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a Cruz
'미국적인 것'이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 돈돈돈 노래를 부르는 세상.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취향이 되지 못한다. 부족하고 서툰 것은 취향이 아닌 가난이 되었다. 그럴싸한 것들은 너무 쉽게 자랑 되어지고 질투를 유발한다. 피곤한 세상. 모두가 부자이고만 싶은 세상. 그런 걸 자본주의라고 부르나 보다. 그리고 그 선봉에 선 미국에서 불가피하게 일을 해야만 했다.
유럽적인 것이 미국적인 것보다 고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 생각은 비엔나 몰락 귀족의 핀잔이 되었다. 천박하다고 욕해왔던 미국적인 것, 햄버거가 고메의 범위로 넘어왔다. 레트로 감성의 대다수는 미국적인 것이다. 미국적인 UI/UX의 프레임 속에서 스스로를 박제하고 만족한다. '자랑하고 전시하고 사랑받자'는 당연한 수순에 서로를 질투하고 경쟁하는 이야기들은 깊은 곳에 숨겨졌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노출증을 좀 줄이고 조신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면 아주아주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Why not?"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햄버거가 로테르담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돈이 많으면 이탈리아산 페라리를 끈다. 샤넬백을 들고 에르메스를 찬양한다. 파리의 심판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짓밟아도 돈 많은 사람은 로마네 콩티를 그 돈 주고 사 먹는다. 미국은 돈으로 확실하게 유럽을 샀다. 부자들은 취향도 가난도 구입할 수 있다. '나 다운 것'을 만든다고 큰소리치지만 모두 구입 가능한 것들로 전락했다. 조신하지 못한 시녀(시남)들 덕분이다. 겉만 번지르한 연대의식으로 본인 또한 자랑되어지길 원한다. 그것이 문화적이던 교양 있는 고상한 가치던 간에 자랑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좀 더 내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로의 열등감과 경쟁의식만을 툭- 건드리고 떠날 바람 같은 자랑에 스스로의 삶이 꽤나 두둑하다고 혹은 얄팍해서 괴롭다고 착각한다. 잘못된 건 짧디 짧은 '자랑' 그 자체임에도 참질 못하는 조루증세가 느리고 길고 소중한 가치들을 버적버적 박살내고 다닌다.
이 따위 불만을 품은 내가 미국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San Francisco에 사는 동안 내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이 미국에 놀러 오신다고 한다. 사장님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다. 가족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나 존경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멘토 이상의 선생님이자 롤모델이자 좋은 삼촌이자 선배였다.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는 나에게 선생님이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백만 가지다. 그중 이 글의 맥락에 맞춘 덕목을 하나 설명하자면, 그는 검소함을 지녔다. 돈에 환장한 세상에 돈이 어마 무시하게 많은 분이었지만 '자랑'하지 않는 분이었다. 느리고 서툰 것들에 대해 보살펴 주시는 분이었다. 그 느리고 서툴고 보잘것없는 것 중에 내가 있었다. 나는 시키는 일 뭐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 게 없었다. 그래도 그분은 기다려주시고 아껴주셨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며 격려해주셨다. 가끔 혼날 때가 있다면 나 스스로를 내가 믿지 못할 때였다.
그런 분이 나를 비롯한 사업 파트너들과 여행을 좀 하시겠다며 미국으로 오신다고 한다. 부자들의 여행에 꼽사리 끼는 분위기다. 이 여행의 모든 moderate은 내가 해야 했다. 어떤 여행을 해야 선생님을 비롯한 성공한 사업가들이 만족을 할까 하다가,,, 발칙한 생각을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육체적 괴롭힘을 당할 일이 거진 없을 것이라는 나의 가설하에 Santa Cruz부터 MorroBay까지 300km 정도를 자전거 타고 여행하는 계획을 짰다. California Highway 1 길을 따라 쭉 내달릴 수 있는 구간 중에 Scenery가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구간을 선택했다. Up Hill이 많아서 하루에 50-60km 만 타도 모두 녹초를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선생님의 밤잠도 한 큐에 해결되지 않을까 했다.
선생님은 흔쾌히 좋다고 하신다.
나까지 7명의 사람들이 Santa Cruz에 모여 샌드위치를 배낭에 넣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일원 중 한 분이 딸기밭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부상자가 발생했기에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딸기밭이다 보니 주변에 판자 깔고 딸기 파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선생님과 딸기를 사 먹고 딸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지금 딸기 사업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얼마 전 돌아가셨다. 내가 준비한 딸기는 맛보지 못하셨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나는 이때의 여행을 추억하며 Santa Cruz를 3번 더 방문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한 번, 여자 친구와 한 번, 친구와 한 번.
