 없어. 사는 이유도 없고 죽을 이유도 없을 거야.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을 거 같아. 자유보다는 선택이 중요해. 선택에서 자유롭다느니 자유롭게 선택한다느니 이상한 얘기들이야. 자유는 너무 이상한 말이야. 알아들을 수 없는 허무한 단어야. 마음대로 한다는 건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선택에 대한 이야기지. 선택은 강요당하고 행복은 속박 안에 있을 거야. 그래야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겠지. 숨을 쉬어야 살듯, 숨을 참을 수 없듯, 이미 나는 억압 속에서 적응하고 있어. 부자유를 즐기고 있어. 인생은 의미 있어. 세상은 무조건 재미있어.




우유니에서 후딱 빠져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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