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비 Apr 28. 2023

나는 어느 때나 나를 사랑할 수 있나

수요일

7시에 울린 남편 휴대전화의 알람소리에

나 역시 눈을 떴지만,

쉽사리 일어나 지지 않았다.

온몸이 무겁다.


평소였다면 함께 몸을 일으켜

간단한 아침식사와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했을 테지만

오늘은 계속 침대에 머물고 싶었다.

침대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남편은 더 자라는 말과 함께  내 몸 위로 다시 이불을 덮어준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은 잠을 조금 더 청하기로 했다.

출근할 준비를 마친 남편은 침대로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곧이어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들린다.


잠을 더 자면 두통이 올 것 같아

9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 상쾌하지 만은 않은 아침...


모든 일상의 순간들이

내 바람처럼 아름답고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연구원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대학원 공부와 일을 쉬고 있는 나,

그런 나는 때때로 부지런하게 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못마땅하다.

가령 오늘처럼 그저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은 정말이지 참기 힘들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성경을 꺼내 오늘자 말씀을 펼친다.




What a wretched man I am!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that is subject to death?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Thanks be to God, who delivers m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What a wretched man I am!

사도바울의 탄식이 마치 내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어제의 나는 부단히 노력했지만,

오늘의 나는 또다시 나의 연약함에 봉착하고야 만다.

그런 나는 곤고하다.

몹시도 곤고하다.


 "... delivers m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그런 나를 신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무런 대가 없이 구원하신다.


그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 오늘.

그렇지만 믿어야 한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을 때,

스스로가 가장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사랑할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은혜'를 알게 된다.


어떤 석연치 않음을 남겨둔 채

허기를 느껴 간단히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쉽진 않지만 나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먹는다.



베이글 한쪽에는 크림치즈와 베이글잼, 다른 한쪽에는 시금치 페스토를 곁들였다.  

그리고 각성효과를 위해 룽고 커피를 마신다.


임신 중기라 그런지 계속 허리가 아프다.

불필요한 잡념으로 마음도 지치는 하루다.


오후가 되어 점심식사를 마친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항상 점심을 먹고 난 후 전화를 건다.


내가 괜찮은지 걱정해 주는 남편,

그리고 연구실에 새로 온 일본인 동료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녁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나가서 먹거나 시켜 먹자는 제안을 해준다.


어쩐지 버겁게 느껴지는 오늘,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우리는 저녁으로 집에서 베트남 음식을 주문해 먹었다.

나는 쌀국수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따뜻하고 달짝한 국물이 속을 가득 채워주었다.


포만감으로 나른해져 소파에 기대 있는 나,

그런 나를 보며 미소 짓는 남편.

남편의 사랑이 느껴졌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도,

남편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업주부가 되어 '나'를 찾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