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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Jan 07. 2022

물에 씻어먹는 떡볶이

그래도 떡볶이라고 해줘요, 누구보다 떡볶이에 진심이니까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한 떡볶이. 떡볶이의 매력은 무엇일까? 깔끔하게 매운맛, 쫄깃한 떡의 식감, 씹는 맛과 더불어 국물 맛을 책임지는 어묵, 약방의 감초 같은 각종 채소까지. 꾸덕한 떡볶이에는 튀김 푹 찍어 먹고, 국물 넉넉한 떡볶이에는 밥 볶아 먹기. 처음부터 끝까지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나도 떡볶이를 참 좋아해서 일주일 내내 떡볶이만 먹으라고 해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나의 첫 떡볶이는 문구사표 달달한 국물 떡볶이가 아닌 침이 절로 나오는 매운맛 떡볶이다.


 여덟 살 꼬마는 어머니의 퇴근만 기다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는 날이니까!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어머니께서 집에 돌아오시면 내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땡그랑 동전을 넣고 버스에 오르면 북적이는 인파 너머로 점점 화려한 풍경이 펼쳐졌다. 여전히 어머니 손을 꼭 잡은 채 짧은 다리로 열심히 버스 계단을 밟았다. 본격적인 구경에 앞서 둘 다 배가 고플 시간이니, 우리는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이 떡볶이집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 명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매콤한 양념이 쏙 밴 통통한 가래떡이 최고의 매력. 하지만 어머니는 비장하게 포크 두 개를 들어, 하나는 떡볶이를 집은 채 다른 하나로 열심히 양념을 덜어냈다. 그리고는 생수 샤워까지. 그렇게 빨간 가래떡의 양념 옷을 다 걷어내고 나면 그제야 내 손에 쥐어주셨다. 이 무슨 떡볶이에 대한 모욕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나에게 이 떡볶이를 그냥 먹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달콤함이 무엇이요, 고추장 양념으로 무장한 떡볶이는 용암에 빠진 떡이었다. 팥 없는 찐빵, 단물 빠진 껌 같은 떡볶이였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이때부터 지독한 떡볶이 사랑이 시작되었다. 이 천상의 맛을 일찍이 알아서 참 다행이다. 비록 물에 빠졌다 나온 떡볶이로 시작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본가에 방문할 때면 통과의례처럼 이 떡볶이를 먹는다. 이제는 그냥 먹어도 막 들어갈 만큼 멋진 어른(!)이 되었지만, 이 떡볶이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린 날의 추억 때문이다. 어머니 손 잡고 먹으러 간 통통한 떡볶이. 양념 맛 다 빠진 떡볶이. 하지만 추억의 맛은 무척이나 진하다. 가끔 그날의 추억을 살려 떡볶이를 씻어먹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떡볶이의 자존심은 지켜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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