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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Jan 23. 2024

3-3. 원치 않게 물려받은 우울감.

집단 대물림을 끊어내는 그 첫 걸음, 바로 나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어린 내가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던 일.




‘엄마 좀 웃어~’ 라며
내가 입꼬리를 올려줘도 엄마의 표정은 늘 우울하다.

세상이, 하루하루가 모든 순간이
너무 재미있을 수 있는 순간들인데

그것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린 엄마가 밉다.

- 2022.04.14 일기 -




 나에겐 어렸을 때부터 꼭 해내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것. 보통 어린아이가 엄마 앞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엄마는 웃어주기 마련인데 나의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그 앞에서 재롱을 떨고 웃긴 표정을 짓고 사람들이 웃기다는 이야기를 해줘도 엄마는 웃지 않았다. 야심 차게 개그콘서트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을 기억했다가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나에게 돌아오는 건 하나도 재미없다는 직설적인 평가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내뿜는 우울한 기운을 내가 뒤엎어보겠다는 신념으로 엄마를 더 웃기기 위해 노력했었다.









태어나서 처음 내 두 귀로 들었던 말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꼬.”



"주 양육자인 엄마에게서 태어나자마자 그런 말을 들었으니 이 세상을 자신이 헤쳐 나갈 수 없다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이미 건네준 거예요. 축복보다 우울감을 먼저 만난 거죠."



 상담선생님의 이 말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축복보다 우울감을 먼저 만났다는 사실이, 아니 이미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만들어지고 엄마가 나를 품고 있을 때부터 우울함이 전해져 왔다는 사실이 가슴이 사무치게 아파왔다. 정말 시리도록 아파왔다. 심지어 나조차도 주변 친구들이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해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되는데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먼저 심겨줄 수 있었을까. 긍정적인 것으로 세상을 맛보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태어나자마자 내 세상을 회색빛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말은 내 자라는 내내 세상은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하고 살기 힘든 것이며 사람들은 내가 경계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를 깨닫고 나서 이 우울감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나의 엄마 또한 그의 엄마로부터 우울감이 전해졌을 것이고 그전은 그전 대에서 부터 계속 쭉 이어져 왔을 것이다. 이것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하는데, 결국 지금 현재에 나타난 정서적 결핍들은 그 전 오래된 조상들에서부터 해결되지 않고 대물림되어 나타난 산물이다. 그런 우울감의 대물림을 내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며 그 무게에 짓눌리는 듯한 마음을 느꼈다. 그렇게 우울감과 마주하는 며칠을 보내는 동안 나는 꿈을 자주 꾸게 되었다. 원래 꿈을 자주 꾸던 체질이 아니었는데 이것이 며칠 상간으로 계속되다 보니 내 무의식과 연관이 되어있나 싶어서 상담 선생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셔서 엄마가 슬퍼하며 울고 있었어요. 그런 뒤에는 갑자기 장면이 바뀌더니 엄마가 돌아가신 할머니 옆에 누워있고 그런 엄마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거기서 꿈이 끝나버렸어요.”


“꿈은 우리의 무의식하고 연관되어 있어요. 꿈은 전부 믿을 수 없는 개꿈이라고 하지만, 꿈속을 잘 파헤치다 보면 자신의 깊은 무의식에 담고 있는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그 꿈은 할머니에게서 이어진 정서적인 결핍이 엄마에게 고스란히 흘러왔고 이제 그 영향을 본인이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네요.”









엄마의 손길이 묻은 과자봉지를 쉽게 버릴 수 없었던 아이.




 7살이 될 무렵, 나는 하루에 용돈 100원씩 동전지갑에 모아서 10000원짜리 꽃다발을 사서 엄마의 생일에 건네준 적이 있었다. 엄마의 반응은 “응 그래 고마워~” 단 한마디였다. 엄마의 생각지도 못하게 짧었던 반응은 어린 내가 느껴도 너무 멍했고 서운하게 느껴졌었다.



