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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Jan 23. 2024

3-4. 나의 ADHD.

감정조절의 어려웠던 어린 나에게 찾아온 ADHD.








어? 내가 왜 이러지?




 퇴사 후 2년 만에 처음 다니던 병원에 재입사하여 근무 중이던 나는 다시 병원 시스템을 떠올리는 것과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었다. 환자들이 가진 질환들도 대부분 내가 자주 접하지 못했던 심장질환이다 보니 질환이며 알아야 할 약들이며 공부할 것도 많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나는 나름 이런 스트레스를 안고 있었지만 일부러 바깥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다른 동료들이 봤을 때는 내가 항상 웃고 다녀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하게 환자에 대한 처방을 해석하고 처리하려고 하는데 정말 방금 읽었던 처방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두세 번 반복해서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런가 하면 익숙하게 내가 할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절차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일을 한 지 7년이 되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신규 간호사가 하는 실수를 자꾸만 반복하고 있었다. 또한 환자가 좀 전에 나에게 했던 말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인지적인 면에서 자꾸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자 내 안에는 갑자기 불안감이 확 느껴졌다. ‘어? 내가 왜 이러지? 나 이렇게 일하다가는 크게 문제 생길 거 같은데..’ 마음은 불안했지만 나는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라 원래 나의 능력치만큼 발휘를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 사태를 그저 바라만 보고 기다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국 사태는 심각해지고 말았다. 같이 일하는 선배가 내가 자꾸만 신규처럼 실수가 잦아지다 보니 나에게 크게 실망하며 ‘아니 너마저..’라는 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성인이 되어 발견한 나의 ADHD.





 나는 이 사태를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조그마한 실수 하나, 말 하나에도 다른 사람의 안전에 위협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들러 정직하게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주의집중력검사, 뇌 스캔검사, 설문조사, 면담 등 다양한 검사들을 시행한 다음, 의사 선생님이 결과를 가만히 보더니 컴퓨터 모니터를 내쪽으로 돌려 뇌 스캔 영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검사 결과를 보고 정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뇌의 측면 가장자리를 제외하고 거의 80%가 주의력이 분산된 상태였던 것이다. 주의력이 활성화되지 않은 부위가 파랗게 표시되었는데, 나는 그 영상을 한참을 바라보면서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성인 ADHD는 많은 경우가 소아 ADHD에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뒤늦게 발견된 경우예요. 아마 감정 설문조사나 면담을 통해서 내담자분을 살펴봤을 때 불안감이 높게 나온 것과 성장과정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토대로 봐서 소아 ADHD를 앓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ADHD 라구요? 저는 그렇게 산만하거나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활동적인 아이가 아니었는데요?”


“ADHD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 산만한 유형이 있는가 하면, 조용한 ADHD도 있어요. 내담자 분처럼 생각으로 집중력과 주의력이 분산되는 경우인 거죠. 아마 어렸을 때 수업시간에 의자에 앉아는 있지만 집중을 잘 못했다거나, 노력을 많이 했으나 남들에 비해서 그만큼의 성과를 누리지 못한 것도 있을 거예요.”


 

 이 말을 들으니, 나의 어린 시절과 초, 중, 고, 대학교시절이 생각나면서 그동안 아무리 남들에 비해 200% 가까이 노력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 속상해했던 내가 떠올랐다. 잠을 아껴가며 24시간 중에 22시간을 공부에 매달렸던 나. 온갖 효과 좋다는 공부법들을 다 적용해 봐도 오르지 않는 성적. 시험공부를 많이 해도 막상 시험지를 받아 들면 머리가 하얘지던 나. 수업시간에도 칠판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잡생각들로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나.. 그동안 이런 줄도 모르고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많은 채찍질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이불에 지도를 많이 그리던 아이.




“그러면 ADHD는 왜 생긴 거예요? 유전적인 건가요?”


