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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달블루 Jul 13. 2023

Aldo Rossi 1 - 도착도

  Venezia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


 천명관의 '고래'라고 하는 소설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청소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집을 쓴다. 어지럽혀진 것을 다시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소박한 압박감을 가지고 산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과 기기 모두에게 제자리를 부여한다. 수건이나 빨래와 같이 어쩔 수 없이 역마살이 낀 것들에게는 제자리뿐 아니라 경로를 부여해 준다. 빨래 사용 전, 사용 중, 사용 후, 빨래 중, 빨래 후, 다시 사용 전.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조금은 강압적이고 결벽증세를 내며 규칙을 지킨다. 집에 돌아와 지갑과 시계 핸드폰을 둬야 하는 장소가 따로 있고, 리모콘은 사용 중에 있을 때도 둬야 하는 위치가 명확하다. 나의 심리적 안정과 청소하기 싫은 마음이 만들어낸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참 미워하고 어려워하는 존재들이 있다. 먼지가 그런 것이고 화장실의 물때가 그런 것이다. 먼지가 생기면 닦아내야 하고 물때가 생겨도 닦아내야 한다. 만들지 않으려 해도 쌓이고야 마는 것들이다. 이런 존재 들은 나에게 귀찮고 신경 쓰이는 정도를 넘어서 억울한 일이다. 물때를 불려 박박 긁어야 하는 힘을 내려면 내가 점심을 뭘 먹어야 할까. 칼로리가 부족하다. 먼지를 닦을 걸레가 있다면, 그 걸레로 먼지를 닦는다면 그 걸레도 또 또 또 빨아야 한다. 아휴. 비밀인데, 사실 나는 먼지 닦기용 걸레를 조각조각내서 한 번 쓰고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평소에는 이 지겨운 것들에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닦지도 않고 쓸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들이 너무 싫고 밉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귀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루다 미루다 보면 타의(어머니나 여자친구의 잔소리)로 인해 닦아내는 형벌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망각되어 온 나의 죄, 양심등을 생각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거짓말도 하고 욕도 하고 상처도 주고 불의에 눈을 감아온 나를 본다. 그때그때 속죄할 수 없었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기분이 개 같아진다. 망각한 죄는 먼지와 물때를 닮았다. 가만히 놔둬도 생기는 것이고 안 생기게 하려 해도 생기는 것이고 치울 때를 기다려 치워야 한다. 치우고 나면 치우기 위해 사용한 것들도 치워야 한다. 얼마나 방치했는가, 얼마나 신경을 쓰지 않았던가에 대해 반성과 푸념을 내뱉으며 길고 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나에게 먼지청소, 물때청소는 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데헷)


 천명관의 소설 속 '인생 먼지론'의 죽음은 먼지만큼 작은 일이라는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복소복 창틀에 채광을 맞으며 쌓여가는 먼지들은 모두 에너지를 갖고 있다. 쌓이고 쌓이고 사람들이 수명을 다해 죽고 또 죽어가는 시간 동안 죽음도 에너지라 누군가는 닦아내야 할 것이 된다.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닌 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이 여럿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먼지 닦기를 싫어하는 내게, 인생을 살기가 참말로 어렵고 고단하다고 느끼는 내게 천명관의 먼지론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그만큼 귀찮고 짜증 나고 하기 싫은데 또 해야 하는 일이고 미루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고,,, 먼지는 죄를 닮았고 인생을 닮았다. 나의 인생이 고단한 이유가 여지껏 죽어간 수명들의 에너지 때문이라는 생각도 한다. 소복소복 창틀에 반짝반짝 예쁘게 내려오는 정체 모를 것들. 먼지.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보고 싶어 했던 건축물을 보기 위해 계획이 되었다. 사진으로만 봐왔지만 Aldo Rossi라는 건축가에게 굉장한 흥미를 느껴왔었다. 특히 그가 만든 납골당 건물 사진에 모종에 감동을 느껴와 실제로 보고 싶었다. 자연스레 Aldo Rossi는 어떤 생각을 가진 인간인지 궁금했고 책도 읽고 하다 보니 그에 대해 대충은 알게 되었다.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 하지만서도 건축물에 관심을 갖는 건 여행을 좀 더 풍성하게 한다. 

