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wangmyeong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할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3년의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성실하게 죽음을 향하셨다. 할아버지의 정신이 아직 온전하던 시간에 할아버지는 나에게 작은 비밀을 남기셨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이 비밀을 장황하게 누설할 생각이다.
소리가 들리면 공간을 가늠하게 된다. 메아리가 울리는 공간은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반사판은 큰데 흡음재는 없는 공간. 메아리가 잘 울린다. 나를 튕겨낼 이유는 많고 받아줄 여유는 없는 세상 Echo.
의성어 의태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아지는 멍! 하고 짖지 않고 멍멍! 하고 짖는다. 갈대는 흔들거리지 않고 흔들흔들 거린다. 딸랑딸랑. 펄럭펄럭. 소리는 반사되어야 들을 수 있다. Echo가 들리지 않는다면 주변에 흡음재가 많은 핵인싸 스타일의 사람이다. Echo가 들린다면 외로운 사람. 내 지갑 속 동전은 짤랑짤랑 자세는 건들건들 발자국은 터벅터벅 동네 강아지들은 멍멍. 하지만 사랑이 찾아오면 찡긋!
난해한 현대 미술관에 도착했다. 이게 대체 뭘 표현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컨템포러리한 작품 앞에서 길 잃은 눈빛. 난해한 해설. 감상을 포기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또각또각! 현대미술관의 경험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로 남았다.
음악은 공간을 일깨우는 시간의 이야기. 하지만 시간은 허구일 뿐이다. 시간은 인간의 물리화된 생각, 개념일 뿐이다. 음악은 착각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위대한 발명품 '내일'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늘만 살던 것들이 갑자기 내일이 생겼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내일 먹을 식량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의 메아리일 뿐이다. 메아리를 듣고 내일을 기대하다 보면 어느샌가 죽는다.
죽음은 음악의 부재다. 죽음은 소리가 없다. 메아리도 없다. 죽고 나니 드는 생각은 메아리덕에 외롭지 않았구나. 내일이 있어 오늘을 살았구나. 인생의 그림자는 외로움. 외로움은 내 절친. 죽음은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닌 오늘이 없는 것.
1909년 미국의 탐험가 피어리는 북극탐험에 최초로 성공한다. 지구상에 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곳은 남극뿐이다. 열렬한 탐험가 노르웨이의 '아문젠'과 영국의 '스콧'은 경쟁에 돌입한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남극을 향해 항해를 시작한다. 전초기지를 설정하고 식량과 물을 아끼며 이동수단을 모색한다.
영국의 스콧은 20명의 부하들과 최고급 말, 최고급 모터동력 썰매를 타고 남극으로 이동한다.
노르웨이의 아문젠은 4명의 동료와 56마리의 썰매개들을 이끌고 남극으로 이동한다. 라이벌 구도의 전형적인 내러티브. 승자는 기동력이 좋고 효율이 좋았던 노르웨이의 아문젠이다. 아문젠은 식량보급과 이동수단을 일체화하는 기막힌 수법(비질거리는 썰매개를 먹었다고...)으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영국의 스콧은 폼만 잡다가 한 발 늦었다. 귀족출신의 스콧. 최고급 말들을 먹어보지도 못한 채 눈보라에 잃어버리고 만다. 스콧이 모양만 그럴싸한 모터 동력 썰매로 어렵게 남극에 도착했을 땐 이미 노르웨이의 깃발이 단단한 어름 위에 박혀있었다. 승자의 역사. 아문젠은 남극을 최초로 탐험한 인간이 되었다. 스콧은 씁쓸한 마음으로 귀향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들은 눈보라와 식량문제의 의해 사망한다. 후에 수색대에 의해 텐트가 발견되었고, 꽁꽁 언 스콧의 시체 옆에는 그가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들과 아문젠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적힌 수첩이 발견되었다. 영국은 스콧의 수첩을 책으로 출간한다. 위대한 탐험가의 역경이 녹아든 스콧의 은밀한 탐험일지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의 라이벌 아문젠으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수첩을 꺼내든 스콧의 외로움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동상에 걸려 감각 없는 손으로 펜을 들어 자신의 패배요인을 적어낸 스콧.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눈보라 속 작은 텐트에 작은 시체에 고요히 잠든 그의 수첩은 절대로 발간되어서는 안 될 비밀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설되지 않았다면 비밀이 아니다. 그 수첩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면 비밀이란 말도 있을 수가 없다. 비밀은 누설되어야만 비밀이다.
