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야말로 작품을 꼭꼭 씹어 음미하는 방법이다
필사(筆寫)는 한자 그대로 '(글을) 붓으로 베껴 쓰는 일'이다. 아니, 내가 직접 글을 쓰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글을 단순히 따라 쓴다고? 그거 시간 낭비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할 일이 많은데 무슨 글 베껴 쓰는 데다가 시간을 써? 아깝게.'
필사의 매력을 깨달은 후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재미있는 취미가 또 하나 생겼다. 필사에 몇 시간을 쏟아부어도 아깝지가 않았다. 쏟아붓는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들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단순히 따라 쓰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잘 모르겠다고? 이제부터 필사의 매력을 소개하겠다.
필사는 슬로우푸드(slow food)다. 간편하게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fast food)와 달리 슬로우푸드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다. 또 슬로우푸드는 자연의 재료를 다듬어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다. 영양가는 하나도 없고 자극적인 맛을 그저 빨리 욱여넣는 것에 불과한 패스트푸드와 다르다.
이것은 필사와 요즘 사람들의 대화의 차이와도 같다. 디지털 시대와 그에 따라 쏟아지는 방대한 양의 정보는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장황한 글보다는 짧은 글을 선호한다. 일단 글 길이가 길면 읽지도 않고 넘겨버린다. 왜? 읽기 귀찮으니까. 커뮤니티에 장문의 글이 올라오면 댓글에는 '세 줄 요약 좀'이라는 반응이 빠짐없이 나온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벌써부터 뒤로가기에 엄지손가락이 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하다 못해 글도 아닌 키워드나 이모티콘이 익숙하고 편하다. 귀여운 이모티콘이 많아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구독했다. 친구와 글자 하나 없이 이모티콘만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되더라. 그땐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이게 맞나 싶다. 얼마나 빨리빨리를 외쳐대면 사람들은 글을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킨다. 씹는 것조차 귀찮게 여긴다. 이미 맛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버릇은 주입식 교육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을 돌이켜 보면 문학 작품 감상도 틀이 있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떻고 갈래는 무엇이며, 문체와 특징은 어떻고 어떠한 의의가 있고…. 그저 선생님의 설명대로 받아 적기만 했다.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검정, 빨강, 파랑 볼펜을 준비해서 자기가 말하는 대로 줄 긋고 필기만 하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더 무서운 건 주기적인 책 검사로 자기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는지 아닌지 일일이 잡아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팔 아프도록 끄적인 것은 작품 감상이 아니라 작품 감상으로 포장한 '시험에 나오는 내용'을 옮겨 적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해도 자신의 생각 표현에 서툴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물음에 입도 벙긋 못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어찌어찌 생각을 표현한다고 해도 마치 줄거리로 8할을 채운 빵점 짜리 독서감상문 같거나, 초등학생 수준의 단순한 표현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려하고 거창한 표현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을 다듬고 섞어서 그럴싸한 요리로 만들 줄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깎지도 자르지도 않은 당근과 감자, 양파를 내밀며 "이건 카레예요"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모양이 투박해도 좋으니 껍질을 깎고 재료를 자르고 볶을 줄은 알아야 한다.
필사는 그 시작점이다. 접근부터가 다르다. 작품을 빨리 감상하려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문장을 뜯어가며 읽어야 한다. 아니, 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작가가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 어휘를 사용했을지 들여다보는 안목이 생긴다. 앞서 말한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내 생각을 다듬어 표현하는 방법이라면, 필사는 그전에 다른 사람의 요리를 먼저 분석해보는 과정이다. 잘 만들어진 요리를 전체적으로 보고 젓가락으로 재료를 하나하나 골라낸다. 그리고 음미해본다. 어떤 재료와 소스가 들어갔는지, 재료를 어떤 모양으로 다듬었는지, 얼마나 익혔는지 알아본다.
시험을 위해 배웠던 주입식 교육도 다 잊어야 한다. 우리는 수동적인 감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감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입도 벙긋 못 하던 버릇을 고칠 수 있다. 가방이 무거우면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오로지 펜과 노트, 필사할 작품, 그리고 우리의 머리만 가지고 필사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스스로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만 하면 된다. 그리고 조금씩 양을 늘려가면 된다. 이건 일이 아니라 취미다. 게임 속 퀘스트 깨기처럼 차근차근 도전해보자. 먼저 필사하기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방법부터 알아보겠다.
