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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비 Apr 26. 2023

미국에서 집밥 먹는 일상_다섯 번째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새벽 5시 30분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암막커튼 틈새로 날이 밝아오는 빛이 이미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잠을 더 청했을 텐데

어쩐지 개운한 기분에 그대로 일어나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오랜만에 새벽 성경묵상 시간을 가졌다. 

남편이 잠을 깨지 않도록 휴대전화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성경을 읽었다.

마치 호롱불을 켜놓은 것 같은 모습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러야 했다. 

허기를 느껴 전날 썰어놓은 사과를 천천히 먹으면서 오늘 말씀을 음미해 본다. 


어느덧 새벽이 가고 아침이 왔다.

오늘 남편은 집에서 업무를 보다가 점심 이후 밖에서 일을 보고 올 예정이었다. 

어제 해야 할 일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잠이 든 남편을 조심스레 깨웠다.  

비몽사몽 한 남편은 욕실로 향하고 나는 창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를 쐐어본다. 



우리집 12층 스튜디오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

처음 이사왔을 때 둘이 창가에 서서 느꼈던 황홀감을 기억한다. 

이제는 어느덧 감흥이 사라진 익숙한 전망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봄의 생동감이 담긴 아침이다. 




남편은 11시에 집을 나서야 했기에 

우리는 조금 이른 점심을 먹었다. 


어제 사온 시금치를 활용하여 

간단히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를 만들었다. 


2023/04/25 점심_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오랜만에 파스타가 먹고 싶었던 나는 파마산 치즈를 뿌려가며 

부지런히 로티니면을 입으로 가져갔지만,

남편은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다며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내게 맛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페스토 파스타는 그의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은 토마토나 크림 파스타는 부담 없이 먹는 편이지만,

오일 또는 페스토 파스타는 제 돈 주고 사 먹을 사람이 아니다. 

혹시나 해서 시도해 봤지만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래도 나는 맛있게 먹었으니 만족했다.


남편은 집을 나서고 두세 시간 내로 다시 집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푹 쉬기로 했다.

임신 21주 차에 접어들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쑤신다고(?) 해야 할까... 전신에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일찌감치 돌아온 남편과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온 후 

아파트 일층 데스크에 아시안 마켓에서 주문한 택배상자 몇 개가 도착해 있었다.

최근 군것질을 좋아하는 우리는 한국 과자 몇 개를 다른 먹거리들과 함께 주문했다.


집에 들어선 후 우리는 지친 몸을 아이스커피와 함께 택배상자에서 막 꺼낸 미니약과로 달래주었다.


남편은 저녁 5시 30분에 바버샵에서 머리를 자르기로 되어있어

점심과 마찬가지로 저녁 역시 다소 이른 시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2023/04/25 저녁_ 잡곡밥/ 된장국/ 제육볶음/ 감자조림/ 토마토 올리브 샐러드/ 김/ 상추 


지난번 사 온 돼지고기 목살은 비게가 다소 많지만 

진한 양념으로 제육볶음을 하기에는 적합했다.

 

평소 식사할 때 음악을 틀어놓는데

오늘은 둘 다 너무 배가 고팠던 탓일까,

음악도 대화도 없는 정적 속에서 서로 정신없이 먹기 바빴다. 


연신 서로 맛있다며 계속해서 고기쌈을 입안 가득 싸 먹었다.

제육볶음이 이렇게 맛있을 일긴가.

미국에서 먹는 한국 음식은 뭐가 되었든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니 하루 동안의 피로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버샵에서 돌아온 남편은

머리가 너무 짧다며

연신 거울 앞에서 뒤통수를 만져본다. 


남편이 평소 다니는 곳은 

중국인 미용사가 운영하는 미용실이다.

그분이 중국으로 휴가를 떠난 터라 

이번에는 급하게 찾아본 바버샵으로 다녀온 것이다.

원래 다니던 곳보다 10불이나 저렴하기도 했다.


오늘 다녀온 바버샵은 '압델'이라는 아랍인 이발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손님 대부분이 아랍인이었고 

남편이 유일한 아시안이었다고 한다.

조심성 많은 남편답지 않은 선택이라 의아했다.

미국에 온 후로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털털해진(?) 그가 어쩐지 새롭게 느껴진다. 


평소 남편 스타일에 비해 정수리와 튓머리가 다소 꺼칠꺼칠 거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옛날) 고등학생 같달까.


계속 보다 보니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늦은 밤까지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남편.

오늘은 나도 그 옆에 자리를 펴고 앉아본다. 


편리하게 듀얼 모니터가 설치된 책상보다

식탁에 앉아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뭐랄까. 

음악을 틀어놓고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을 내어보는 것이다. 


남편은 미팅자료를 만들고

그 옆에서 나는 여유를 부리며 이런저런 글을 써본다. 


어느덧 12시가 넘어가자

먼저 잠자리로 향하는 남편.


요즘 점점 자는 시간이 늦어지기에

나 역시 오늘은 미련 없이 노트북을 닫는다. 


둘 다 '에고고' 하면서 눕는다.

피로감이 가득하다. 


우리는 누운 상태로 함께 기도를 하고 

바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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