한국전쟁 때 남한군에 항복하여 한국에 정착하신 북한군 출신 할아버지가 병상에 누워계셨다. 정신이 맑지도 않으시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굳세던 나의 할아버지도 시간(음악) 앞에서는 무음(죽음) 속으로 젖어들어가셨다.
지난 추석 때 할아버지를 간호했다. 계속 주무시려는 할아버지를 깨우려 이런저런 말을 많이 걸었다. 티브이도 정신 산만하게 소리를 아주 키워 놓았다. 티브이에서 트로트가수 남진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할아버지의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할아버지는 교회 목사님이셨다. 굉장히 엄하고 무서운 목사님이셨다. 부목사들이 넥타이 하나라도 삐뚤게 매면 2시간을 호통치실 정도로 성질이 고약한 목사셨다. 더해서 체면과 명예 명성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다. 서류가방은 무조건 왼손으로만 들어야 했다. 머리는 항상 좋은 기름으로 2대 8 가름마를 타셨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같은 시간에 구두를 닦아 신으셨다. 같은 시간에 주무시고 새벽 5시에 매일 일어나서 기도를 하셨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이 꽤나 긴데, 나는 단 한 번도 할아버지가 늦게 일어나신 걸 본 적이 없다. (흡사 내가 읽은 전기 속 레닌의 모습과 닮았다.) 아침식사도 항상 같은 걸 드셨다. 평생을 흐트러짐 없이 살던 할아버지가 이제는 잔뜩 흐트러져 병상에 누워 계셨다.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할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이 갑자기 훅 하고 실감이 날 때면 토가 나올 거 같았다. 한 번 도 보지 못한, 상상도 하지 못하던 어떤 것을 보게 된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 아코디언을 꽤나 잘 연주하셨었다고 한다. 목회일을 시작하시면서 대중가요를 들으면 안 된다는 어떤 강박이 생기셨는지, 돈이 없던 시절 첫 번째로 아코디언을 파시고는 찬송가 이외의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으시다. 내 어릴 적 기억에 할아버지는 찬송가를 부를 때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셨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는 음악을 참 좋아하셨다.
남진의 다큐멘터리에서 대중가요가 흘러나온다. 눈이 땡그래진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나는 남진이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고향에는 유행가가 없었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선천'이라고 하셨다. 선천에는 유행가가 없었냐고 내가 다시 물었더니 아기처럼 울음을 쥐어짜시려 하신다. "내 마음이 외로워. 무서워. 저 노래를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아."라면서 힘들어하신다. 나로서는 마음이 너무 짠해졌다. 나는 마치 크나큰 보상을 해드리는 듯한 어투로 할아버지께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괜찮니? 저 노래가 좋구나. 괜찮티? 괜찮티?" - "네네 할아버지 괜찮아요."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혹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으셨어요?" 이 질문에 나는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다. 만일 할아버지 마음속에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더라면 할아버지의 인생이 너무나 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인생. 당신의 기호가 탄로 나는 것을 최소화하던 할아버지 인생에 포옹을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아주 작은 소리로 비밀을 털어놓으신다. "현인 노래가 좋아" 나는 티브이를 끄고 유튜브로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틀어드렸다. 자꾸자꾸 주무시려고 하던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아지셨다. 할아버지는 음악을 들으셨다.
화양연화의 마지막과 같이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멍파인 기둥이 되어 할아버지의 비밀을 들어드렸다. 저 멀리 작은 동자승이 양조위를 지켜보듯, 내 동생은 이 모든 대화와 상황을 알면서도 모르는 듯 가만히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건강했던 할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가족들과 함께 평양냉면을 드시는 거였다. 평양냉면을 드실 때면 내려간 입꼬리가 올라오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걸어주시곤 했다. 평양냉면이 한때는 미식의 정수인 양 어떤 특이한 포지셔닝이 된 음식이었다. 문재인 정권과 공연단이 평양에서 오리지날 평양냉면을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평양냉면은 남한에서도 인민의 음식이 되었다.