“그 어린아이가 그렇게 애써서 엄마의 사랑을 얻어내려고 한다는 것 자체에서 이미 스스로는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 거랍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눈치 보며 애쓰는 모습들을 보이게 되죠.”



 요즘에 TV에 어린아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부모의 무릎보다도 키가 작은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사탕하나만 건네주어도 까르르 넘어가는 부모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런 사랑을 얻기 위해서 하루 용돈 100원씩 100일을 모아서 꽃다발을 전해줘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지금 이렇게 글로 써도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이 너무 고픈 나머지 엄마가 준 과자들을 다 먹고도 과자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봉지에 엄마의 손길이 묻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정말..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과자봉지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이건 제가 더 슬프네요. 참..”



 상담선생님의 진솔한 반응을 들으니 내 머릿속에서는 문득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내가 보기에 너무 예뻤던 우리 엄마. 아무리 엄마에게 “엄마는 어쩜 그렇게 예뻐?”라고 하면서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도 엄마는 “내가 메주덩어리인데 뭐가 예뻐? 너만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걸?” 라며 나의 말을 부정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엄마가 자존감이 그만큼 낮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만 했었지 크게 생각을 안 했었는데, 꽃다발 이야기와 함께 엮어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는 어렸던 내가 하는 말이나 느끼는 감정, 생각 그리고 내가 건네는 진심이 담긴 사랑도 다 부정하는 말이었다. 어린아이에게는 ‘네가 그렇게 느끼는 게 이상한 거야’라는 생각을 심게 해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정,

나의 오랜 친구가 되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마냥 밝기만 하다가도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우울감이 밀려온다. 처음에 정신분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이 우울감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활동적인 것들을 찾아서 하고 약속도 빈틈없이 만들고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일부러 밝은 음악만을 듣고, 밝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프로그램만 틀고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그런 우울의 기운을 주는 것들이 오면 이겨낼 수 없을 거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선생님, 이 우울의 감정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지난번에도 말했었죠? 감정은 파도처럼 가만히 받아주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지나간다고. 우울함이 느껴지면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가만히 받아주세요.”



 나는 그 이후로 우울의 감정이 찾아오면 이를 피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고요한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그 우울의 감정을 파도가 밀려오듯이 그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이 우울의 감정은 뭘까. 왜 우울한 것일까. 우울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감정을 천천히 곱씹어가며 느끼다 보니, 잠식 당할까봐 무섭게만 느껴졌던 우울한 감정이 문득 신기하게도 나의 오랜 친구처럼 익숙한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너는 그 감정을 또 어디서 느껴본 것 같니?’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러더니 지나온 나의 시간들 속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때들이 하나씩 하나씩 막 떠올랐다.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그때의 나를 한 명씩 만났다. 처음에는 그때의 내가 떠올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서있었지만, 그저 그 아이들 옆에서 가만히 감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주기도 하고 포근하게 안아주기도 하면서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꽃다발을 건네주고 서운해하는 아이에게, 과자봉지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집을 나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에게도 함께 쭈그려 앉아서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려주고 옆에 같이 있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눈을 감고 있는 내 얼굴에도 뜨거운 눈물들이 흘렀지만 나는 이것이 정신분석 상과정에서 치료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렇게 우울의 감정과 깊게 만나보고 나니, 그 이후로는 우울한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마치 옛 친구가 오랜만에 집에 찾아오는 것 같이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구나! 어서 와~’ 라며 친숙하게 맞이하는 나. 이제는 잔잔한 음악, 어두운 내용의 TV 프로그램, 기사, 어두운 색들을 봐도 무섭지 않다. 잠식당할까 봐 두려운 느낌도 없다. 이번에도 그 오랜 친구 옆에서 함께 있어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면 되니까.


 아마도 이때부터 난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았던 집단 무의식이라는 숙제를,

 그 순환을 이미 끊어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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