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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Aug 08. 2024

프리랜서의 여름

더위에 녹아내리는 사람

침대에 녹아내린 듯이 늘어져 있는 이 안락함.


  평소보다 2배가량의 중력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지만 그것이 흔들림 없는 안정감처럼 느껴진다. 침대가 꼭 시몬스가 아니더라도 이런 안정감을 느낄 수 있구나. 다른 일에도, 알람 소리에도 시달리지 않고 깨면 깨는 대로, 조금 더 뭉그적대고 싶으면 그래도 아무 거리낌 없는. 얼마나 만족스러운 삶인가. 나를 깨우는 소리라곤 저 낡아빠진 에어컨이 돌아가며 내는 웅웅거리는 소리뿐이다. 다만 저 혼자뿐인 소리라 하더라도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게 꼭 잠자리에 들 때나 잠에서 깰 때면 공사장 소리만큼 시끄러운지. 다른 소리는 귓구멍을 쿡쿡 찌르고 들어오는 느낌이면, 냉장고나 에어컨처럼 모터가 돌아가는 기계 놈들의 소리는 고막과 공명해 내 고막을, 머리통을 웅웅 울리게 만드는 느낌이다.


  몸을 뒤척거리고, 굴러다니던 이불을 껴안고.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써 보았지만 결국 온몸을 맴돌며 남아있던 숙면의 여운마저 사라지고 잠에서 깨어버렸다. 이 잠과 현실의 경계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잠이 깨어버린 눈은 힘을 주지 않고도 제자리를 찾아가듯 반쯤, 아니 반의반쯤 걷어 올려진다.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밝은 햇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초점 잃은 동공이 주변을 훑는다. 암막 커튼의 틈으로 눈부시다 못해 태우고 녹이려는 듯한 햇볕이 내리꽂힌다.


  핸드폰을 보니 어느새 2시다. 햇볕이 살벌하게 느끼질 만 했구나. 새벽 5시부터 9시간을 내리 퍼질러 잤으니, 몸이 찌뿌둥하다. 그 와중에 저렇게 햇볕이 눈부신데도 한 번을 안 깨고 잔 걸 보니 자는 동안 에어컨과 암막 커튼이 참 열일한다 싶다.


  이불속에서 뭉그적 기어 나와 책상 위의 알약 봉투를 입에 털어 넣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입에 들이붓는다. 자는 동안 바짝 말라붙어있던 입과 목구멍, 위장이 그 냉기에 소스라치는 듯한 느낌이 들며 알약의 쓴맛이 혀에 채 느껴지기 전에 목 너머로 넘겨버린다. 오늘도 쓴맛을 보기 전에 얼른 삼키는 데 성공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조금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항우울제가 목구멍을 넘어가자마자 효과를 낸 건가.


  늘 하루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삐그덕거리는 소파에 앉아서 일거리를 생각해 본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썼던 글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남겨놓은 메모를 보니 뭘 쓰려고 했었는지는 기억도 안 나고. 폐기. 엊그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나 읽을까. 외주 받아놨던 건 일정이 얼마나 남았더라? 전에 기획했던 새로운 영상의 베이스 그림도 그려야 하는데. 그건 또 언제 한담.

계획이 고민이 되고, 고민이 걱정이 되고. 24시간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음에도 어쩐지 여름의 열기와 머리의 발열이 뒤섞여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 하고 계속 늘어져 있을 것 같아 잠에서 깨어도 너덜너덜한 몸뚱이를 끌어 커피를 내려놓고 화장실로 가 찬물을 뒤집어쓴다.


  맘 같아선 이대로 씻고 나가서 카페에 앉아 기분 전환도 하고 싶고, 산책도 어슬렁어슬렁 하고 싶은데. 햇볕 아래에만 서면 5분도 안 되어서 온통 땀범벅이 되어 땀방울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감각과 땀에 흠뻑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는 감각이 덮칠 게 뻔하니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냥 소소한 기분 전환으로, 마치 외출한 것처럼 외출복으로라도 갈아입고 카페 분위기 음악이라도 틀어놓는다. 그럼에도 물 먹은 수건을 비틀어 짜듯 쥐어짜인 기력은 도통 돌아오지 않는다.


  거지 같은 여름이, 언제쯤 끝을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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