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와 딸기의 밤.

by 윤모닝



9시가 11시가 되고

11시가 1시가 되고

이제 1시가 되었겠거니 했는데

2시가 되어서 집으로 가네.


데려다준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1층,

1층에서 야외 주차장,

주차장에서 내려가는 갓길에 새워둔 내 차까지.

아쉬움을 등에 업은 배웅은

늘 결론보다 서론이 더 긴가봐.


그렇게 우린 현재와 조금 지난 과거,

그 과거의 과거까지 넘나드는 시간 여행을 하며

4잔의 차를 마시고도 모자랐던 그날의 밤처럼

캄캄한 밤하늘을 이야기 보따리로

몽글몽글 채우고 있구나.


풀지 못한 누수의 수수께끼 때문에

3시간 동안 어떻게 기다리나 했던 1시는

어느 도로를 달려왔는지 성큼 와버렸고


바람에 뒹구는 낙엽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다가 그제야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손목시계를 봐.


우린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쬐끄마한 세발자전거를 타고 망미동을 누비던 멜빵바지 양배추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이모 무릎 위에 강아지 똥처럼 앉아있던 빨간 니트 원피스 딸기.


솔로몬 오락실과 또순이 감자탕처럼

언제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우리의 단어들이 범인일까.

서로의 작고 큼을 봐온 30여 년의 세월 때문일까.

아님 우리의 목마름이 닮아서일까.


나의 오른쪽 눈, 왼쪽 콧볼, 윗입술만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도

위아래 오른쪽 왼쪽 얼굴을 다 보여주며

척하고 말해도 착하고 알아듣는 멜빵바지 양배추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안녕.

슬슬 추우니까 이제 진짜 가볼게.


아 근데

지금 이대로 끝내는 거 좀 아쉽긴 하다.

방금 한 그 얘기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 우리 아직 얘기 다 못했으니까

다음에 더 본격적으로 하자구.

듀티표 카톡으로 보냈으니까 되는 날 연락해!

그래 다음에 보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