 나는 죽음과 인간과 묘지에 관심이 많다. 여행지가 결정되면 그 도시의 공동묘지부터 찾아본다. 어디서 이름이라도 들어봄직한 사람이 혹시 묻혀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혹,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여행지에 묻혀있다면 구경을 다녔다. Aldo Rossi의 납골당을 주제로 한 여행의 시작이었고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들의 묘지를 구경하게 되었다. 베네치아부터 Aldo Rossi를 찾아, 유령들을 찾아 여행을 시작했다. 


위대한 작곡가 '바그너'가 죽은 장소

 

 베네치아에 도착해 처음 구경 간 곳은 작곡가 '바그너'의 사망장소였다. 한 때 나는 스스로를 바그네리안(바그너 Fan)이라 칭할 정도로 바그너를 좋아했다. 나중에 진성 바그네리안들을 만나고 나서는 꼬리를 내려버렸지만, 바그너를 존경하는 마음은 진성 바그네리안들 만큼이나 가득하다. 바그너는 연-영과 출신의 비전공 작곡가이다.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극대화한 인물이며, 현재 오페라 극장에 빌트인 되어있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창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디즈니 성의 모티브로 유명한 백조의 성을 만든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2세'는 바그너의 진성 팬이었다. 바그네리안 1세대랄까. 나의 글 '외도와 애도' 편에서 방문한 슈탄베르크 호수가 '막시밀리안 2세'의 사망장소이기도 했다. '막시밀리안 2세'는 '바그너'를 위해 '바이로이트'에 극장을 지어주었고 그때 최초의 오케스트라 피트가 만들어졌다. 바그너는 현모양처 마누라를 두고 세기의 바람도 좀 피고, 곡도 잘 쓰고, 니체라는 친구도 있었고(나중에는 손절을 치지만), 프로젝트도 잘 따오는 작곡가이다. 음악을 정말 이상하게 잘 쓴 사람이다. 흔히 비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시도 같은 것을 했달까. 일전에 바그너의 피아노 습작곡 악보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곡은 정말 개판이었다. 엄청 유치하기도 하고... 존경하는 바그너는 베네치아에서 죽었다. 바그너가 죽은 장소는 현재 카지노로 쓰이고 있다. 도박을 즐겨하는 나는 그 역사적인 장소에서 카드라도 한 판 치고 싶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방문했기에 문이 닫혀 있었다. 바그너의 팔자는 꽤나 괜찮은 상팔자였다. 인생 재밌게 사셨다. 


슈트라빈스키의 묘. 누군가 '쓰바씨바 슈트라빈스키'라고 쓰인 악보 한 조각을 올려두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슈트라빈스키의 묘. 세기의 바람을 핀 또 한 명의 작곡가이다. 저렇게 버젓이 아내와 나란히 묻히긴 했지만, 슈트라빈스키는 코코샤넬과의 스캔들이 아주 유명하다. 워낙에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썼던 슈트라빈스키의 예술성을 코코샤넬은 일찍이 좋아해 줬던 걸까. 그는 파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한창 잘 나가던 슈트라빈스키는 현대무용의 창시자라는 니진스키, 디아길레프등과 함께 극을 올렸었다. 심지어 무대디자인은 피카소가 맡기도 했다. 전쟁통에 미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LA로 자리를 옮긴 슈트라빈스키는 타고난 곡팔이 이기도 했다. 여느 작곡과들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시간에만 곡을 썼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시간은 전화만 붙들고 살았단다. 전화내용은 대개 안부를 묻는 겸 곡을 팔아 내는 내용들이었다. 그렇게나 곡을 팔았어야 했다니 얼마나 생활고가 심했을까 혼자 추측했었다. LA여행 중에 슈트라빈스키의 집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생활고는 무슨! 그의 집은 베버리힐즈 언덕에 운치 있게 위치했다.(그의 집은 소더비 경매에 올라가 있었다.) 당시 베버리힐즈에는 쇤베르크도 살고 찰리채플린도 살았다고 한다. 슈트라빈스키는 동백림사건으로 유명한 윤이상 작곡가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을 때 탄원서를 써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 탄원서에는 카라얀도 이름을 올렸었다. 현대음악의 대부 슈트라빈스키는 뉴욕에서 죽었다. 