단편소설은 10~20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짧다. 장수로 따지면 5~11장 정도. 물론 이것도 손으로 따라 쓰려고 하면 꽤나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처음부터 중·장편소설로 시작했다가는 작심삼일, 아니 작심 한 시간으로 끝날 확률 99%다. 단편소설은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이 담겨 있으므로 전개가 빠르다. 한 페이지 안에서도 분위기가 휙휙 바뀐다. 그러니 독서와 친하지 않은 사람도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나도 한국문학 단편선으로 시작했다. 분명 들어본 제목이고 학상 시절 교과서에서 본 작품들인데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좋다. 필사를 통해 내용을 전혀 모르고 감상하더라도 그 몰입도가 배가 된다. 느린 감상의 이점이다. 게다가 감상이 끝나면 주제가 어떻니 특징이 어떻니 주입식 교육의 흔적을 지우고 나의 생각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다.
*특히나 근대문학을 필사할 때는 작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조사를 추천한다. 친일파(또는 변절되어 친일파가 된) 문학가가 생각보다 많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문학가도 "이 사람이 친일파였다고?"소리가 나온다. 물론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작품 자체로서의 가치는 클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생애를 돌아보며 비판적으로 수용하길 권하고 싶다.
꼭 문학작품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떤 글이든 좋다. 좋은 글을 따라 쓰는 것만으로도 글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 그것은 나의 글을 쓰고 말하는 힘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기사나 칼럼도 여러 번 퇴고를 거쳐 정제된 글이다. 섬세하고 유려한 표현은 문학작품에 비해 덜할지 몰라도 오히려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연습에는 이 부류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문학작품에는 기승전결이 있다면 비문학 작품에는 논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분량도 한 페이지 남짓하니 어렵지 않게 필사가 가능할 것이다.
단편소설도 기사도 길다, 힘들다! 하는 사람에게는 시를 추천한다. 다만 시는 함축적인 표현이 많기 때문에 분량은 확연히 짧더라도 더 여러 번 곱씹어야 한다. 아주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씹고 또 씹어야 한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한 작품 감상 중이다. 그래도 정 어렵다면 작가의 생애나 작가가 한창 작품을 쓸 때의 시대상 정도만 알아보도록 한다. 그 정도 배경지식은 오히려 필요하니까.
시와 비슷하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다. 다만 필사를 위해서라면 되도록 외래어, 속어가 쓰이지 않은 가사를 추천한다. 또 한 문장 한 문장이 툭툭 끊어지는 것보다는 이야기 흘러가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가사가 좋겠다. 특히 80~90년대 가요에서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옛날 노래라고 흥미 없다고만 하지 말고 가사를 꼭꼭 씹는다는 생각으로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적어보자. 물론 요즘 노래도 좋은 가사는 많다. 각자 마음에 드는 노래로 시작하면 된다.
나는 시나 노래 가사도 지루하다! 이모티콘과 'ㅇㅇ', 'ㅋㅋ', '세줄 요약 좀'과 한 몸인 사람에게는 아주 짧은 구절부터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네이버에 명언만 검색해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하루 한 줄 명언 같은 책도 많다. 또는 종교인이라면 종교서 내 한 줄을 옮겨 적는 것도 좋다. 다만 그 짧은 한 줄을 적을 때에도 시와 마찬가지로 단물 빠질 때까지 곱씹는 노력은 필요하다. 한 줄 띡 썼다고 끝이 아니다. 그거 가지고 뿌듯해하면 안 된다.
필사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과 유의사항이 있다. 시간낭비로 여기지 않으려면 꼭 필요하다. 사전적 정의는 글을 베껴 쓰는 것이지만 머리에 새겨야 할 필사의 의미는 훨씬 넓다. 문장을 집요하게 뜯어봐야 한다. 단물 빠지도록 씹어야 한다. 그래야 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기껏 필사는 그냥 베끼는 것이 아니네 뭐네 심오하게 말해놓고 반듯하게 쓰라고? 너무 겉치레 아니야? 싶을 테다. 이 말의 속뜻을 이해해야 한다.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것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반듯하게 쓰려면 한 글자를 쓸 때에도 아주 집중해야 한다. 이게 바로 속뜻이다. 느린 속도로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 과정이자 수단이다, 목표가 아니라. 필사를 하다가 지루할 때쯤 되면 평소 글씨체와 다르게 써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낯선 글씨체로 쓰려하면 한 글자에 온 정성을 다한다.
