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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민 Jul 26. 2022

좌뇌형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씨에게 고소당할, 그러나 내가 유명하지 않아 다행인 제목

어렸을 때 왼손잡이인 동생이 멋져 보여서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연습을 한 적이 있다. 엉뚱한 도전을 많이 했던 어린날의 기억들 중 하나다. 동네 돌아다니면서 빈 병 팔아서 돈 벌어보기, 방에 있는 인형이 언젠가 움직이지 않을까 하고 관찰하기 등등... 물론 그러다가 아이들 특유의 산만함 때문인지 잊혀버린 챌린지가 되었다. 동생은 교정당하지 않고 왼손잡이로서 생존했다. 양손잡이에 가깝긴 하다. 탁구는 오른손으로 쳤던 것으로 기억하므로. 반면 나는 오른손'만' 발달한 인간으로 자랐다. 그러니까 현재 오른손, 그중에서도 검지가 또각 부러진 상태는 나에게는 더없이 당황스럽다고 할 수 있다. 머쓱하게도 쓸모없다고 구박받던 왼손이 많은 일을 해내 주고 있다.


그러나 왼손이 조금 모자란 친구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명령어가 제대로 입력이 되지 않는 모양인지 전혀 다른 결괏값이 도출된다. 예를 들어서 내 옷매무새를 정리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옆에 가까이 붙어있던 친구의 옷을 매만지고 있어서 친구가 뭐하냐고 물어본다던지, 커피를 마셔야지 했는데 잔을 놓쳐서 다 흘린다던지... 만 네 살 정도의 아이의 손으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멀쩡히 있는 왼손을 방치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손은 농구를 하다가 부러졌다. 멍하니 캠퍼스에 앉아서 아 이제 정말로 농구를 그만할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찔끔 눈물이 났다. 단순히 삐끗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상 알았다. 그렇게 불길한 뚜둑 소리가 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분리 골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한숨을 넘어선 탄식이 나왔다. 손을 쓰는 직업인데 왜 농구를 해서 이 사달을 만드냐는 의사 선생님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앞으로 테니스를 쳐야겠다는 생각이나 했다. 내 20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농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다음이 있어야 위안이 되니까. 


그러다가 지인이 해 준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오른손을 다쳤을 때야 말로 실력이 향상되었던 시기로 꼽는다'는 말이.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참에 진짜일지 궁금해서 구글에 '오른손 부상 실력 향상'이라는 검색어를 쳤다. 


"AP통신에 따르면 해링턴은 제137회 브리티시오픈이 개막되기 직전 토요일인 12일 콩 자루(Bean-Bag)를 때리며 스윙 연습을 하다가 오른 손목을 다쳤다.... 하지만 그는 다른 선수들이 강풍 속에서 40타 이상을 치며 속절없이 무너졌던 브리티시오픈 최종일 후반 9홀에서 보기 없이 4언더파 32타를 쳐 결국 역전승했다.... 비결은 또 다른 연습 법, ‘한 손으로만 샷 하기’에 있었다. 오른손만으로 또는 왼손만으로 채를 잡고 스윙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해링턴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두 손으로 그립 할 때보다 어느 쪽이든 한 손으로만 칠 때 볼을 더 멀리 날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신체의 오른쪽과 왼쪽 측면을 구분해서 발달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오른 손목을 다치고도 브리티시오픈 2연패를 이룬 것은 왼손만으로도 충분히 제 실력을 다 낼 수 있는 해링턴의 숨은 재주가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HQAY6EMO0


"... 인천의 인성여고를 졸업하고 2019 여자 프로농구(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1라운드 2순위로 프로무대에 첫발을 디딘 부산 BNK 썸의 가드 이소희(171cm)는 공격력이 뛰어난 가드로 평가받았지만 지난 시즌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미완의 대기’에 머물렀다. 하지만 비시즌 장기인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속공으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슈팅 핸드를 바꾸는 승부수를 띄운 끝에 동료 안혜지와 함께 리그 최고의 가드로 눈도장을 찍는 중이다.


26일 부산은행 연수원 내 BNK 전용 훈련장에서 만난 이소희는 지난 시즌을 두고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기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출처: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600&key=20201027.22018007206


물론 이소희 선수는 현재 다시 오른손으로 슈팅 폼을 바꿨다. 그래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정확성을 얻었다고 인터뷰 한 바가 있다. 마음이 잔잔해져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었다. 당장은 오른손을 쉬게 해야 해서 무리하게 운동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것도 타이밍 좋은 위로가 됐다. 내가 애정 하는 사람이 추천해서 읽은 책이었는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이보다 도움이 되는 책은 없었을 것 같다. 오랜 기간 슬픔과 혼돈 속에 있던 작가가 결국 인생은 불확실성에 의해 예기 치도 못한,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적어 내려갈 때 조금은 울었다. 근래 손이 부러진 것 이외에도 공개적으로 적기 힘든 일들이 몇 가지 더 일어났었기 때문이었다. 온실 같은 대학교에서 도합 7년을 보낸 탓일까,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은 꽤나 버겁게 다가왔다. 나름 그 안에서도 별 일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바다에 나가기 전에 캐리비안 베이 파도풀장에서 물장구 연습을 한 격이었다. (근데 나는 원래 눈물이 많긴 하다) 