 뉴욕에서 죽었다는 양반이 어떤 이유로 베네치아에 와 묻혔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베네치아의 공동묘지는 외딴섬이다. 베네치아 관광시내에서 무라노섬을 가려고 배를 타면 공동묘지 섬을 중간에 들린다. 배를 타야지만 입장할 수 있는 공동묘지 섬에 슈트라빈스키의 운구를 태운 배가 동동 떠다닌다고 상상했다. 그 시체를 뉴욕에서 베네치아까지 옮겨냈던 사람들의 헌신을 생각했다. 

 슈트라빈스키의 현악 사중주는 기묘한 음악들이다. 장거리 운전할 때 듣기 정말 좋다. 봄의 제전이나 불새 같은 곡들은 야마 있는 메탈음악을 닮았다. 명성에 비해 조촐한 무덤이 참 인상 깊다. 하지만 그가 베네치아에 묻히기까지 얼마나 스펙터클 한가. 


디아길레프의 묘


 슈트라빈스키와 함께 파리 예술계를 호령하던 디아길레프의 묘를 간다. 슈트라빈스키의 묘에서 열 발자국 남짓 자리를 옮기면 바로 디아길레프의 무덤이 나온다. 당대 현대예술의 선구자격인 니진스키와 슈트라빈스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아주 닳고 닳은 정치가이기도 하다. 봄의 제전의 초연은 유명하다. 연주중간에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공연은 망한 거나 다름없었다. (총감독 디아길레프, 연출 니진스키, 음악 슈트라빈스키) 니진스키와 슈트라빈스키는 공연이 끝난 후 무지막지하게 싸워댔다고 한다. "너 땜에 공연 망했자나!!!" 디아길레프는 이 둘을 화해시키고 자제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해냈다고 한다.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그의 무덤을 보고 나면 슈트라빈스키보다 한 수 위인 거 같다. 무용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디아길레프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쓰다 버릴 발레 토 슈즈들이 주렁주렁 디아길레프의 무덤에 걸려 있었다. 

 무용을 전공한 유연한 사람들은 여행을 준비한다. 저 먼 땅에서부터 닳아버린 토 슈즈를 캐리어에 챙긴다. 베네치아에 도착해 시내에서 꽃 한 송이를 산다. 디아길레프의 묘에 도착한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온 토슈즈를 살포시 꺼낸다. 유연한 무용수는 무엇을 소망하는지 이야기한다. 무용수의 추억이 담긴 토슈즈를 묘지위에 얹어둔다. 고맙고 존경한다는 말 대신 더 많은 말을 남긴다. 디아길레프의 묘에는 그에 대한 존경이 어려있었다. 


유연한 무용수의 피가 묻은 토슈즈는 디아길레프의 무덤에 있다. 



베네치아의 미켈레 공동묘지 입구


 미켈레 공동묘지에서 나와 배를 다시 탔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창인 동네로 향했다. 비엔날레 입장권이 생각보다 비쌌고 날이 너무 더워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었던 베니스 비엔날라의 최고 건축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Aldo Rossi는 197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직을 맡고 있었다. 건축하는 친구 huhu의 말에 의하면 베네치아는 르코르비제, 미스반데로에, 프랭크로이드라이트 같은 건축가들도 건축을 하지 못한 곳이라고 한다. 베네치아는 수상에 만들어진 섬일뿐더러 건물들이 아주 노후된 곳이기도 해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데 건축허가가 나기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건축가들도 깐깐한 공무원들의 건축안정성 검사 앞에서는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하지만 Aldo Rossi는 베네치아에 건물을 지었다????