“유전인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현재 추정할 수 있는 원인은 감정조절이 잘 안 된 불안정한 성장환경과 관련된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이야기하기에 부끄러운 이야기 일 수 있지만, 나는 화장실에 스스로 갈 수 있는 나이가 지나서도 이불에 지도를 많이 그렸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 자주 지도를 많이 그려서 엄마는 매번 이런 나의 이불빨래를 하기에 바빴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ADHD를 진단받고 나서 떠오른 이 에피소드가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나의 상담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이불에 소변을 보는 건 그 아이의 눈물과 같다고 보면 돼요. 아이들은 마음속에 있는 불안이 계속되면 낮에 못 흘린 눈물을 밤에 잠을 자면서 이불에 지도를 그린 다고 해요. 그만큼 이건 불안과 관계가 깊은 거죠.”



 앞선 글에서 다루었듯이 나는 어린 시절 엄마의 우울함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불안하고 슬프고 답답한 감정을 받아주고 안심시켜 줄 안식처를 엄마에게서 찾지 못했다. 가족들은 힘이 되어주지 못했고 나의 일거수일투족 지적하는 것은 물론, 지금껏 ADHD로 힘들었던 나를 향해 ‘이해력이 느리고 고지식한 아이’라며 낙인찍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속 시끄럽게 분산되어 있었을 나의 마음. 그 어린아이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지금에서야 정신분석 상과정을 거치며 긴 시간을 들여 그 감정들을 안아주고 있는데 어린 나에게는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힘들면 잠시 의지해도 괜찮아.

하지만 스스로도 충분히 이겨낼 힘이 있다는 거 잊지 마.




 사실 나도 간호사이지만 나 스스로가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ADHD를 진단받고 나서 그동안 남들보다 더 고생하며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을 나 자신을 보면서 더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만큼 온 것만으로도 너무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의력이 계속 분산되고 기억력이 짧아지는 이 사태를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것이 약이든 뭐든 잠시 의지하며 혼자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ADHD 약을 복용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1차 약을 복용했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흉부불편감이 생기는 부작용이 있어서 2차 약제로 변경했고 2차 약제가 효과가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용량에 다가서면 아무리 올려도 효과가 동일하거나 전보다 못했다. 그래서 2차 약제에 보조약제들까지 쓰는 방법을 택했지만 그조차도 증상이 눈에 띌 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약을 몇 달째 먹다 보니, 약에 의지하는 것이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고 내 마음에서도 약에만 너무 의존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상담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으세요.”


“네 비록 마음이 힘들지만 믿어보려고 노력해 볼게요.”


“믿어보는 게 아니라 정말 자신을 믿어주세요. 충분히 잠재력이 있어요.”


 

 그렇다. 나는 여러 차례 약을 바꿔가는 과정 중에서도 나 스스로가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나부터가 나를 믿어야 하는데 시작부터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결국 2차 약제에 보조약제를 조금씩 추가해서 쓰고 있었지만 그조차 효과를 보지 못했을 무렵, 나는 ADHD에는 1차 약제가 가장 효과가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부작용이 있던 약이지만 나 자신을 믿고 한 번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처음 1차 약제를 복용했을 당시 느꼈던 두근거림은 정신분석 상담 초기에 불안함이 극도에 달했을 때의 시기와 겹쳐서 더 심하게 느꼈다고 판단했고, 그로부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 불안이 어느 정도 다스려지고 스스로가 안정시킬 힘이 생겼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차 약제를 다시 시작하게 된 나는 다행히 이번에는 부작용을 느끼지 않았고 지금 현재에도 6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쓸 정도로 놀라운 집중력을 회복했다. 이제는 일을 하면서도 실수가 줄어들고 기억력도 이전만큼 회복이 되었다. 하던 일을 하는 도중에 다른 일이 끼어들어도 금방 다시 원래 하던 일로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게 내가 나 스스로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내 안에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그리고 그 잠재력은 앞으로도 더 펼쳐질 거라고. 비록 다큰 성인이 되어서야 내가 가지고 있던 오랜 고질병 ADHD를 발견하고 치료하게 되었지만 그 시간 속에 묶여있었던 어린아이는 이제 자신의 무궁한 가능성을 믿으며 성큼성큼 커 나갈 거라고. 앞으로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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