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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과 작품의 경계에서

서평은 상품인가 작품인가?

by 지스


상품은 타인의 필요로부터 시작된다.

작품은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상품은 외부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다.

작품은 내면의 충만에 의해 탄생한다.


상품은 돈이 되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된다.

작품은 의미가 없으면 실패로 느껴진다.


모든 창작물은 이 상품과 작품의 축 사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어떤 창작물은 작품으로 시작해 상품이 되고,

또 어떤 창작물은 상품으로 시작해 작품으로 완성된다.




어떤 유명 화가의 옛 낙서가 수십억에 거래되는 이유는 그 낙서가 상품으로 소비되기 전, '작품'으로 존재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창작자가 의미를 추구했던 시간이 상품에 '작품'의 아우라가 스토리로 깃든다.


반대로, 작가 혹은 창작자가 타인의 취향과 시류에 맞춰 기획된 '상품'들을 만들며 지속적으로 이를 반복하고 축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작업이 '작품처럼 보이는' 경지에 닿기도 한다.


작품이 상품이 되는 데는 사람들이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고,

상품이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깃들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스타일이 필요하다.


상품은 생존을 위한 것이고,

작품은 존재를 위한 것이다.


창작물에서 상품성과 작품성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창작물에서 심장과 뇌처럼 기능하며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공존한다.


그러면 나의 서평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돈을 받고 쓰는 글은 상품적인 글이고 돈을 받지 않고 내 욕구대로 쓰는 글은 작품으로써의 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어디까지나 의뢰인이 온전히 '상품'적인 글을 쓰기를 바란다면, 그는 무명의 서평가가 아니라 유명 카피라이터를, 마케터를 찾아갈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유혹하는 글을 쓰는 게 그들의 일이니까.

그들이 굳이 책을 위해 자극적이지도 않고, 따분한. 허구한 날 책만 읽는 서평가를 찾은 이유는, 계속해서 쏟아내는 서평에, 그 작품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이해하고, 그 책을 고유한 관점에서 자신의 언어로 그려내는 '서평'이라는 작품에.


그러므로 나의 서평은 절대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글은 작품이 되어야 한다. 자기 계발이건, 마케팅이건, 소설이건, 인문학서건 종류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상품'으로만 보이는 글을 써냈다간, 그건 상품도, 작품도 되지 못하는 데이터 쓰레기가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내가 매일 쓰는 이 글 무더기,

이 데이터 덩어리는 생존을 위한 ‘상품’인가,

아니면 서평가로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작품인가?




혼자서 결론을 내려보면 다행히도 작품이기에 상품도 될 수 있는, 그 둘 모두일 것이다.


내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마음을 움직이는 ‘상품’이고,

내 글에 시간을 써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그 글은 이미 가치가 생긴 삶을 바꾸는 ‘작품’이다.


서평가는 결국 상품을 만들기 위해, 상품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노력해서도 안된다. 계속 내게,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작품들을 만들수록, 내 글과 이야기는 단단한 작품이 될 뿐 아니라 매력적인 상품이 되기도 할 테니까.


나에게 생존의 문제는, 존재가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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