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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민 Nov 06. 2021

아 자퇴 할래요 그냥

나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 (2) 입학부터 자퇴 고민까지


한의사 대충 의사랑 비슷한 거 아닌가?



드라마만큼 의사에 대한 환상도를 높여줄 수 있는 매체가 있나 싶다. 중학교 3학년 연두민은 미국 메디컬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며칠 동안 밤새워 보고 난 뒤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의사들의 외모가 매력적인 건 둘째치고 그들 손에 환자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꽤나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일반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긴 전문용어를 쓰는 것도 간지가 나 보였다. 폼생폼사, 어른이 되면 나도 남들에게 그렇게 비치길 바랐다. 그런데 웬걸, 재수 성적표 뚜껑을 열어보니 대뜸 mbc 대하드라마 허준 혹은 대장금이 내 현실이 됐다. 처음엔 실감을 못했다. 한의대도 6년 과정이고, 면허가 나오고, 대충 의사라는 호칭이 뒤에 붙어있으니까 비슷하겠거니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의사는 '대충 의사류'의 직업이 아니다. 마치 치과의사가 의사와 다른 것처럼. 덜하거나 더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직업이다.




불행하게도 그걸 깨달았을 때는 예과 2학년이 되던 해였다.



예과 때는 한의학을 찍먹 할 수 있게 해 준다. 한의학 용어를 읽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한자 공부도 곁들여주고, 기초 과학도 좀 뿌려서 먹어보라고 준다. 근데 그 맛이 정말 미묘하다. 호불호가 갈려 버린다. 마치 처음 고수를 먹었을 때 같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나는 깜짝 놀랄 정도로 불호였다. (고수는 좋아한다) 기초과학 과목을 배울 때는 자부심이 올라오다가도 기, 혈, 오행... 이런 개념들을 들을 땐 마치 사이비 종교 같다고 느껴졌다. 나는 의학을 배우러 온 것인데 왜 믿음을 가져야 버틸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지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 뜬구름 없는 얘기를 받아들이고 외우고 시험 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당시에 공부했던 한문해석 지문



그래서 자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갑자기요?) 한의대를 들어오기 전에도 멀쩡히, 아니 사실 열렬히 즐겁게, 다니던 대학을 돌연 자퇴한 경험이 있는 나였다. 물론 그 때는 21살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걸릴 것이 없었다. 어렸을 적 꿈인 의사가 되어보겠다는 명확한, 그리고 당시 애인보다 좋은 학교에 가버리겠다는 이상한, 다짐이 있었기에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려운 게 아니겠지 싶었다.



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한의사에 대한 비방글들도 자퇴 결정에 한몫을 했다. 한의사를 비하하는 말 중에 한무당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의학이 샤머니즘과 별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지금은, 남의 직업에 대한 비방은 오히려 본인을 깎아먹음을 알고 있고 현대 한의학을 전혀 모르고 하는 무식한 소리라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에 그 말을 우습게 여긴다. 하지만 입학 직후에는 그 단어가 그리도 머릿속에서 맴돌았었다.



그래서일까,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즈음에 마치 신병을 앓듯이 건강이 망가졌다. 처음에는 또 피부가 조금 안 좋아졌구나 -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목에서는 진물이 나고 두피는 각질처럼 자꾸 떨어져 나왔다. 배와 엉덩이에는 두드러기가 올라왔다가 사라지면서 상흔을 남겼다. 눈 위는 항상 빨갛게 부어있었고 인중은 건조해지고 갈라져서 따가웠다.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와 이불을 자주 세탁해야 했다. 밤새 긁어서 생긴 핏자국과 딱지 때문이었다. 아무리 더워도 반팔 반바지를 입을 수가 없었다. 종아리와 팔에도 잔뜩 구진이 올라와서 누가 쳐다보고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우울감과 대인기피증이 따라왔다. 사람 눈을 쳐다보기가 어려웠던 게 시작이었다.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고 있으면 언제 저 사람이 내 빨간 눈가와 인중에 대해서 물어볼까 노심초사했다. 피부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일일이 해명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난 이제 비(非) 건강인들에게 먼저 어디가 왜 아픈지 물어보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삶의 낙이고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나는 그렇게 매일 밤 아프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가만히 푸르스름하게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며 정말 내가 운명을 거스르려고 해서 신병(神病)을 앓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맨날 빨개져있었다. 이 날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 외출 감행ㅋ


당연히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내가 겪었던 병은 현재까지도 그저 면역계 문제라고 뭉뚱그려 알려져 있을 정도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기숙사에 살던 때라, 침구류에서 나온 벌레나 항원으로 인한 접촉성 알러지 일 수도, 아니면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잠시 잠복해 있던 병이 다시 발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치료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지 않으려고 한다. 자칫하면 특정 치료 방법에 대한 간증 글이 될 수 있고, 그건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2년이 걸려서야 피부 상태가 많이 나아졌고, 지금은 호전과 악화를 좀 더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습관을 알게 되었다- 까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 좀 자퇴하게 내버려두세요! 외쳤던 나날들이었다. 이후에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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