우래옥 본점 1층 대기실에는 북에서 오신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으셨다. 문득 고향을 잃은 할아버지의 남한살이가 외롭게 느껴졌다. 나이 지긋한 북쪽에서 오신 할아버지들에겐 평양냉면 식당만이 국경의 안쪽으로 느껴지진 않았을까. 할아버지가 평양냉면집 쪽방에서 사셨다면 현인이 부르는 신라의 달밤도 따라 부르고 아코디언도 연주하시진 않았을까. 단지 맛있는 맛을 즐겨보겠다고 찾아간 평양냉면 집에서 괜시리 마음이 안 좋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에 평양냉면이 더 맛있었다. 정작 평양사람들도 냉면에 양념을 추가해 먹는다며, 밍밍하게 먹던 사람들을 몰아내는 시국이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먹던 것처럼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먹는다. 할아버지가 웃어주시던 기억이 문득문득 난다.
비밀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한다. 비밀을 간직한 채 죽는 것은 비밀의 소멸이다. 비밀의 존재마저 잃어버리기 직전 조금은 누군가 들을 수 있게 비밀이 누설되어 온다. 모두가 비밀이라고 얘기하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면 나는 외롭지 않겠다. 단, 비밀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필동면옥은 고기맛이 그저 그렇다. 면발도 적당할 뿐. 나에게는 착한 모범생 느낌이다. 재미가 없다. 을밀대는 녹두지짐이 맛있던 거 말고는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내 생활반경에서 가장 애매한 위치이기도 하고 잘 안 가게 된다. 평양면옥 또한 기억이 잘 안 난다. 능라도는 만두와 녹두지짐이 맛나다. 능라도의 냉면도 나쁘지 않지만 다른 만두, 지짐이랑 서로 주인공싸움을 벌이는 듯해서 궁합이 그저 그렇다. 진미냉면은 냉면에 힘을 빼서 좋다. 다른 음식들을 많이 시켜서 함께 먹을 수 있는 맛이다. 냉면만 먹어도 괜찮다. 개중에 가장 심심한 편이다. 진미냉면의 평냉은 아주아주 적당하다. 여의도 정인면옥도 기억에 전혀 남지 않는 맛이다. 우래옥은 우선 맛이 스펙타클하다. 할아버지의 잔칫날 불고기도 지짐이도 만두도 짭짤하게 먹고 보신하는 날. 불고기 구워주시는 이모님 앞치마에 용돈을 찔러주는 날.
할아버지는 은근 평양냉면을 소박하게는 드시지 않았다. 항상 우래옥에서 잔치분위기를 내며 드셔야 했다. 가끔 "냉면 먹으러 가자우!" 하고 함께 유명한 다른 평양냉면집을 가시면 크흠~ 크흠 하시고는 그저 그렇게 드셨다. 맛있어하진 않으셨던 거 같다. 분위기 때문이려나.
얼마 전 처음 가는 평양냉면집이 있었다. 광명에 있는 정인면옥. 첫 입에 정말 굉장한 맛을 느꼈다. 시원~ 했다. 아주 맛이 기가 찼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한 번 와야겠다 생각이 팍! 났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다시 인지했다. 어머니 아버지라도 모시고 꼭 오고 싶은 그런 멋진 식당이었다. 여의도의 정인면옥 사장님이 원래 광명에서 장사하다가 가게를 다른 사장님께 팔고 여의도로 갔다. 새로 온 사장님은 가게이름을 바꾸지 않았고 냉면과 수육의 스타일을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반전,, 여의도 정인면옥보다 광명 정인면옥이 나는 100만 배 더 맛나다. 얼른 또 먹고 싶다. 여의도 사장님께는 비밀이다. 할아버지께 더 잘해드릴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