자살하는 건축(이 사진은 합성이자 합성이 아니다)


 1979년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에 Aldo Rossi는 수상극장을 지었다. 배 위에 얹어진 이 건물은 박람회 기간 동안 베네치아 한 바퀴를 돌고 박람회 종료와 함께 박살이 난다. Aldo Rossi는 이 건물을 의뢰받고 지을 때 부서질 건물을 짓기로 했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건축이 종말을 고하고 상상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Aldo Rossi는 죽음과 집단기억에 대해 관심이 깊은 건축가였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잊고 하루하루를 산다. 하지만 죽기를 작정하고 태어난 것이 인간이다. 건축물 또한 비슷한 성질을 가졌다. 영속성을 부여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영원하길 바라듯 지어지는 것이 건축이다. Aldo Rossi는 기획부터 죽기를 작정한 건물을 지었고 건물 또한 그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둥둥 떠다니다 사라져 버렸다. 문득문득 그러한 건물이 있었더랬다고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건축은 물성이 아니고 기억이라고 상기한다. 


""표시는 Aldo Rossi의 말입니다. 


"우리는 기억할 뿐 창조하지 못한다."


"내가 건축에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아마 이것뿐이었던 것 같다. 건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파괴될 때까지 시간과 싸우는 어떤 정확한 형태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건축은 인간이 생존하고자 탐구했던 방식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행복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탐구행위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 건물의 쓰임 또한 모호하다. 수상건물이 아니고 수상극장이다. Aldo Rossi의 책을 읽다 보면 '극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낀다. 그에게 극장은 피지컬 이상의 어떠한 의미가 있었다. 사건이 시작되고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공간. 그러니깐 극장은 건물을 필요로 하지만 건물이 극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다시 말해 극장이라는 것은 사건을 일으키는 장소일 뿐 건물은 장소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깐 그러니깐... Aldo Rossi의 말을 들어보자... ㅠㅠ


"극장은 나의 애매한 정열의 대상이었다. 극장에서 건축이란 필요한 무대배경이고 장소이며 종종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구체적인 크기나 재료로 계산되고 변환될 수 있는 건물이었다."


"건축은 일어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가 바라는 사건의 매개체가 된다. 우리가 사건을 희망한다는 것은 그 사건이 발전적인 그 무엇이 된다는 의미다."


"사건이 없다면 극장도 없고 건축도 없다. 무덤을 예로서 들 수 있다. 이것이 기능주의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인가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건이 좋은 것이라면 장면도 좋은 것이며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인생은 상당히 좋은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나의 리얼리즘이다. 어떠한 종류의 리얼리즘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베네치아에는 라 페니체(피닉스)라고 하는 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이름 한 번 잘못지은걸로 유명하다. 피닉스는 죽을 때 활활 불에 타서 죽는다.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전설의 새다. 불사조라는 뜻이다. 이 극장의 운명 또한 이름을 따라간다. 1683년 만들어진 이후로 이 극장은 3번이나 불타 없어졌다 재건되었다를 반복했다. 마지막 화재였던 1996년에 Aldo Rossi가 극장 내부의 인테리어 재건에 투입되었다. Aldo Rossi가 1997년에 돌아가신 걸 보면 거의 유작에 가깝지 않나 싶다. 하필 그가 '애매한 정열'이라고 표현한 극장 재건을 유작으로 남긴다는 것이 운명적이다. 

 그가 표현한 '애매한 정열'은 건축가로서 극장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Aldo Rossi가 표현했듯 사건과 장소의 성질을 건축은 보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극장의 내부에 들어갔을 때 의아해진다.  Aldo Rossi의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부이기 때문이다. 극장을 재건할 때 극장 본연의 모습을 재연하고자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한 개성을 가진 Aldo Rossi의 특징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유를 그의 '애매한 정열'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에게 극장은 공간을 넘어선 것이었고, 그 장소성에 맞는 윤리관이 필요했다. 라 페니체 극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Aldo Rossi의 주관이 투여될 사건은 없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Aldo Rossi가 혹여 말년에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수임한 일이며, 하기 싫은 일을 했고 본인보다는 본인의 사무실 직원들이 잡무와 실무를 책임졌다고 해도 나는 알 수 있다. 라 페니체 극장의 3번의 화재사건을 대하는 '애매한 정열'이 어떤 것이었는지!!!


