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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Mar 16. 2023

지름길이 옳은 길이라는 착각

빨리빨리 공화국의 문제해결법

우리가 빨리빨리의 민족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불편함을 그냥 두지 못하고, 느린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안 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우리의 본능은 우리 스스로를 빠른 속도로 단련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숱한 부작용과 치명적인 사고를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빨리빨리’가 지배하는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논란이 불거진 몇 가지 이슈를 보자.


[강제징용 피해배상금 한국기업 대납안]이라는 기상천외한 해법이 발표된 데에는 껄끄러운 문제를 ‘빨리’ 매듭짓고 넘어가고 싶은 정부의 본심이 담겨 있다. 정부의 발표처럼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졸속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답이 아니었을까. 3월 16일 있을 한일정상회담을 위해 정부는 국익과 실리라는 미명하에 피해자의 회복과 국민의 감정은 ‘빠르게’ 무시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을까.


또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역시 발표되자마자 거센 반발로 재검토 중이라 한다. 주 최대 52시간제 이전에 주 68시간까지 근무 가능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개편안이 얼마나 시대역행적인지 파악 가능하다. 이전 정부의 흔적을 지우고 경영계의 애로사항을 ‘재빨리’ 반영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보인다. 논란이 일자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가상근무표를 보면 애초에 실제 노동환경에 대한 고려도 없었고, 해명에서조차 현장을 반영하지 않은 채 급하게 내놓은 개편안임을 깨닫는다. 


<출처>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페이스북

*2023년에 주 6일 근무를 전제로 연장근로를 마치 규격화된 근로시간인 것처럼 처리했다. 주 5일, 40시간이 기본 근로시간이다.


작년의 이태원 참사에서는 어떠했나. 아니 기존의 숱한 대형 참사에서도 정부는 ‘잽싸게’ 상황을 수습하는 데 힘썼지 근본적인 해결에 집중하지 않았다. 정부는 시민의 편의를 이유로 ‘빨리’ 현장을 정리해서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언론은 한 달만 지나도 왜 아직도 그 일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느냐며 피해자와 유족을 떼쓰는 것처럼 몰아간다. 우리는 꽤 자주 어떤 사건사고의 원인과 결과, 그 후의 해결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차분하게 살펴보고 짚어보기보다는 빠르게 몰입했다가 더 빠르게 돌아서버린다.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유독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에 민감하다. 한국인은 생애주기의 전 과정 동안 타인과의 속도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가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늦으면, 학원이든 과외든 해서 속도를 맞춰놓는다. 아이가 배우는 일에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 문제다.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이미 패배자가 된 것처럼 처진다. 남들이 할 때 하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취업하고 몇 년쯤 지나면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출산과 육아, 노후준비와 자산증식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속도가 빨라지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름길을 찾는 데 집중한 나머지 그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인지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살아간다. 지름길의 목적은 분명하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것. 그 길이 충분히 안전한지, 풍경이 좋은지 등의 사항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시간과 거리를 단축한 것만으로 지름길의 사명은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은 빠르게 해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결국 깨닫게 될까. 천천히 살펴보고,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 결국 그것이 최적의 경로였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지름길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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