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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Jan 22. 2024

3-2. 30초 만이라도 평안하고 싶어요.

오랫동안 내재되어 있던 나의 불안과 마주하다.







오랫동안 깊이 뿌리내려 버린 불안.




 앞서 안개처럼 흐리기만 했던 내 마음에서 여러 감정들을 쏟아내던 어린아이가 나타나면서 감정을 만나는 게 두렵지 않게 되었다. 어린아이를 놀아주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이 아이는 잠잠해지고 내 마음에는 아무 일도 없는 잔잔한 호수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저 밑바닥에서 알 수 없는 불편감이 지속해서 느껴졌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안락의자에 가만히 몸을 기대어 앉고 눈을 감고 나의 숨소리와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빨리 뛰고 있는 나의 심장소리와 가슴 중앙에 왠지 모를 먹먹하고 멍든 것처럼 불편한 느낌. 나는 이것이 뭘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불안이에요. 본인에게는 깊게 내재되어 있는 불안이 있어요.”


“불안이요? 저는 지금 불안감을 느낄 만한 일이 전혀 없는데요?”


“불안감을 느낄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본인은 저 밑바닥부터 깔려있는 불안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불안한 엄마의 감정상태를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불안함이 내재되어 있을 거예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불안을 더 크게 느낄 거예요. 아무도 그 불안함을 적절하게 달래주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위협을 받거나, 위험에 처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아플 때 아동은 안정감, 안전 그리고 웰빙을 회복하기 위해
엄마와 접촉하려 한다. 엄마는 유아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유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보완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러나 Bowlby는 우리의 애착 안정성에 대한 욕구가 유아기와 아동기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즉, 위험과 고통에 직면했을 때 안정을 회복하고 편안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안정 애착은 정서조절의 중추이며, 고통과 극단적인 경우로 외부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일차적인 수단이다.
(Jon.G.Allen, 애착외상의 발달과 치료)



 성인이 된 이후로도, 가족은 내가 울거나 마음 아파하거나 우울한 모습 즉, 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안심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외면하거나 이상한 아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질타를 했. 어렸을 때의 나는 이런 외면당함을 느낄 때마다 어떻게 혼자서 불안감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족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해, 자신 스스로도 자기감정을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emotion이라고 하듯이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감추고 억압하려 해도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것이 대인관계에서든 자신의 신체의 증상으로든 감정은 건강하게 표현되거나 조절되지 않으면 안팎으로 영향을 주게 되어있다. 다음 글에서도 소개하겠지만 나의 경우 불안과 관련된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소아 ADHD를 앓았었고 이를 제때 치료하지 않아 성인 ADHD로 발전되고 나서야 발견하였다. 그리고 고등학생시절에는 공부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함이 더해져 목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든다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턱과 목이 경직된다거나 왼쪽 팔이 긴장되고 저린다던지 하는 증상들이 동반되었다. 이러한 시절을 정신분석 상담을 만나기 전까지의 30여 년 동안 계속되어 왔고 이것이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이었던 것이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야 이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불안감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정신분석 과정을 시작하는 초기에는 이렇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에다가 나라는 한 사람 안에 해결해야 할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이미 앞의 글들에서 소개했듯이 나는 마치 단단하게 뿌리내리지 못해 주변 물살에 쉽게 휩쓸려나가는 나무줄기처럼 흔들리는 나의 자존감과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분리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의 문제와 남의 문제를 분리해 내는 것, 감정 읽어주기 등.. 나의 삶에서 여러 가지 영역이 복합적으로 건드려지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외부 환경에 대해서 내 마음 하나 지키는 것도 너무 힘이 많이 소진되던 시기였기에, 나는 그저 누군가가 짐을 맡기지 않았는데도 이미 탈진한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다.


 상담사의 입장에서는 내담자의 혼란이 많아질수록 내면의 치료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기에 반가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직접 겪는 내담자 입장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불안하고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매우 힘든 과정이다. 더구나 나와 같이 주 양육자로부터 안정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감정을 외면당했을 경우,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할 기회가 없기에 남들이 느끼는 불안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선생님, 제발 30초 만이라도 평안하게 있고 싶어요. 그게 소원이에요.”