다시 내 왼손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내가 '좌뇌형 인간'이라 왼손을 잘 다루지 못하고 힘들어하는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힘든 일에 유독 감정적으로 잘 흔들리는 것도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뇌의 좌, 우반구는 서로 다른 영역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몸의 오른쪽, "감성" 그리고 직관 같은 것들은 좌반구가, 몸의 왼쪽과 "이성", 계산 능력 등은 우반구가 지배한다고. 그에 따라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사람은 좌뇌형 인간, 과학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우뇌형 인간이라고 분류를 해왔다. 당신은 직관적이고 언어 능력이 뛰어나지만 비교적 계산 능력이 떨어지니 우뇌를 발달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 하는 테스트들도 많고.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럼 계산을 잘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왼손잡이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하는 것 아닐까? 


다음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박한선의 동아 사이언스 투고 기사의 일부분이다. (출처 :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1431)


"사실 좌뇌와 우뇌의 기능 차이는 자동차의 좌측에 운전석이 달린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미국이 나한 국 등에서 운행되는 자동차는 대부분 좌측에 운전석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좌뇌형 자동차라고 하지 않죠. 그럼 호주나 영국의 자동차는 우뇌형 자동차일까요? 자동차의 좌우 차이는 자동차의 전후 차이, 즉 엔진실과 트렁크의 차이처럼 ‘기능적’인 고려에 불과합니다. 정수리에 위치한 두정엽은 감각과 운동 기능을 주로 담당합니다. 반면에 뒤통수에 위치한 후두엽은 시각 기능을 담당하죠. 그렇다고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두정엽형 인간이고, 사격 선수는 후두엽형 인간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좌우 반구의 기능적 차이가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을 나누는 기준이라면 대부분의 인류는 좌뇌형 인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죠. 자동차의 좌우에 앉는 사람들의 성별과 나이를 조사했다고 합시다. 아마 운전석에는 남성이 더 많이 앉고, 조수석에는 여성이 더 많이 앉을 것입니다. 직업적 운전사는 남성이 더 많이 때문이죠. 그러면 자동차의 좌측은 남성적, 우측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좌뇌 우뇌 신화에서는 이런 주장을 서슴없이 합니다. 우뇌는 여성의 뇌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뇌는 남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좌뇌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 인해서 전쟁과 환경오염, 경쟁 위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든 남자든 모두 오른손잡이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남녀 모두 좌측에 앉아야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인 기능 차이와 궁극적인 원인 차이를 혼동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


결국 좌뇌형 인간이라는 것은 없는 셈이다. 나는 그냥 오른손을 주로 써왔고 언어 활용을 좋아했으며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한국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문과형 학생이니, 이과적 머리가 없다느니 '분류'에 혈안이 되어있다. 거기에 인생을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내가 문과적인 뇌를 가지고 있어서 수학에 약할 거라고, 과학을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쉬는 시간마다 불러서 전과 권유를 했었다. 문과로 바꾸면 덜 힘들 거라고, 더 좋은 대학으로 갈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과에 악착같이 남은 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이과계열 학과라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근데 우습게도 메디컬 계열만큼 한국사회에서 '문과적'이라고 규정지은 특성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학과가 없다. 반대로 문과인 경제학과는 그렇게 '이과적'일 수가 없다. 결국 문과/이과라는 이분법적 분류는 틀렸다는 것을 알아챈 교육부가 통합형 인재를 길러내려고 입시제도를 또 바꾼 모양인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이전에 과외 학생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좌뇌 우뇌 신화라는 통속 심리학의 탄생에는 크게 세 가지 편견이 작용합니다.  

첫째 뇌 안에 있는 작은 인간에 대한 믿음입니다. 호문쿨루스 논쟁이라고 하는데, 두개골 안에 작은 인간 혹은 영혼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어서 신체의 움직임뿐 아니라 마음의 작동도 총지휘한다는 것이죠. (이하 생략) 


둘째 뇌의 전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걱정입니다. 좌뇌형 인간은 우뇌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우뇌형 인간은 반대로 좌뇌를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뇌는 에너지를 아주 많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무려 전체 에너지의 20%를 뇌가 씁니다. 진화는 좌뇌, 혹은 우뇌를 헛되이 놀리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뇌는 늘 ‘좌우 구분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적 편견입니다. 이성은 주로 판단, 기계, 수학, 동물, 인공, 남성, 문명, 전쟁 등의 개념과 이어지고, 감성은 공감, 문학, 식물, 음악, 자연, 여성, 원시, 평화 등의 개념과 이어집니다. 이러한 범주적 분류 경향은 인류의 인지적 특성인데, 사회문화적으로는 아주 유용한 분류 체계일지 몰라도 그다지 과학적이지는 않죠."


'물고기'라는 종은 없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는 것은 다소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물고기는 없다'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규정 혹은 정의된 범위에서 벗어나도 나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물고기라는 뭉뚝한 범위로 묶여버린 존재들이 각각 경이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어류에서 벗어나게 된 것처럼, 기존의 분류법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좋아..?)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 뒤처진 느낌이 들어도,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성공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게 새로운 행복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 좌우명처럼, 넘어질 때는 뭐라도 줍고 일어나 계속 걸으면 된다. (당분간은 왼손으로 주워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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