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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민 Nov 11. 2021

D-65

첫눈이 내려버렸네


국시까지 65일 남았다.


첫눈 올 때 책 펴면 된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오늘 첫눈이 내리고야 말았다. 등교하는 길에 눈을 맞으면서 허탈하게 허허 웃었다.


한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은 90퍼센트 대로 알려져 있다. 의료인 국가고시의 합격률은 거의 다 그렇다. 사실상 6년간의 거름망을 통과한 사람들이 보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다들 국가고시 하나만 바라보고 절실하게 공부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선배들 말로는 시험장에서 교수님들이 시험 보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통과 축하한다는 케이크 들고 기다린다고 했는데; (앗 국가기밀을 누설했군)


그래서 더 무섭다. 동기들은 다 붙었는데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는 상상을 하면 꽤 비참한 것 같다. 의외로 그 비참함은 불합격자를 주저앉게 하는지, 한번 떨어지면 영영 못 붙는다는 말이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몇 년째 시험 보고 있다는 익명의 선배 이야기들은 망령처럼 돌아다닌다. 그럴 일이 없도록 묵묵히 공부하면 되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불안감은 불시에 찾아온다. 한의대생 커뮤니티에 가보면 다들 OMR 밀려 써서 떨어지는 꿈, 갑자기 2학기에 유급해서 시험 자체를 응시 못하는 꿈, 시험지 받고 머리가 새하얘지는 꿈... 다양하게 악몽을 꾸고 있다. 다들 의외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싶어서 이상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아까 6년간의 거름망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그 거름망에 대롱대롱 매달린 적이 몇 번 있다. 한의과대학에는 유급 제도가 있다. 한 과목이라도 (교양일지라도) F를 받거나, 전체 평점이 2.0을 넘지 못하면 해당 학기가 무효가 되고, 커리큘럼상 문제로 그다음 해에 재수강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1년이라는 시간도, 한 학기 등록금도 날리게 된다. 엥? 그걸 왜 못 넘겨?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평가 과목들은 만만치 않고, 두 과목 이상 D를 받으면 위태롭다. 그래서 매해 40명 중 1-2명은 꾸준히 유급을 당한다. 한 해에는 대거 5~6명 정도 유급생이 발생한 적도 있다. 생각보다 정신줄을 붙들고 있어야 통과할 수 있다.


나는 두어 번 정도 그 경계에 서 봤다. 아직도 생각난다, 본과 2학년 방제학 시험과 생화학 시험.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중간고사를 날려먹고 기말에 모든 것을 걸었던 1학기였다. 총 평균 60점을 넘겨야 했는데 중간고사에 고작 30점대를 받았나? 그래서 기말시험에서 80%를 넘겨야 무사히 방학을 지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밤을 꼴딱 새워서 필사적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동기를 앉혀놓고 칠판에 쓰면서 설명하고 말도 안 되는 말야마 만들고... (동기야 고맙다) 졸음 조차도 오지 않았던 절실함이었다. 그러다가 토했다. 아니, 진짜로 헛구역질이 좀 나오더니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결국 숙취 있는 사람처럼... 여기까지 하겠다.  (한의학적으로 이걸 음허라고 하는데... 어쩌고) 그리고 본과 3학년에는 부인과 시험 전 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던진 것이 재시험이라는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친한 선배한테 물어보니 본과 3학년에 누가 재시험을 보냐고... 되물음도 같이 아프게 돌아왔고. 그래도 어떻게 그나마 장점이라고 있는 체력으로 잘 넘겨왔다.

 

아마 선배네 집에 붙잡혀서 시험공부하던 때. 역시나 고맙군



요즘엔 온몸이 뒤틀려도 책상 앞에 3~4시간 정도는 앉아서 끄적끄적 공부를 한다. 오전에는 CPX 실습을 하고 와서 다소 멍하게 앉아있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에 학교에 돌아가서 CPX 시험을 친다. 그러면 대충 4~5시가 된다. 요즘은 해가 빨리 져서 하루가 다 끝나버린 기분이 든다. 공부를 막상 시작하면 뿌듯하고 괜찮은데 시작하기까지가 힘들다. 엄청난 최대 정지 마찰력.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그냥 이런 마인드로 한다. 졸시라는 급한 불부터 꺼야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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