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배운 것
세 살 된 우리 아들은 무언가 잘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곤 한다. 그럴 때면, 짜증내지 말고 "도와주세요" 라고 얘기하라고 가르쳐줬다. 될 때까지 해보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아직 어린건지 찡찡거림과 "도와주세요"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어른에게도 참 어렵다. 말하지 않아도 도와주었으면 하는 기대는 결과에 따라 서운함으로 끝나기도 한다. 입을 열어 도와달라고 말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얼마 전 아내와 저녁을 먹다가 그동안 마음 속에 쌓아 놓았던 섭섭함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의 힘듦을 이해하기에 자발적으로 했던 집안일과 육아는 그것들을 고마워하지 않는 모습에 기분 좋은 배려에서 불만이 가득한 의무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사와 육아에 대한 업무분장은 별도로 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아내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건 이미 다 되어있음과 무언가를 하기 위해 마음을 내기에는 지쳐버린 하루의 피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인 배려는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억울함으로 돌아왔고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룩한 가사노동의 시급함에 대화보다는 행동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나서 먹는 저녁에 술을 한 잔 하게 되고, 아내의 회사생활 스트레스를 추가 반찬으로 밥을 먹던 중에 나는 이러한 섭섭함을 이야기했다. 왜 내가 다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나는 허리가 아파서 복대를 차고 생활하면서도 이렇게 하고 있다. 왜 설거지를 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지 않느냐.. 누가 들으면 직장에서 돌아와 남편 도움 없이 가정을 혼자서만 돌보는 워킹맘의 하소연으로 들릴 만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긴 시간 이어지는 나의 섭섭사례모음에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결론은 그런거였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생각해줘... 다소 격해진 감정에 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고 아내는 말없이 뒷정리를 했다. 긴 포옹으로 그날의 뜨거운 호소는 마무리되었고, 다음날부터 아내는 8-90년대 아버지에서 오늘의 젊은 세대 배우자로 돌아왔다.
어찌 보면, 내가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했는지도 모른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희생을 감내한다. 불만이 쌓인다. 억울함이 쌓인다. 그러다 한번씩 터져나온다. 내가 나를, 또 아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도 힘들어. 도와줘.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야 알 수 있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참 어렵다 그 말 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