Santa Cruz는 나에게 자본주의적인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정말 멋진 여행을 경험했던 도시이기에 애착이 갔다. 나에게 특정한 감정 - 노스탤지어를 느끼게끔 하는 도시가 있는데 그중 한 곳이었다.
Santa Cruz는 서툰 것 투성이인 도시다. 세상에 지친 히피들이 대마초를 피며 밀리고 밀려나 이곳에 정착했다. 낭만을 품은 서핑족들이 겨울에 아주 조용히 서핑을 타는 곳, 맛있는 것이 비싸지 않은 곳, 과하지 않은 곳, 말리부 혹은 몬테레이의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먼 도시,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곳, 석양이 아름다운 곳, 지친 물개들이 잔교에서 껑껑 거리며 쉬는 곳, 자랑하지 않으려는 곳, 정녕 미국의 취향이 묻은 곳, 도망칠 수 있는 곳, 취한 사람들이 아주아주 천천히 걷는 곳, 음악이 있는 곳, 바다가 있고 파도가 있는 곳, 내가 그리움을 느끼는 곳.
미국에 있지만 미국이 싫지 않은 곳이었다.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인기가 그리 많지 않은 휴양지의 비수기는 쓸쓸하고 아름답고 느리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한 곳이자 선생님과의 추억이 시작되는 곳이다. 겸손한 선생님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참 많은 것을 배운 곳이다.
Santa Cruz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미국적인 것'이라는 것은 Santa Cruz에도 있고 실리콘밸리에도 있다. 하지만 나는 'Santa Cruz의 미국적인 것' 만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에게도 겸손이 있었다. 부자는 페라리를 몰지만, 아버지가 타던 포터 트럭 더 아름다운 것이다. 샤넬은 돈이 있으면 사입을 수 있는 것이라 할머니가 물려준 드레스가 더 아름다운 것이다. 구멍이 나고 늘어진 티셔츠가 나의 패션이다. 자랑하기에 미친 것들의 수요 덕에 구제 샵에 구멍 난 옷들이 난무하고 빈티지 소품들이 값이 매겨져 전시되고 있다. 시간조차 자본에 기대어 가치를 뽐내지만, 내 손으로 만지고 내 손으로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면 나의 가치가 아니다. 서툴고 어설퍼서 값이 매겨지지 않는 결함만이 가치가 있다. 결함은 자랑될 수 없다. 눌러 눌러 변호하고 굳이 또 설명하고 개인적인 감상과 애착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 몽정하듯 튀어져 나온 것 만이 어쩔 수 없고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만이 자랑 될 수 있다.
선생님의 죽음이 나의 삶을 변호하는 것에 소모되는 것은 아닐까 죄책감 또한 든다. 하지만 무엇인가는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소중하고 멋진 분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셨다. 부디 그분이 계신 하늘나라가 스펙타클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휴양지의 비수기 이기를 바란다.
선생님은 부자로 소문이 났지만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친구의 아내가 만들어준 가방을 들고 다니셨다.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기에 앞서 선생님이 살아온 인생의 태도에 대해 존경하게 된다. 나에게 큰 상징이 되어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슬픈 일이다. 정말 슬픈 일이다.
무엇인가 죽음에 대해 더 긴 글을 쓰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애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쓰면 쓸 수록 할 수 있는 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세상이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냈다는 인상과 함께 이같은 우울감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우울감과 세상으로부터 부인당하는 기분을 느끼게끔 하는 주변인에게 돌이라도 들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나의 우상이 죽었다는 사실과 함께 거대한 방파제 하나가 무너져내린 기분이 들었다. 세속적 성공을 누구보다 크게 이룩한 나의 우상이 나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주셨는데... 이유가 무엇이던간에 그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나의 가치가 함께 추락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 잘 살아보자고 외치며 어깨동무하던 동료들에게조차 모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낭만적인 방어막 하나 없이 살아내야 하는 내 기분에 뜻도 모를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의미라는 것이 어느순간 허무하게 느껴졌다. 잘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sns활동과 노력들, 성공을 바라는 욕망과 삶의 의미를 위해 투신하는 주변인에게 뜨거운 저주를 내리고 싶었다. 아무의미 없다고 그냥 살라고. 다 부질없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게 그런게 아닌걸 알면서도 노력이 미웠다. 정말 정말 소중한 건 다른거라고 지금 이게 아니라고 세상이 미쳐돌아가고 있다고 우리 좀 더 다른걸 위해 살아보자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사진첩을 뒤지다가 자전거 타고 있는 선생님의 뒷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뒷모습조차 존경했나보다. 나는 뒤따라가고 있다. 내 생이 다할 때 까지 그분이 내게 알려준 의미와 사랑을 나도 전해야 겠다. 부디 이런 내가 세상으로부터 내밀려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