오케스트라 피트의 프레임과 내부 사진



 huhu의 권유로 산마르코 스퀘어에 위치한 '올리베티' 전시장에 방문한다. '올리베티'는 1,2차 전쟁시대 최고의 타자기 회사였다. 전유럽에 보급된 타자기 거의 대부분이 올리베티의 것이었다.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절 아날로그식 계산기를 만들었고 컴퓨터 사업에도 뛰어들었던 회사다. 파산했다가 팔렸다가 다시 태어났다가를 반복한 올리베티는 2013년에 스마트폰도 만들었다고 한다. 

 한 때 아주 잠깐 나는 타자기에 관심을 가졌었다. 여자친구는 내 생일에 '마라톤' 세벌식 타자기를 선물해 주었다. 한컴오피스의 개발을 도왔던 공병우가 군사독재의 2벌식 타자기에 맞서 개발한 전설의 세벌식 타자기! 심지어 아직까지도 작동이 잘 되는 마라톤 세벌식 타자기를 선물 받고 이런저런 브랜드의 타자기들을 검색해보곤 했었다. 세계대전 당시에 타자기는 신형 탱크만큼이나 중요한 군용품이었다. 사용자가 직관적인 타이핑시스템 안에서 빠르게 오타 없는 문서를 작성해야 했다. 세계대전 때를 상상해 보면 타이핑 회사와 스피커 회사들은 현재 실리콘 밸리의 IT 회사들만큼이나 위대한 업력을 가졌다. 올리베티는 유럽시장을 독식하던 타자기 회사였다. 돈을 많이 번 올리베티는 세가 비싼 산마르코 광장 상가라인에 전시장을 만든다. 전시장 내부 인테리어는 카를로 스카르파에게 맡겼다. 올리베티와 스카르파는 집안이 대대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 카를로 스카르파는 베네치아의 공예 장인이자 건축가이다. 그의 디테일을 아주 옛날에 소문으로만 들었지 사진을 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저 전설의 올리베티 전시장을 유명한 건축가 스카르파가 만들었다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다. 

간판


아름다운, 아주 아름다운 계단
내부, 바르셀로나체어? 바르샤체어?
커스텀 1!!!!!!!
커스텀 2!!!!!!! 띄우다!!!
너무 아름다운 계단!! 계단 계단! 사건!
두꺼비집인가?


 올리베티 전시장에서 나는 스카르파의 작업물에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너무 멋졌다. 나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집착과 디테일들을 보게 되었다. 이 미친 변태새끼는 뭐 하는 놈이지 하는 느낌을 받았다. Aldo Rossi와 유령들을 찾으러 온 여행에서 이거,,, 스카르파가 껴들어 왔다. 하지만 이내 스카르파의 죽음 또한 운명적인 사건을 만들어주게 되는데,,, 그건 아마도 Aldo Rossi 3편에서 소개할 듯하다. 아무쪼록 스카르파와의 강렬한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huhu에게 dANkE!


베네치아식 비골리 파스타 한 그릇 뚝딱 꺼억



 베네치아 피에타 성당에서 활동했던 비발디  


새똥을 맞고 있는 바그너


졸고 있는 건물들
괴테, 베토벤, 나폴레옹 등등이 다녔다던 이태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여기서 휴식 잠시하고 있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가 '아리랑'과 '나의 고향'을 연주했다. 잉?!
안도다다오가 리모델링한 Grassi궁전의 내부모습. 빨래가 널려있다.

 

 과일유통업에 종사하는 내가 정말 많이 듣게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표현이 있다. '도착도'다. 딸기 1kg에 3000원으로 납품가를 책정하면 그다음 흥정을 하게 되는 '도착도'는 업자들 간의 신경전을 불러일으킨다. '도착도'라 함은 1kg에 3000 원하는 딸기를 누가 가져갈 건지, 가져다 놔둘 건지 정하는 이야기다. 당연히 그사이에 물류비가 청구될 것이고 그 물류비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또 싸우는 것이다. 납품하는 사람은 말한다. "야 이 사람아 당연히 도착도가 아니지! 도착도로 깔려면 키로에 3200원은 줘야 해!!" 납품받는 사람은 말한다. "예?! 아니 당연히 도착도 기준으로 말씀드리고 흥정했던 거였죠!!! 3200원은 저희가 정말 안 돼요!! 그러면 도착도 기준으로 3100원에 하세요!"