 상담 초기에 내가 울면서 상담선생님에게 했던 말이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 머리로는 이미 답을 다 알 거 같은데 정서적인 마음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아서 괜히 조급함도 생기고 자책도 했다. 머리가 하는 말과 가슴이 하는 말이 맞지 않아서 자신 안에서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나의 경우 ‘너는 왜 이 상황에서 그런 마음을 가지니?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아.’라며 속으로 스스로를 많이 다그쳤다. 그리곤 얼른 성장해서 이 모든 아픔과 슬픔,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스스로에게 재촉하곤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바로 가르쳐준다 해도 소화를 하지 못하듯이, 나 한 사람을 바로 세워가기 위해서는 단계에 맞게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안 그래도 불안함이 내재되어 있는 나에게 이런 기다림의 과정은 불안함을 더욱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선생님, 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도 이렇게 불안함을 느끼는데, 홀로서기가 가능할까요? 뿌리내리려고 하면 물살에 어김없이 휩쓸리는 제 자신인데, 땅에 단단히 뿌리내려서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


“그럼요. 당연하죠. 그동안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안개 같다고 했던 걸 생각해 보세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불안함을 직접 마주하고 있잖아요. 그만큼 힘이 생긴 거예요. 불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예요.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거니까요.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온다는 건 얼른 해결해 달라고 올라오는 것이거든요. 이제는 이 감정을 받아줄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시기가 온 거예요. 정말 많이 성장한 거죠. 그리고 감정은 파도와 같은 거예요. 파도가 올 때 그 자리에서 파도를 맞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지나가듯이 감정도 있는 그대로 느끼다 보면 넘어가지게 될 거예요.”






 상담을 시작하고 나면 표면에서부터 깊은 내면까지 건드려지게 되면서 많은 혼란스러움이 동반되는데, 그렇게 바닥도 치고 하늘도 오가며 내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상담선생님이 늘 해주시는 말씀이 있었다. 제일 밑바닥 끝으로 간 느낌이 들겠지만 그건 이전에 바닥을 칠 때보다 덜한 곳이라고, 굴곡지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멀리서 보면 위로 상승하는 곡선이라고. 그러니 지금 서있는 곳이 끝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그건 성장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거니 자신을 믿고 그 순간을 버티기만 해도 된다고 말이다.


 언제쯤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하던 내 마음도, 버티기만 해도 잘한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도, 어느덧 웬만한 물살에도 땅에 뿌리가 잘 박혀있는 마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이만큼 자란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고 스스로에게 기특하게 여기고 있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이 언제쯤 끝날까 싶은 그 순간에 포기했었다면 절대 맞이하지 못했을 순간이다. 끝까지 버텨준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고맙다고 안아주고 싶다.









불안함을 더욱 증폭시켰던 강박.



그 외에도 나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던 요인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합리적 신념으로 빗어진 ‘강박적 사고’였다.


 나의 엄마는 내가 밥을 한두 숟가락 남기고 거의 다 먹었다고 생각할 때쯤 상을 치우셨다. 설거지해야 할 그릇이 하나라도 있으면 가만히 쉬다가도 어김없이 설거지를 하셨다. 그러다 보니 나도 다 같이 밥을 먹다가도 괜히 혼자 남겨지면 밥을 빨리 먹고 치워야 할 거 같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주말에는 엄마와 목욕탕을 갔는데, 엄마는 내가 혼자 제 몸을 씻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것이 더 안심이 된다며 나를 바닥에 눕히고 아기를 씻기듯이 씻기려 하셨다. 이미 장성한 나인데 아기 취급하는 게 싫었던 나는 내가 씻겠다며 거절했지만 엄마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등짝 세게 때려가며 이렇게 씻지 않으면 깨끗하지 않다며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되다 보니 나는 어느 시점부터 엄마와 목욕탕을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는 화장실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 거울에 물기 하나라도 있으면 빼먹지 않고 잔소리를 하셨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잔소리를 하면서 나를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갔다.


 이러다 보니 나에게도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빨래나 청소, 설거지가 안되어있으면 쉬는 것도 뒤로 미뤘고 효율적이지 않아도 내가 주로 쓰던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나만의 패턴이 생겨서 이 이외의 상황이 생기면 어김없이 불안감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설거지 거리가 생겨도 바로 안 해도 돼요. 꼭 해야 하는 때가 어디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거죠.”


 나는 내 안에 ‘~아니면 안 돼’라는 강박이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나하나씩 경계를 무너뜨려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밤늦게까지 근무를 하고 돌아와도 무조건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늦잠을 자보기도 하고 헬스장을 매일매일 가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2일 운동하고 하루 쉬고, 2일 운동하고 하루 쉬는 패턴으로 바꿔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매일 아침 정해진 컵으로 커피를 마시다가도 다른 컵으로도 마셔보고 매번 가던 길도 다른 길로도 가보면서 고정된 패턴에 갇혀있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설령 ~가 아니어도 괜찮아’로 바뀌었고, 내가 익숙했던 패턴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아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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