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도 Mar 30. 2023

사장님, 문제는 커피믹스가 아니랍니다

인색한 회사의 예정된 결말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직장 거지배틀'이라는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누리꾼이 자신의 회사는 커피믹스를 마실 때마다 이름을 적어야 한다며 직장 거지배틀을 제안한 것이 그 시작이다. 심지어 손님이 오면 사장이 장부에 적고 수량을 맞춰본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이에 질세라 각양각색의 웃픈 증언이 이어졌다.


'수정테이프 다 쓰면 다 쓴 거 보여주고 리필 받음'
'책상은 3갠데 사원은 4명이라 책상 중간 파티션 다 빼고 의자만 추가해서 사용하는 중'
'종이컵에 이름 적고 퇴근 때까지 써야 함'
'오전에 불 끄고 일함'
'프로그램 정품 안 씀'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자는 차원에서 절약을 하는 것과 필요한 것조차 쓰지 않으려는 인색함은 다르다. 게다가 그 인색함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야기한다.


위의 사례에서 커피믹스 수량을 관리하기 위해 매번 이름을 적고, 개수를 세어보는 건 절약되는 금액에 비해 낭비되는 시간과 비용이 더 크다. 그걸 쓰면서 즐거운 직원은 없을 테고 쓸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며 사기가 떨어질 테니 업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정테이프도 마찬가지다. 종이컵은 환경 문제도 있으니 개인 텀블러를 지급하여 사용을 권장하고 손님 올 때만 쓰는 방법도 있다. 전기요금을 아끼려면 오전에 불 끄지 말고 LED 조명으로 바꾸면 된다. 소규모 회사의 경우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직원들에게 매우 잘해줘야 할 것이다. 신고하면 벌금이 훨씬 많이 나올 수 있다.(불법복제물 신고 : www.copy112.or.kr)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받은 사례는 책상은 3개인데 사원 4명이 의자만 추가해서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직원을 채용하면서 책상조차 마련해놓지 않은 것은 인색함을 넘어 모욕적인 처사다. 이런 회사에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직원이 자주 바뀌면 채용과 인수인계 과정에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게 되고 이는 회사에 좋은 영향은 아니다. 물론 어떤 사장님은 직원이 끈기가 없다고 생각하며 어차피 금방 그만둘 텐데 새로운 책상은 낭비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배틀에서 정작 빠진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임금’과 ‘보상’ 문제다.


적정한 임금과 합당한 보상이 있었다면 위의 사례들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임금이 쭉쭉 오르고 보너스가 팍팍 나오는데 커피믹스 장부에 이름 좀 쓰고, 종이컵에 이름 좀 쓰면 어떤가? 저 배틀의 이면에는 빠듯한 임금과 미미한 보상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는데 저런 일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좌절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모든 회사가 대기업만큼의 임금과 보상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인색한 회사들은 회사가 잘 될 때도 힘들 때도 항상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며 보상을 미룬다. 상장회사가 아니라서 직원들이 재무제표를 바로 확인할 수 없더라도 업무의 최전선에서 일했던 이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올해 회사가 작년보다 매출과 이익이 어느 정도로 늘었고, 얼마만큼의 보상이 가능한지. 


그러나 인색한 회사들은 어떻게든 직원들에게 보상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낸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경영상의 이유’로 임금을 동결하고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역대급 실적을 쌓은 해에는 내년도 ‘경영상의 불확실성’을 핑계로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고 실망스러운 수준의 상여금을 지급한다. 


여기서 직원들을 더 좌절하게 하는 것은 그 ‘인색함’이 직원에게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는 어렵다면서 사장의 차는 더욱 좋아지고, 직원들은 빼고 임원들끼리만 성과급을 나눈 것이 목격된다. 직원들의 업무비용은 10원짜리까지 소명하게 하면서 사장과 임원들은 몇백만 원씩 술값을 쓰면서 접대비에 올린다. 실제로 클라이언트 없이 자신들의 친목 자리였음에도 말이다. 이런 일들이 직원들의 눈과 귀로 접수되는 일이 많아질수록 직원들은 회사에 등을 돌린다.




인색한 회사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결국 직원들은 제대로 된 임금과 보상을 주는 곳으로 떠날 것이다. 만일 그곳이 그래도 업계에서는 괜찮은 명성을 가진 곳이라면 그런 현상이 시작되더라도 대표는 그것을 상당히 늦게 알아차릴 것이다. 직원들이 그 회사를 일종의 경력 도움닫기대로 활용하면서 1,2년간 경력만 쌓고 더 나은 회사로 떠나버려도 당분간은 경력 도움닫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계속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탈 현상이 계속되면 회사의 허리가 사라진다. 한창 업무효율이 좋은 대리, 과장급이 더 좋은 처우를 향해 떠나버린 후 새로 온 대리, 과장급도 경력만 쌓고 곧 떠난다. 당장 경력이 없어 나갈 수 없는 사원들에게 인수인계가 몰리고, 과부하가 주어진다. 이들도 경력이 채워지는 대로 곧 나가버린다. 새로 온 사람들로만 가득해질수록 업무가 삐그덕 대기 시작한다. 이제 예전 같은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대리, 과장급은 더 이상 구하기 힘들어지고 회사에는 멋 모르고 입사한 사원과 부장급, 임원급만 남게 된다. 


그 회사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이제 끝이다.


회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대표 한 사람이 아니라 그 회사에 시간과 재능을 투자한 직원들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기나 하면 다행이다. 이런 경우 사장은 어려운 상황에 나가버린 직원들을 배신자로 취급하며 자신의 실패를 시장상황과 직원들의 탓으로 돌린다.


인색함은 얼마의 금액을 아낄지언정 결국 회사의 미래를 파괴한다. 소탐대실이다.

직원들에 대한 ‘인색함’은 언젠가 돌아온다. 어쩌면 이미 돌아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적제재를 꿈꾸는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