 모든 계약이 도착도 기준인 것을 서로 알고 있으면서도 흥정에 '도착도'라는 말이 먼저 나오지는 않는다. 팽팽한 흥정 속에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분유값을 둘러대고 진 빚이 얼마라는 둥 온갖 불쌍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공급받는 사람과 공급하는 사람의 형편 그 가운데 지점에서 가격이 정해진다. 모든 거래는 도착도 기준이지만 도착도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사이사이에 살을 붙여 본인들의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넉넉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물류비가 한 번 보낼 때 얼마고, 냉장창고에 보관하면 얼마고, 톨비가 얼마고 지금 계약건의 물량이 너무 적어서 어쩌고 계약물량이 더 늘어나면 원하는 도착도에 맞춰드릴 순 있는데 저쩌고, 온갖 샥킹을 후리면서 정신없이 뱉어댄다. 본디 통에 들어간 것은 흔들면 정리가 되지 않던가. 

 

 삶과 죽음이 나의 인생을 가지고 흥정을 한다. 삶은 나의 생을 납품하고 죽음은 나의 인생을 납품받는다. 죽음이 삶에게 물어본다. 얼마냐고. 삶이 죽음에게 답한다. 3000원! 죽음은 삶에게 말한다. 당연히 도착 도겠지?! 삶은 죽음에게 답한다. 미쳤어요?! 도착도로 하려면 3200원이죠!!! 나의 인생에 200원의 의미가 추가되었다. 죽음은 이제 나의 의미에 디스카운트를 시전 한다. 죽음은 본인이 얼마나 팍팍한지 우울한지 일이 힘든지 늘어놓으며 나의 인생을 100원 깎는다. 거래가 성사된다. 도착도 3100원! 내 인생은 3100원짜리다. 삶은 나를 트럭에 실어 이 세상에 보낸다. 죽음의 영업장까지 납품되어 가는 동안 창틀에는 먼지가 쌓이고 있다. 반짝반짝. 세면대에는 물때가 생긴다. 나는 닦고 쓸기를 미루다 여친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고 물때를 지운다. 어차피 내 인생은 3100원. 닦으나 안 닦으나 3100원. 나는 청소를 또 미룬다. 뭐 대충 먼지는 그런 거라고 인생이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빨래하는 건 미루지 않는다. 옷에서 냄새나는 건 또 싫어해서 빨래가 생기면 제때제때 세탁기에 넣는다. 빨래를 넌다. 건조기를 쓰면 옷이 상한다. 건조기를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건조기를 쓰면 건조기안에 쌓인 이상한 먼지덩어리를 또 치워줘야 한다. 그 먼지 덩어리를 치운 손을 또 물에 씻어야 한다. 그럼 또 세면대에 물때가 생긴다. 건조기는 아주 가끔 소독하는 차원에서 수건만 돌리곤 한다. 아무튼 건조대를 펼치고 빨래를 넌다. 왜인지 모르게 하루가 뿌듯한 날이다. 내 인생이 3100원? 인생의 값이 정해졌다 해도 비싸게 굴고 싶다. 3인분 같은 2인분 좋아하시죠? 죽음으로 납품되어 가고 있는데, 인생은 3000원짜리, 물류비는 100원짜리인데, 받고 보니 가성비 좀 터지면 어떠세요. 어차피 내 인생은 3100원, 가는 길에 좀 더 비싸지고 싶어 지네요. 어차피 3100원. 입금은 이미 하셨어요. 먼지청소는 가끔 해요. 창틀에는 먼지가 세면대에는 물때가. 빨래는 잘 해요. 널어놓으면 하루가 뿌듯해요. 창틀에는 먼지가 세면대에는 물때가. 

 죽어가는 것들이 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빨래를 했다. 속죄할 것이 쌓이는 동안 Aldo Rossi의 '어쨌든 무언가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빨래를 널었다. 어쨌든 무언가 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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