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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민 Nov 09. 2021

리틀 포레스트인데, 이제 스트레스를 곁들인...

나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3) - 아 자퇴 타이밍 놓쳤네


망했다고 느껴질 땐 끼니부터 잘 먹자



악화된 건강 때문에 일단 자퇴는 미루고 기숙사만 뛰쳐나왔다. 자퇴라는 선택지를 떠올린 것은 여름이 지나서였다. 수능을 공부하기에도 늦은 시기였고 원서접수도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게 보는 시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1년 반 뒤의 수능을 기약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본가에 가는 것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었다. 피부를 악화시키는 모든 요인들을 피해야 했다.


대안으로, 당장 컨트롤할 수 있는 거주 환경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기숙사에서는 피부가 직접 닿는 가구도, 몸 안에 들어가는 음식도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심지어 통금은 열두 시였고 본가에 갈 때도 외박 신청을 매번 해야 했다. 너무 귀찮아.) 자기 통제권이 상실되었다고 느꼈고 건강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 싼 기숙사비를 포기하기는 아쉬웠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본과 1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집을 보러 다니고, 벽지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계약을 했다.




장담할 수 있다. 자취는 20대 대부분의 고민을 해결해준다.




심지어 그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의 조용한 자취라면 더욱. 그래서 나는 모종의 이유로 심란할 때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2018)를 보곤 한다. 시골 자취생 영화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축약했는데, 주인공 혜원의 앞날에 대한 고민, 엄마와 딸의 관계… 여러 가지를 따뜻하게 그려내는 영화다. 혜원이 임용고시 시험에 떨어지게 되어 고향으로 돌연 내려와 혼자를 돌보는 모습이, 그 돌보는 방식도 끼니를 혼자 열심히 뚝딱뚝딱 만들어먹는다는 점이 나를 위로해주곤 한다. (알고 보니 그 영화에 나오는 매 끼니가 비건이라는 점도 감동이었다. 하지만 내가 비거니즘을 실천하게 되는 것은 훗날의 일이다) 일부러 혜원을 닮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실패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보다는 단순히 매 끼니를 잘 해 먹고 조용하게 하루를 살아내기에 집중했다. 앞으로 자퇴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게 스스로 토닥이는 방식이었다. 아침에 바쁘더라도 사과 하나 꺼내먹기, 점심시간이 한 시간뿐이더라도 직접 파스타 후다닥 해 먹고 설거지까지 하기, 저녁에는 가볍게 산책 후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요리한 따뜻한 한 끼 먹기.



그렇게 정신과 몸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호되게 겪은 진로 고민에 비해서는 다소 시시한 결말인 것 같기도 하다. 되려 그렇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몸을 돌보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켜켜이 쌓였기 때문에 확실하고 탄탄하게 나를 재건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혼자만의 시간에 조용히 앉아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정성껏 밥을 해 먹고 집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려마시는 모든 행위들이 '나'가 되었다.


무엇보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자 다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가 편해졌다. 요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보통은 공강 시간에 간식이나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동기들과 친구들을 꼬드겼다. 이상하게도 내 구역 내에서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할지 긴장이 되지 않았다. 친한 사람들이 놀러 와서 편안하게 쉬다 가는 모습이 뿌듯했다. 그러다가 정기적인 금요일 점심 모임까지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가장 바빴던 본과 1학년인 내가 요리를 하고 한가한 본과 4학년 선배가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지금도 친언니처럼 지내는 사람이라 그때를 회상하면 웃기다고 깔깔거리는데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굉장히 고맙다. 덕분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덜 불편해진 것을 둘째 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이 나에겐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인기피증도 서서히 나아졌다. (이때 용기를 내서 여성 농구 동호회에도 나갔다. 이 얘기는 따로 글을 쓸 예정이다)



또 타이밍 좋게 본과로 넘어가면서 한의학 대충 찍어 먹기가 끝나고 상한론이나 본초학 같은 본격적인 한의학 과목과 해부학, 조직학 등의 심화과목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기대한 의학 공부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학교 공부에 대한 회의감도 흐려졌다. 생각보다 공부하는 것이 괴롭지 않았고 새로 산 아이패드로 열심히 필기하고 복습하는 것이 재밌다고까지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열정은 어디 갔는지…) 2년간의 버티기가 끝을 보인 셈이다. 물론 본과가 시작되면서 밤 열두 시 넘어 진행되는 해부학 실습과 릴레이처럼 매일 보는 자잘한 시험들, 성적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지긴 했다. 포름 알데히드 냄새에 코가 마비된 상태로 밤 아홉시에 냅다 밥 먹으러 갔다 복귀하고, 새벽 한 시에 실습이 끝난 직후에 그다음 날 아침에 볼 시험공부를 해야 했던 날들이었다. 리틀 포레스트인데.. 근데 이제 스트레스를 곁들인...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혜원은 치유 끝에 결국 다시 도시로 향한다. 내가 향하는 곳은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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