그러는 나도 아직까지 글씨가 썩 반듯하지는 않다. 나름 천천히 또박또박 쓴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해설을 미리 찾아보면 내 생각은 그 틀에 갇히고 만다. 생각의 폭이 확 좁아져버린다. 주입식 교육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름없다. 우리는 필사를 통해 작품을 느리게 감상하고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며 그것을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할 것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생애 정도는 배경지식으로 익혀두면 좋다. 하지만 작품의 특징, 주제, 의의, 한계 등은 일단 찾아보지 말자.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다음 비교해보자. 설령 해설과 다름이 있어도 상관없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고 느끼는 건 다르니까. 다만, 내 생각의 근거는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근거 없는 생각은 그저 고집이다. 이 과정만 훈련이 되어도 어디 가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능숙해진다.
우리는 한 문장을 천천히, 반듯하게 써내려가며 음미한다. 그때 이 문장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바로 메모하는 것이 좋다. 지나가면 생각 안 난다, 정말이다. 내가 적은 메모는 작가가 그 문장을 쓸 때의 생각과 일치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서 비판적 의견이 될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뭐 이런 걸 다 궁금해해? 싶은 엉뚱한 것이라도 좋다. 뭐 어때, 남 보여주려고 필사하는 것도 아닌데. 나를 위한 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깊이 있는 감상이나 글쓰기에 필요한 양분 말이다.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구절은 형광펜으로 표시해본다. 문장을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그렇다면 작품의 요약본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표시해보자. 다시 말해 '이 문장 없으면 안 돼!'싶은 문장만 엄선하여 표시한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 처음부터 끝까지 냅다 형광펜으로 그어버리는 친구는 공부를 잘했던가? 아마 90% 확률로 아닐 것이다. 정말 효율적인 공부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핵심만 딱 짚는다. 이렇게 엄선한 문장들만 짜깁기해도 그럴싸한 요약이 된다. 그것이 작가가 이 작품을 쓴 이유다. 감상이 한층 쉬워질 것이다. 또 나중에 직접 글을 쓸 날이 오면, 핵심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것에 살을 붙이기가 쉬워질 것이다. 명심하자, 학창 시절 버릇이 나오면 안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험을 위한 감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감상이다. 그러니 정답은 없다.
고전문학에서 근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문학작품에는 한자가 많이 나온다. 또 간간이 순우리말도 보인다. 오늘날에는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낯설다. 그러니 내가 이 작품을 더 쉽게 풀어쓴다고 생각하고 뜻을 적어보자. 필사는 보여주기식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때만큼은 남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초등학생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풀어써본다. 그리고 그 또한 음미한다. 같은 의미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나중에는 그만큼이 모두 나의 양분이 될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후기를 쓰지 않나. 필사를 통해 작품을 충분히 감상했으면 마찬가지로 후기를 써보자. 독서감상문만큼 꾸역꾸역 쓰라는 게 아니다. 어디 제출해서 검사받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쓸 필요는 없다. 전체적인 감상평이 어렵다면 내가 중간중간에 적어둔 메모를 토대로 그 의문점에 자문자답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내 생각의 근거는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적인 취미는 다시 말해 자기계발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 또 오늘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진 내일의 나를 기대한다. 드라마나 영화 감상, 유튜브 시청, 그래 좋다. 외부로부터 잔뜩 쌓인 스트레스를 그것으로 풀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말릴 자격은 없다. 하지만 어느 누구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한 수동적인 취미보다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취미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필사는 아주 멋진 취미가 된다. 필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면 생각의 폭도 한층 넓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단단한 줄기가 생긴다.
거창하게 설명한 나도 아직은 필사 초보다. 글을 쓰면서 표현이 단조롭거나 구조가 빈약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필사를 통해 개선하고 싶었다. 그래서 필사에 대해 사전에 조금 알아본 후 짧은 글부터 시작했다. 수년간 수련하듯이 필사를 연마한 것도 아니고, 아직 장편은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취미인 것은 분명하다. 반듯한 글씨로 따라쓰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잠시나마 잡념이 사라진다. 종종 명상을 하곤 하는데 필사에 몰입하는 것도 명상을 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물론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다시 지금의 나로 돌아와 그 문장을 씹어봐야 한다. <무아지경으로 글을 따라 쓴다→잡념이 사라진다→마침표를 찍고 나면 지금의 나로 돌아와 문장에 대해서만 생각한다>이 과정이 반복되면 집중력이 된다. 표현력과 집중력을 모두 기르는 취미, 참 멋지다!