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사이 참 많이 울었고, 많이도 아팠다.누군가는 그 어떤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고 하던데 그 말을 곱씹으며 견뎌내고 있다.이 슬픔도 언젠간 끝이날 것.
지난 한 해는 그림도 그리지 않고, 그저 내리 여러 권의 책만 읽으면 보냈다.소란한 마음을 다독이며 지냈던 일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완전히 아물진 않았지만 담담하게.
2022년, 2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위암 수술 후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몸으로도속옷 빨래는 꼭 본인이 하겠다며 문을 걸어 잠그던 할아버지.
그래도 첫 손주인 나에겐 항상 따뜻했던 할아버지.
그런 분을 떠나보내던 날,난 아빠가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그 모습을 보고 더 눈물이 났다. 수십 년을 쌓아온 눈물이 터진 것만 같아서.
2주가 채 지나지도 않은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던 할머니께 생신 케이크를 사 가자던 우리의 계획이 무안하게도,자신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른 채 그렇게 함께 가셨다.어찌나 사이가 좋은 두 분이셨는지생일도 며칠 차이 안 나던 두 분이었는데, 가족 공원에서도 두 분을 나란히 모시게 됐다.
곱디고운 우리 할머니, 슬픔에 지친 아빠와 삼촌 쓰러질 듯 휘청이는 고모에 반해 참 편해 보이셨다.
마지막 가시는 모습까지 참 고운 분이었다.
큰일을 두 번이나 치르고 아빠는 눈에 띄게 핼쑥해졌다.
짧은 거리를 걷는 일조차 버거워 보였고, 숨소리는 나날이 거칠어만 갔다.겁이 많아서인지, 돈 걱정에서인지 병원과 전혀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폐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엄마도 나도 손잡고 함께 가주겠다며협박 섞인 권유를 해도 끝끝내 아빠의 마음은 움직일 수 없었다.
하루는 퇴근길에 만난 아빠가 사뭇 달라 보였다.평소라면 내 작은 가방까지 들어줄 아빠가자신의 가벼운 회사 가방을 나에게 맡기고는,허리가 아프다며 한참을 걸려 계단을 올라 집에 도착했다.늦은 밤까지 일기에 별일 아니기를 적어봤지만 왜인지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내일 아침엔 꼭 병원에 같이 가자며 든 선잠.
눈을 떠 보니 난 가장이 되어있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으면항상 아빠를 떠나보낸그날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미동 없는 아빠를 애타게 깨우던 엄마의 음성.어렴풋이 그 소리를 듣고 이불에서 튕겨지듯 일어나아빠를 향해 달려가 아빠- 아빠- 하며 소리 지르던 나.작은 소리로 이건 아니야, 되뇌며 멍하게 절레절레하던 동생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